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는 시점과 시간을 넘나드는 과거의 회상이 현재의 모험과 맞물린다. 플롯의 시간 선을 현란하게 구사하곤 했던 놀런의 전작을 생각하면 ‘오디세이’는 가장 정신분열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와 메넬라오스(존 번솔)가 회고하는 트로이 전쟁은 기억이 끊긴 듯한 편집으로 이들이 여전히 전쟁 트라우마의 여파 안에 있음을 말해준다. 영웅적 업적과 명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오디세우스는 놀런의 다른 주인공과 유사한 심리 상태를 되풀이한다. 오기기아섬에서 7년간 기억을 잃은 그는 허무에, 기억을 되찾고 나서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전쟁 이후의 불안한 정서는 빈 왕좌를 20년이나 지키고 있던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에게도 전이된다.
지조와 절개의 대명사 격인 페넬로페는 ‘오디세이’에서 자신이 처한 정치적 입장을 토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가 신들의 최종적 우위를 점한 가부장적 신계 안에서도 헤라는 독자적 권능을 행사하는 여성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에서 페넬로페의 정절 또한 재해석될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남편이 왕좌를 비운 사이 페넬로페가 섭정으로 이타카를 통치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분으로 원로와 구혼자를 설득하며 20년간 왕위를 비워 둘 수 있었던 그의 수완마저 깎아내릴 수 없다. ‘오디세이’는 왕 없는 나라의 적자, 텔레마코스(톰 홀랜드)에 비해 그 입지를 인정받을 수 없었던 왕비 페넬로페의 분노를 드러낸다.
페넬로페에게서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베를 짜며 수절하는 헌신적 아내로서의 모습이 영화에서 상당 부분 지워졌다면 님프 칼립소(샬리즈 세런)와 키르케(서맨사 모턴)에게서는 오디세우스와의 연인관계가 삭제된다. 칼립소와 키르케에게서 지워진 건 관능성 그 자체라기보다 이들이 오디세우스를 붙잡아두는 유혹자로 기능하던 원작 서사의 설정이다. ‘오디세이’에서 두 여신이 살고 있는 섬은 귀환을 지연시키는 함정이기보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죄의식과 대면하도록 강제하는 공간이다. 그는 여신의 침대에 붙들린 남자가 아니라 전쟁의 기억에 붙들려 있다. 관능의 삭제는 놀런이 애초에 다루고 있는 것-사건이 아닌 심리, 승리의 영웅서사가 아닌 죄의식-에 부합하는 선택이다.
정절의 화신, 유혹하는 여신의 역할이 거둬진 페넬로페와 칼립소,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내면을 경유하는 장치에 가깝다. 이 심리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아테나(젠데이아)다. 오디세우스를 안전한 귀환으로 인도하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 얼굴이 트로이에서 부하들과 함께 죽인 신전의 무녀와 동일하게 그려지고 있어서다. 소위 집안 정리처럼 보일 법한 구혼자 처단 시퀀스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아내와 아들의 눈앞에서 벌이는 살육은 가부장 질서의 회복이라기보다 속죄의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의 여자들은 그의 죄의식이 매번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가 속죄로 수렴하는 얼굴들이었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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