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결국 마음을 펼치는 사람입니다. 아직 무대에 서고 싶은 선배들, 이제 막 시작하는 후배들이 함께 자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SBS 드라마 ‘김부장’ 장소장 역으로 시청자를 만난 배우 최범호는 개인의 연기 활동을 넘어, 무대에서 멀어진 동료 배우들을 위한 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2019년부터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원로 대중문화예술인과 경력 단절 배우를 위한 사업을 준비해 왔다.
최범호는 정보석·최수종·정준호 이사장 체제 등을 거치며 협회 실무를 맡았다. 앞서 MBC 탤런트 총무로도 활동한 그는 배우와 협회 업무를 병행하면서 고민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배우로서 신비감을 보여주기보다 사무직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어요. 실제로 감독들이 ‘배우를 하는지, 협회 일을 하는지’ 묻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이 일도 제게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내는 급여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규직이라는 점을 좋아한다”며 웃었다. 오랜 시간 불규칙한 배우 생활을 해온 만큼, 협회 업무는 그에게 현실적인 버팀목이자 동료를 위한 또 다른 무대가 됐다.
협회는 원로 대중문화예술인과 경력 단절 배우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지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 소멸 위기를 겪는 곳을 찾아가는 ‘숨핫’ 콘텐츠를 비롯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원로예술인 지원사업 공모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웰다잉을 통해 웰빙으로’를 주제로 한 마당극 ‘장례식장 대소동’도 준비 중이다. 원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지역 어르신들과 죽음, 삶,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최범호는 “웰다잉은 잘 죽는 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잘 사는 법에 대한 질문”이라며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그 끝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호스피스 봉사 경험에서 비롯됐다. 과거 병원에서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환자들의 목욕을 돕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호스피스는 거창하게 무언가를 해주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길에서 혼자 우산을 쓰고 앞서가는 대신, 그 사람 곁에서 함께 비를 맞으며 가는 일이죠. 대단한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삶의 끝자락에서 ‘내 곁에 누군가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회는 신인·경력 단절 배우를 위한 콘텐츠 제작 지원, 지역 소멸 문제를 다룬 숏폼 콘텐츠, 시니어 배우들의 삶과 꿈을 담는 유튜브 채널도 준비 중이다.
최범호는 “콘텐츠 제작 지원이 인기와 수익만을 기준으로 이뤄지면 오래 활동한 배우들이 더 쉽게 소외될 수 있다”며 “원로와 후배 배우들이 공정하게 오디션을 보고 작품을 만들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공적 지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엠아이엔터테인먼트에 새 둥지를 틀며 배우로서도 다음 장을 준비하는 그는, 연기와 협회 활동 모두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욕심보다 제게 주어진 역할의 마음을 제대로 펼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직 무대에 서고 싶은 선배들, 이제 막 출발하는 후배들이 각자의 계절을 맞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함께 길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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