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학폭 겪어… “아이들 마음 알아”
선도목적 시작해 사비로 장소 마련
밤샘 근무 병행하며 수업 열어와
제자 200명 양성… 道 대회 우승도
“복싱은 주먹을 쓰는 법보다 자신을 다스리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운동입니다.”
지난 13일 강원 동해시 한 낡은 상가 건물 4층.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앳된 얼굴의 중학생 두 명이 천장에 매달린 샌드백을 신나게 두드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장으로 보이는 우람한 남성이 학생들을 링 위로 호출했다. 미트를 낀 그는 학생들의 주먹을 받아 주며 자세와 움직임을 섬세하게 교정했다. 처음엔 서툴던 동작도 몇 차례 반복하자 조금씩 힘이 붙었다. 학생들 얼굴에는 어느새 자신감이 묻어났다.
강원경찰청 동해경찰서 소속 홍석주(56) 경감은 2011년부터 15년째 복싱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들을 복싱으로 교화해 보자는 인근 광희중학교 교사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복싱 7단인 홍 경감은 선도 역시 경찰관의 일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첫 수업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4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그는 “운동을 함께하면서 아이들이 가까워졌고 학교폭력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고 회상했다.
초기엔 지인이 운영하는 무술 체육관 한쪽을 빌려 훈련했다. 눈치도 보이고 지속해서 운영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2016년 지금 장소를 사비로 매입했다. 장기간 비어 있던 곳이라 가격 부담이 작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내부 공사는 직접 했다. 용접으로 기둥을 세우고 링을 만들었다. 샌드백, 글러브 등 용품은 용돈을 아껴 하나씩 마련했다. 홍 경감은 “학생들은 몸만 와서 즐겁게 운동하면 된다”고 말했다.
현직 경찰관인 탓에 수업은 불규칙하게 이뤄진다. 이날 밤샘 근무를 마친 홍 경감은 오후 4시가 돼서야 체육관을 열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복싱을 배우고 싶어서 문을 두드리는 학생도 다수라고 한다. 3년째 복싱교실에 다니고 있다는 최환(16)군은 “체력이 좋아지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며 “관장님 같은 경찰관이 되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다른 운동을 하다 전향했다는 김도원(15)군은 “체고 진학이 목표”라고 수줍게 말했다.
정식 체육관도 아니고 훈련량도 상대적으로 적지만 학생들 실력은 수준급이다. 올해 강원소년체육대회에서 이현서(16)군이 도 대표로 선발돼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앞선 2016년과 2022년에도 각각 2명이 도 대회에서 우승했다. 복싱교실 정원이 5명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다. 홍 경감은 “체육관 여건상 5명 이상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운동해 준 아이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제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15년간 복싱교실을 거쳐 간 학생은 200명에 이른다. 기억나는 제자가 있는지 묻자 그는 학교폭력에 수차례 연루된 학생이 있었다고 했다. 홍 경감은 “복싱을 가르치면서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며 “지금은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고 있다. 건실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학교폭력에 시달렸지만 복싱으로 떨쳐낸 제자, 복싱을 꾸준히 수련해 체육관을 운영하는 제자 등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눈에 선하다”고 덧붙였다.
홍 경감이 이토록 학생들에게 진심인 이유는 스스로가 학교폭력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동급생들의 괴롭힘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복싱을 시작했다. 재미를 느껴 한때 프로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홍 경감은 “경찰이 된 이후에도 글러브를 놓지 않은 덕분에 복싱교실을 운영할 수 있었다.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며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끝까지 손을 내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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