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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권석준 교수 ① “AI 버블은 터져도 관리가 가능한 버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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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수정 :
조남규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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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숭상 中, 반도체 인재 30년 배출 가능
권토중래 노리는 日, 글로벌 시장 영향 제한적
파운드리 최강 대만, 무력충돌 땐 경제 대공황

AI(인공지능)가 화두인 시대다. AI 경쟁의 일선에 서 있는 기업만의 관심사를 넘어선 지 오래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500만명에 육박하는 주식 투자자들이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존재한다. 세계일보 주최 ‘한강로 포럼’은 지난 13일 ‘반도체 삼국지’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의 저자인 권석준 성균관대 공대 부학장을 연사로 초청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대신해 물어봤다.

 

권 교수는 “AI 버블은 버블이기는 하지만 터져도 어느 정도는 매니지(관리)가 가능한 버블”이라면서 “버블이 터지면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터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와 관련해선 “AI 모델 성능에선 미국이 앞서 있지만, 가성비 좋은 모델을 오픈 소스로 풀어서 남미나 중동 등 제3세계 국가들을 공략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제재 속에서 중국이 뜻밖의 돌파구, 이른바 세렌디피디(serendipity)가 나올 확률도 경계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공대 부학장이 지난 13일 세계일보 주최 ‘한강로 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반도체 기정학과 AI 산업의 패권 전략 변화’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권석준 성균관대 공대 부학장이 지난 13일 세계일보 주최 ‘한강로 포럼’에 참석해 ‘글로벌 반도체 기정학과 AI 산업의 패권 전략 변화’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다음은 권 부학장과의 주요 문답.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강연 내용도 문답으로 재구성했다) 두 차례에 나눠 게재한다.

 

―주식 투자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최근의 반도체 슈퍼 사이클과 관련해 ‘AI 버블’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제 AI가 버블이다, 아니다는 논의는 이미 어느 정도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이게 꺼져도 버틸 수 있는 버블이냐, 아니면 꺼졌을 때 그야말로 경제 대공황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질 것이냐는 논란인데 지금으로서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본다. 버블이긴 하지만 터져도 어느 정도는 매니지가 가능한 버블이지 않을까, 라고 많은 분이 보고 있다. 다만, (AI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돈의 단위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불안 요소다. 우리 정부의 3대 AI 메가 프로젝트만 해도 5000조원에 육박한다. AI 업계에서는 조(兆) 단위를 넘어 경(京) 단위의 개념들이 나오고 있다. 속칭 ‘쩐의 전쟁’을 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는 조만간 경이라는 단위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천문학적 투자의 수익성이 보장될 것인가, 단순한 구독료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연계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지금 역사에 기록될만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AI 시대의 핵심인 메모리 반도체가 초호황의 슈퍼 사이클을 맞았다. 얼마나 지속할 것으로 보나.

 

“제가 무슨 무당은 아닙니다만, 지금 당장 메모리 슈퍼 사이클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1년 이상은 가게 될 건데 관건은 아까 말씀드렸던 구글이나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같은 회사들이 과연 얼마나 현금 흐름을 계속 유지하면서 연간 수천억 달러 수준의 AI 투자를 이어갈 것이냐다. 수익을 내게 된다면 모빌리티나 로봇 등 ‘제조 AI’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형태의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한계 상황에 봉착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메모리 반도체들이 나올 수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이 더는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 있고, 그러면 이들 회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GPU에 최적화된 HBM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드는 HBM을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메모리의 파운드리 개념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의미다. 이제는 메모리도 맞춤형 메모리를 할 수 있는 메이커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많은 메모리 팹을 가지고 있다, 비싼 HBM을 만든다는 단순화된 경쟁 공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이미 왔고, 앞으로 이런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메모리 업계의 순위를 바꾸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린다.”

 

-반도체 버블이 터진다면 중국보다는 미국에서 먼저 터질 가능성이 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 가능성이 큰데 미국 정부는 그 버블이 터지게 두지 않을 것 같다. 버블이 터지는 경우는 메모리 수급이 잘 안 됐을 때다. 미국이 80년대 중반 미·일 반도체 협정 같은 정책을 강요하는 상황이 오면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신속히 데이터센터 등을 지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반도체 공급을 지체시키는 그런 제재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 같다. 제재 조치는 버블을 더 빨리 확산시키게 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마이크론이라는 방파제가 있다. 마이크론마저도 슈퍼 사이클 국면에서 기록적인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 시장을 건드리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좋지 않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반도체 사이클이 다운 사이클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모리 가격이 너무 높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한국에 대해서 요구 조건이 더 높아지는 정책적 합의를 종용하는 압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

 

1980년대는 일본 반도체 회사들의 독무대였다. 그러자 미국 반도체 업계는 일본 정부의 반도체 산업 보조금 지급 등을 근거로 미국 통상법 301조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미국 정부는 일본 반도체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일본은 보복관세를 버티다 못해 1986년 미국과 일본에 불리한 반도체 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협정의 골자는 일본 기업들은 미국에 대한 저가 반도체 수출을 중단하고, 미국 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절반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 반도체 협정은 1991년 5년 더 연장됐고, 그 여파로 일본 반도체 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 현재 세계 DRAM 시장은 삼성과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3강 체제로 재편됐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와중에 반도체 분야에서도 보호 무역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분업화가 경제적, 기술적으로 유리하다. 한 회사에서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 소재와 부품, 장비를 모두 하면서 다변화한 시장에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 메모리도 DRAM이냐 NAND플래시냐, HBM이냐로 나뉘었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 자유무역은 당연하다고 가정했는데 미국 패권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으로 최근엔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물론 과거와 같은 보호무역과는 달리 미국 중심 블록과 중국 중심 블록으로 나누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밸류 체인의 핵심 국가들은.

 

“글로벌 반도체 분업 구조에서 키 플레이어로 분류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술력, 다른 하나는 시장 규모다. 기술력이 높고 시장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과 중국, 한국, 대만, EU(유럽연합), 일본 정도다. 4개국이 동북아에 있다. 동북아 지역이 제2의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메모리는 한국이 과점하고 있고, HBM은 세계 시장 점유율의 65~68%를 차지한다. 파운드리는 TSMC 등 대만 회사들이 5나노 이하급 최선단 공정의 70~80%를 점유한다. 사실상 독점에 가깝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기획하고 지금 수준까지 끌어올린 주역은 누구인가.

 

“얼마 전 사망한 주룽지 총리다. 장쩌민 국가주석과 의기투합해서 국가 자본이 반도체 업계의 벤처 캐피털(VC)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중국 정부와 공공 기관, 국책은행(공상,농업,건설 은행)이 중국 반도체 빅 펀드에 투자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초기에 너무 많은 지분이 외국 기업으로 가지 않도록 방파제 역할을 해준 것이다.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초반까지 후진타오 주석 때 해외 기업들이 저렴한 인건비와 거대한 시장을 보고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에 나선다. 공장도 짓고 사람도 교육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투자 기업들의 공급망을 재현했다. 이걸 제일 잘한 기업이 애플이다. 중국 반도체 1세대로 볼 수 있는 인재들이 이 시기에 배출됐다. 어느 정도 공급망이 형성되고 엔지니어들이 육성되자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내에서 산업의 자국화, 내재화, 국산화로 기조가 바뀐다. ‘중국 제조 2025’ 슬로건이 나온 때가 2014년이다. ‘중국 제조 2025’가 끝나자, 그다음 슬로건으로 ‘중국 지능 생산’, ‘중국 표준’이란 용어들이 나오고 있다. 단순히 제조업에서 강국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 첨단 전략 기술에서 리더십을 갖겠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시진핑 체제가 시작되고 반도체 부문에 국가 자본이 뭉텅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데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2014년 1차 빅 펀드, 2019년 2차 빅 펀드 투자, 2024년 3차 빅 펀드가 들어왔다. 그에 따라 저부가가치 반도체를 만들던 기업들이 점점 고부가가치 쪽으로, 중국 내수 시장에 국한돼 있던 기업들이 점점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3차 반도체 빅 펀드 투자 때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이 AI와 연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보조금과 법인세 인하나 면제, 전력·용수 공급, R&D, 인력양성으로 전방위 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의 대표 선수는.

 

“2016년 설립된 메모리 반도체 분야 신생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长鑫存储·CXMT)다. 존재감이 거의 없었는데 2025년 4분기에 글로벌 DRAM 시장 점유율 약 8%로 매출 순위 4위에 올랐다. 미국에서조차도 CXMT는 최근에야 제재 리스트에 올라갈 정도였는데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4강이 됐다. 조만간 3강에 진입할 태세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치열한가.

 

“굉장히 치열하다. 10개가 있다면 8, 9개는 5년 안에 다 죽을 정도다. CXMT보다 더 주목을 받았던 회사는 DRAM 업체인 푸젠진화반도체(福建晉華·JHICC)다. JHICC는 다른 회사의 지적재산권을 거의 무단으로 탈취한 혐의가 발각돼 2019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CXMT는 지적재산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제조했다. 죽은 기업의 설비나 인력은 살아남은 기업이 다 흡수한다. 그렇게 덩치를 키우고 체력을 키우면 내수 시장을 거의 다 먹는다. CXMT는 중국에서는 독점 기업이다. 그다음엔 글로벌 시장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 부문은 어떤가.

 

“대만 TSMC가 최고 수준이지만 중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의 약진 속도가 굉장히 가파르다.

 

올해 1분기 매출 순위를 보면 불변의 1등은 TSMC, 2등이 삼성전자다. 개인적으로 3등인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中芯国际·중신궈지)가 올 연말이나 빠르면 올 3분기에 2등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SMIC만 있는 게 아니다. 화훙반도체(華虹宏力)·넥스칩 등이 있는데 2, 3년 전만 해도 순위에 보이지조차 않았던 기업들이다. 그 와중에 대만의 2, 3, 4등 파운드리 업체들이 점점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이게 대만 입장에서는 큰 고민거리다. 그래서 TSMC는 굳건하지만,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TSMC 공정이 그다음 세대로 갈 때 이전 세대 공정도 필요한데 그 부분을 중국 업체들이 채워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건 대만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도 큰 문제가 된다. 삼성 파운드리는 주요 고객이 삼성전자다. TSMC처럼 엔비디아나 퀄컴, 구글의 주문을 받아 칩을 만들어주는 쪽으로 특화된 사업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구조는 삼성 파운드리에게는 이점이자 한계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비교해보면.

 

“반도체 산업 내부 밸류 체인을 놓고 보면 전체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대만, 한국, 유럽 순이다. 칩 설계 분야는 미국이 압도적이다. 휴먼 캐피털(인력 자본)은 거의 동등하다. 한국은 인력 자본이 일본, 대만보다는 낫지만, 지금이 최대치일 가능성이 커서 걱정이다. 지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10년에서 20년 안에 은퇴를 한다. 그런데 한국 인구 구조상 그 공백을 다 채우기가 정말 어렵다. 첨단 반도체 제조는 고숙련 엔지니어의 손길이 필요하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미국은 인구 자체는 늘어나고 있지만, 반도체 분야의 고숙련 프로그램을 확보하는 게 쉽지가 않다. 제가 다녔던 모교(미국 MIT 공대)만 해도 화학공학과나 기계공학과, 신소재학과처럼 반도체 유관학과에서 반도체 공정이나 장비,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들이 적어도 한 과에 두세 명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 찾아보니까 제가 나온 화학공학과 같은 경우에는 반도체를 가르치는 교수가 한 명도 없다.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저렇게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고숙련 제조 엔지니어를 양성하기에는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사회 분위기 자체가 이공계를 숭상하는 나라다. 시진핑 주석만 해도 칭화대 화공과 출신이다. 장쩌민, 주룽지도 칭화대 전기공학과 출신이다. 중국도 인구 구조 면에서 좋은 형편은 아니지만, 이공계 인재 측면에서는 앞으로 20년에서 30년 정도는 배출된다. 이 지점이 두고두고 한국을 괴롭히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정부 발표대로 호남에 반도체 팹을 4개 만들고 용인 팹도 추가되면 지금도 모자라는 인재는 어디서 구해오나.”

 

―국내총생산(GDP)와 다른 국내총지능(GDI:Gross Domestic Intelligence)이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다. GDI 잣대로 미국과 중국을 평가하면.

 

“GDP는 앞으로도 계속 중요해질 겁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지능 생산 시대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은 아마 GDI가 될 것이다. 지능은 당연히 누가 더 좋은 AI 모델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AI 모델을 학습하거나 토큰을 생성할 수 있는 반도체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이 된다. 그만큼 또 중요한 것은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유리하게 가져가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고 컴퓨팅을 유리하게 가져가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고 보고 있다. 건곤일척의 싸움이 바로 이 컴퓨팅과 에너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데 다시 아까 미국의 고민으로 돌아가 본다면 미국이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컴퓨팅 우위마저도 제조업 기반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결국은 시한부일 뿐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의 컴퓨팅과 에너지, 제조 기반을 되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신을 추격하는 중국 반도체 업체를 제재하고 첨단 장비의 중국 진입을 막는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삼성전자 TSMC가 미국에 직접 팹을 짓게 하는 것도 컴퓨팅 파워를 키우기 위해서다.

 

챗GPT 3.5가 나온 것이 2022년 10월 말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챗GPT로 대변되는 이른바 생성형 인공지능 혹은 LLM(거대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스케일업 되면 성능 지표가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중국이 이 성능을 더 높이고 미국이 AI 선두를 내준다면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AI 모델이나 GPU 같은 AI 관련 기술 자산을 다른 나라로 수출할 때 동맹국이냐 여부보다도 미국과 협력을 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AI가 국가안보와 결부됐다고 본다. 트럼프 때 노골적으로 됐지만, 실제 제도화되기 시작한 거는 전임 조 바이든 정권 말기로 본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했을 때 일성으로 발표한 것이 무려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였다. 미국 전역에 AI를 더 가속할 수 있는 AI 데이터센터를 많이 짓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반도체 생태계를 부활시키려 애쓰고 있다. 일본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가 될 수 있나.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홋카이도 쪽에 2나노급 시스템반도체를 양산하는 ‘래피더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작년에 완공해서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저의 시각으로 보면 래피더스 팹은 글로벌 시장에서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량이 굉장히 제한돼 있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는 가장 강력한 시그널 중의 하나인 건 맞다. 자국 업체들에만 주던 보조금을 대만의 TSMC에게도 주면서 합작 회사를 만들고 있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대만의 반도체는 ‘실리콘 방패’나 다름없다. 국가안보로서의 반도체 성격이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같은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반도체 버블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나.

 

“만약 일본 구마모토에서 발생한 지진이 대만 반도체 공장 지역에서 발생했다면 공장은 2주 정도 가동을 멈추게 된다. GPU 가격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28%에서 30% 가까이 뛰게 된다. 그 정도로 전 세계의 첨단 반도체 생산의 상당수가 대만에 목줄을 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다. 지진이나 중국의 대만 침공이 현실화하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한다. 여러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보면 단 3개월만 반도체 공급이 안 돼도 AI 쪽의 버블은 다 붕괴한다. 반도체 쪽 건물이 다 무너지고 세계는 경제 대공황에 가까울 정도의 파급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분만 따로 연구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대만의 반도체는 국가안보가 엮여 있는 글로벌 기정학(技政學)의 핵심 화두다. 미국과 중국, 대만은 ‘실리콘 트라이앵글’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많이 얘기한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을 자국 쪽으로 가져오려 노력하고, 중국 입장에서도 대만을 통일하게 되면 대만의 파운드리 인력이나 시설 대부분을 인수할 수 있게 된다. 독일 싱크탱크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대만 침공 사건으로 한국은 세 번째로 GDP가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다. SK하이닉스가 자랑하는 HBM도 최종 패키징은 다 TSMC가 맡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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