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채집하며 추억 한가득 저장
매미 소리 멎고 풀벌레가 울면
청춘의 노래처럼 여름도 저문다
여름 빗소리가 들리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모리 준이치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다. 영화는 간을 안 한 말간 국물처럼 심심하기 그지없다. 도시 생활을 하다 쫓기듯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제철 식재료를 키우고 거두고 다듬고 요리해서 정갈한 밥상을 차려 먹는 게 전부다. 일본 도호쿠 지방의 산간 마을, 사계절 정취를 모두 담았지만 유독 여름 풍경이 좋다. 비가 그치면 땅이 머금은 습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찬물에 담가놓은 빨간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문다. 밤이면 산누에나방이 어지럽다. 반딧불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나는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여름방학이 되면 한 달 내내 시골 할머니 집에 살았다. 한바탕 장대비가 내리고 나면 흙 마당에 미꾸라지들이 꿈틀댔다. 오랫동안 나는 그 미꾸라지들이 뜨거운 열기를 타고 하늘로 솟았다가 떨어진 줄로만 알았다. 추어탕을 끓이기 위해 할머니를 따라 토란대를 따러 간다. 토란잎 아래엔 손톱만 한 청개구리가 숨어있기 일쑤다. 널따란 토란잎을 우산처럼 들고 작은 몸을 숨긴다. 쨍한 날은 개울에서 노느라 하루해가 짧다. 고무신 한 짝에 꼬물꼬물 송사리들을 담아 들고 집으로 간다. 한쪽 맨발에 닿던 뜨끈한 흙 기운.
동네 어귀 숲에서 키를 넘는 장대 하나를 주우면 횡재다. 끝을 가르고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끼워 삼각형을 만든다. 거기에 처마 밑 거미줄을 둘둘 감으면 매미채가 된다. 문방구에 파는 플라스틱 매미채보다 훨씬 좋다. 갖다 대기만 해도 온갖 곤충들이 척척 붙는다. 매미도 잡고 장수풍뎅이도 잡는다. 사슴벌레가 잡히면 운이 아주 좋은 날이다.
잠자리는 싸리 빗자루 하나면 충분하다. 툭 치면 기절한 듯 땅에 떨어진다. 엄지와 검지를 모아 조심스레 날개 두 개를 쥐면 끝이다. 빨간 고추잠자리는 하늘만 빙빙 돌아서 이 방법을 쓰기 어렵다. 그럴 때는 장대를 들고 나무 시늉을 하며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 팔이 아프고 지루해도 꾹꾹 참는다. 기우는 해에 한쪽 볼이 빨갛게 익어갈 무렵, 고추잠자리는 의심을 멈추고 소년의 장대에 내려앉는다.
힘들게 잡은 곤충들은 동네 꼬맹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번 구경해보자며 졸졸 따라다닌다. 특히 매미와 장수풍뎅이가 인기다. 매미 한 마리는 잠자리 두 마리, 장수풍뎅이 한 마리는 잠자리 세 마리와 바꿔준다. 그러다 보면 통 안에 잠자리만 수십 마리다. 뚜껑을 열어 한꺼번에 잠자리들을 날려 보낸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하늘이 높다.
도시에는 온갖 소음이 있지만 시골에는 온갖 소리가 있다. 세상에 그렇게나 많은 소리가 있다는 걸 시골에서 배웠다. 후드득 소나기 소리, 타닥타닥 모깃불 타는 소리. 수탉은 시도 때도 없이 운다. 틈틈이 개가 짖는다. 낮에는 멧비둘기들이 밤에는 개구리들이 운다. 매미는 여름 내내 운다. 맴맴, 쓰릅쓰릅, 쓰르르, 츱츱츱츱, 소리도 다양하다. 어느 날 밤, 매미 소리가 뚝 그친다. 순식간에 풀벌레 소리로 바뀐다. 가슴이 콩닥콩닥, 여름이 끝나는 소리다. 마당 멍석에 배를 깔고 엎드려 한 달 일기를 몰아 쓰기 시작한다. 7월 태풍에 떨어진 파란 햇감들이 옹기 속에서 달큼하게 익었다. 할머니가 소주병에 담아주신 감식초 한 병을 들고 다시 집으로 간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났다.
곤충 채집이라면 할 말이 산더미였지만 조개 채집에는 꿀 먹은 벙어리였던 어린 시절이었다. 내 고향은 바다라고는 볼 수 없는 내륙이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조개껍데기를 채집해 온 친구들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들었다. 바다 수영과 모래놀이를 얘기하는 친구들은 그 시절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우쭐댔다. 처음 바다를 본 건 몇 해 더 지나 6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한 2015년 무렵엔 ‘힐링’이란 단어가 대유행이었다. 그전에는 ‘웰빙’이 있었다. 2000년대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9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며 놓쳤던 정신적 빈곤을 채우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웰빙’은 말 그대로 ‘잘 사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됐다. ‘웰빙족’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괴로워졌다. 몇 년 뒤 상처를 치유하자며 ‘힐링’ 붐이 불기 시작했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가 나오고 ‘삼시세끼’ 같은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소확행’이란 말이 나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이란다. 웰빙이란 말도 힐링이란 말도 소확행이란 말도 없었지만 내 유년의 여름방학은 그 모든 걸 다 담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름은 시골에서 보냈다. 농활이다. 논물에 들어가 피를 뽑고 고추밭에 농약을 치고 장마에 무너진 담장도 보수하며. 농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버너에 밥을 해 먹었다. 그래도 동네 아주머니들이 김치며 나물이며 자꾸 가져다주셨다. 고추장에 쓱쓱 비빈 비빔밥을 먹고 평상에 누우면 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누군가 모닥불을 지핀다.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 속에 군대 걱정, 취업 걱정. 그렇게 여름이 끝나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가 시작된다. 마지막 곡은 항상 똑같다. “긴 밤 지새우며 풀잎마다 맺힌…” “한낮의 찌는 더위는” 대목에선 늘 코끝이 시큰하다. ‘아침이슬’은 1970년 8월 28일 태어났다. 더 이상 뜨거울 수 없는 청춘의 노래였다. 찌는 더위 속에 김민기 선생이 떠나고 벌써 두 번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 올해 여름도 다 갔다.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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