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소변 100억분의 1그램 이어 모발은 1조분의 1그램까지…2년 연속 합격
경마의 승부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끝나지만, 경주의 공정성을 확인하는 검사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말의 몸속에 경기력을 부당하게 끌어올리는 약물이 투입됐는지를 확인하는 경주마 도핑검사다.
한국마사회(KRA·회장 우희종) 도핑검사소가 국제경마화학자회(AORC)가 주관하는 국제숙련도시험에서 1997년 첫 참가 이후 30년 연속 100% 합격이라는 기록을 이어갔다고 25일 밝혔다.
국제숙련도시험은 세계 각국의 경주마 도핑검사기관이 참여하는 일종의 ‘국제 실기시험’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료를 받아 어떤 약물이 들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결과를 제출한다. 검사 대상 약물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검출해야 하는 농도도 갈수록 낮아지면서 시험 난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혈액과 소변에서 0.1ng/mL 수준의 약물, 즉 100억분의 1그램에 해당하는 극미량을 찾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준의 성분을 정확히 검출해야 하는 만큼 분석 장비뿐 아니라 시료 처리와 분석 과정 전반의 정밀도가 중요하다.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는 최근 말 모발 분석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입증했다. AORC가 신설한 말 모발 분석 국제숙련도시험에 2025년 처음 참가해 합격한 데 이어 올해도 통과하며 2년 연속 합격했다.
모발은 혈액·소변과 달리 단단한 고체 조직이어서 약물을 추출하고 분석을 방해하는 성분을 제거하는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시료가 조금만 손실돼도 분석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pg/mg(피코그램/밀리그램), 1조분의 1그램 단위까지 다루는 만큼 시료 채취부터 전처리, 분석, 품질관리까지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도핑검사 기술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이미 알려진 금지약물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앞으로는 정상적인 말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이상 신호를 포착하는 방식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단백질·유전자 수준의 조작을 활용한 첨단 도핑 역시 새로운 과제다.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에는 현재 AORC 회원 4명이 활동하고 있다. 국제학회 참가와 해외 연수 등을 통해 새로운 분석기술과 국제 동향을 확보하며 변화하는 도핑기법에 대응하고 있다.
유준동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장은 “30년 연속 합격은 특정 장비나 한두 명의 연구자가 만든 성과가 아니라 여러 세대의 연구진이 분석기술과 품질관리 체계를 발전시켜 온 결과”라며 “지능화하는 도핑기법에 대응할 새로운 검사기술을 적시에 확보해 한국경마의 공정성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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