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호남 잘사는 미래 여는 출발점
연말 착공식 땐 지역 분위기 달라질 것
2만명 넘는 반도체 인력 광주로 유입
주택·교육·보육 환경 등 정주여건 개선
서울~광주 KTX 이용 시간 1시간대로
시민 추천 정무직 부시장 안착시킬 것
국립의대 설립 치킨게임… 끝까지 최선
전남광주 실질적 통합 조직개편 속도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올 6월 ‘벼락같은 축복’을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선 9기 출범을 하루 앞둔 30일, 896조원 규모의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광주 군공항 부지에 반도체 공장 팹(Fab·반도체 전용공장) 4기를 2030년 안에 짓는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호남의 산업구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호남이 잘사는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청와대의 후속 조치를 보면, 역대 정부가 발표한 장밋빛 발표와는 크게 다르다. 청와대와 정부 주관으로 군공항 이전과 전력·용수·인재 확보가 속도전를 넘어 전격전으로 추진되고 있다. 19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민 시장은 “전라도가 탄생한 지 1000년 만에 엄청난 기회가 왔다”며 “부지 규모와 반도체 수요를 보면 팹은 당초 4기에서 9기로 늘어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민 시장은 “아직 환호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지역의 반응을 전했다. 지역민들 사이에는 “이게 진짜 될까”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대 정권이 호남 발전을 위한 수없는 공약을 내놨지만 잦은 파행을 겪다가 결실을 맺지 못하는 좌절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민 시장은 대표 사례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꼽았다. 그는 “광주 전체를 문화도시로 재창조하려던 비전으로 출발했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물 하나만 남겨진 채 사업은 안개처럼 흐지부지됐다”며 “이처럼 큰 기대를 걸고 시작했지만 결과를 내지 못한 경험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지역민들은 희망을 먼저 접어버리는 슬픈 습관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민 시장은 “올 연말 반도체 클러스터 착공식을 보면 이런 뿌리 깊은 ‘학습된 회의론’은 누그러들지 않겠느냐”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옛 광주와 전남이 분리된 지 40년 만에 올 7월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조직 개편으로 행정통합의 닻을 올렸다. 병렬 조직으로 연결된 옛 전남과 광주를 하나의 집으로 완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직 개편은 공무원 노조의 반발로 이제 초안 공개와 여론 수렴의 절차를 밟고 있다. 3개의 공무원 노조 반발과 의회의 승인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민들이 민 시장의 리더십 역량을 판단하는 첫 번째 시험대다. 순천대·목포대 통합을 전제로 한 전남 국립의대 설립 건도 민 시장이 요즘 속앓이를 하는 현안이다. 다음은 민 시장과의 일문일답.
─광주 군공항 부지를 최적지로 보는 이유는.
“정부가 군공항을 반도체 팹 클러스터 부지로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신속성과 안착성을 고려한 점이 가장 크다. 대개 공장을 짓는 사전 절차만 거치는 데 2, 3년이 걸린다. 군공항은 국유지로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게다가 평평하고 단단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확장성이다. 군공항 부지는 250만평(825만㎡)이다. 대개 4기를 짓는 데 100만평(330만㎡)의 부지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기씩 4기를 짓고도 남는 부지 규모다. 소재와 부품, 장비 등 밸류체인 확장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정도의 부지라면 팹 규모는 당초 4기에서 9기로 늘어날 수도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전격전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반도체 팹 공장 설립은 투 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군공항의 무안 이전 전에 현재 훈련용 전투기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부지를 확보하는 방안이다. 광주기지의 전투기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 배치하는 소산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군공항이 빈 땅이 되면 군공항의 무안 이전 전에 팹 공장 착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 이전이라도 군공항 옆의 탄약고 이전 부지에 착공이 가능하다. 정부는 전투기 소산 시기를 2028년 중순으로 잡고 있지만 이보다 6개월 빠른 2027년 하반기나 2027년 말로 앞당겨야 2029년 말이나 2030년 초에 첫 번째 팹 공장이 들어설 수 있다. 군공항의 무안 이전도 서두르고 있다. 8일 무안군수를 만나 이전 시기와 규모 등에 원칙적으로 이견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조만간 열리는 군공항 이전 후보지 선정위원회에 무안군이 참여하기로 했다. 군공항 내에 있는 미군 부대는 주둔하지 않고 전술 전개가 주 임무로 알고 있다. 미군 부대에는 송유관 등이 있는데, 한국 정부의 일정에 맞춰 따라가겠다는 입장이라고 들었다. 미군 부대가 방해가 된다는 얘기는 과도한 우려다.”
─정주 여건 개선 노력은.
“팹 4기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력은 2만3000명가량 된다. 수도권에서도 광주로 올 것이다. 이들을 위해 주택과 교육, 보육 환경을 개선할 것이다.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신설해 양질의 교육수요를 충족할 생각이다. 음식과 볼거리가 풍부한 남도는 직주락(직장·주거·오락)이 이미 갖춰진 도시다. 이런 것은 걱정이 없다. 하지만 수도권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서는 교통 여건 개선이 필요하다. 서울과 광주 간 KTX 이용 시간을 1시간대로 줄여야 한다. 현재 KTX를 이용하면 1시간30분에서 2시간5분까지 걸린다. 선로 개선과 노후 철로를 바꾸면 30분을 단축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내의 교통 여건도 개선이 필요하다. 광주에서 솔라시도(영암)까지 초고속도로가 개설되면 시속 140㎞ 이상으로 달릴 수 있다. 광주에서 30분이면 솔라시도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광재 국회 예결위원장을 만났는데,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전력과 용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용수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기존 관로를 이용해도 하루 15만t 공급이 당장 가능하다. 화순의 동복댐을 증고하면 2029년 말쯤 하루 35만t을 공급할 수 있다. 여기에 하수재처리 20만t, 나주댐 10만t, 주암댐 5만t 등을 합치면 반도체 양산에 들어가는 2030년까지 하루 필요한 용수 65만t 공급에 차질이 없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과 둘이 여러 차례 동복댐 현장을 찾아 가능성을 확인했다. 전력량도 충분하다. 1단계 약 3GW(최종 6.3GW) 공급을 위해 신장성과 신광주 변전소 분기 송전선로부터 황룡강과 49번 지방도 부지를 활용해 연결하는 지중화선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대한 지역 반응은.
“896조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광복 이후 8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성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전라도가 탄생한 지 1000년 만에 역사적인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너무 조용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 6월30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발표했다. 그 축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다음날 저는 취임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축하 분위기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한 번도 성공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이른바 ‘학습된 회의론’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연말쯤 착공식이 열리면 그 회의론은 조금씩 깨질 것이다.”
─광역단체 중 처음 시민추천 부시장제를 도입했는데.
“시민추천 정무직 부시장 임명은 핵심 공약이다. 최근 백승주(산업 등 분야)·윤난실(시민주권 등 분야) 시민추천 후보자를 부시장 최종 후보자로 지명했다. 새로 만들어질 조직체계에 맞는 부시장을 준비한 것이다. 하지만 통합시의회에서 이런 부시장 절차를 문제 삼고 있다. 21일 송현곤 시의회 의장을 만나 의회의 우려를 충분히 들었다. 관련 조례를 개정한 뒤 개정된 조례에 맞춰 부시장 후보자를 다시 지명하고 인사 청문을 요청하기로 했다. 민선 5, 6기 당시 광주 광산구청장을 하면서 동장을 주민들이 뽑게 했다. 시민들이 뽑아 놓은 동장이 훨씬 일을 잘했다. 부구청장도 직원들이 뽑았다. 이렇게 뽑힌 부구청장들이 일을 잘했다.”
─전남 국립의대 신설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남광주지역 농어촌 대부분은 의료 취약지다. 전남 국립의대 설립 목표는 의료 취약 지역에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포대와 순천대는 서로 자신의 대학에 의과대학을 두겠다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국립의대 설립은 두 대학의 통합을 전제로 한다. 1년 6개월 전에 두 대학이 협약을 맺고 통합을 추진해왔지만 아직까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 두 대학을 강제로 통합할 방법이 없다. 이제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간의 문제로 커졌다는 게 안타깝다.”
─통합특별시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옛 전남과 광주의 통합은 사실상 이제 시작이다. 그동안 행정시스템망을 통합하고 시장과 도지사를 합쳐 한 명만 뽑았다. 나머지는 종전처럼 그대로 있다고 보면 된다. 현재는 옛 전남과 광주를 병렬적으로 연결해 놓은 상태다. 실질적 통합을 시작하려는 순간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나왔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니 통합이 좀 늦어지는 느낌이다. 조직 개편이 조만간 이뤄질 것이다. 조직 개편이 안착하면 통합특별시 첫 번째 목표의 ‘8부 능선’을 넘는다고 본다. 2년 안에 화학적인 조직 통합을 이룰 것이다. 전남광주 통합의 길이 향후 추진되는 영남권과 충청권 광역통합의 롤모델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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