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말, 와이콤비네이터(창업사관학교로 불리는 유력 벤처 투자사) 합격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로 넘어왔다. 제품을 만들 줄은 알았지만, 미국 시장 생리는 전혀 몰랐다. 첫 고객 확보부터 채용까지 모든 과정을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야 했다.
2017년 레딧과 첫 대형 계약을 맺을 때의 일이다. 불러주는 이가 하나도 없던 그 회사에 매일 출근했고, 직원들이 퇴근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보안팀으로부터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닌데 그만 좀 나오라’는 말까지 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곤 하지만, 솔직히 당시엔 무작정 부딪치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다.
그런 방식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아는 사람에게 묻고 도움을 받으면 하루 안에 끝날 일도 직접 부딪치며 확인하느라 몇 달씩 걸렸고, 초기 스타트업에 그 시간 자체가 큰 비용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실리콘밸리와 뉴욕에서 상장과 매각까지 경험한 한인 창업가가 늘면서 내가 몇 년에 걸쳐 얻은 답을 이미 아는 사람도 많아졌다. 다만, 그 경험과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연결될 ‘검증된 통로’가 없었다.
지난 7월 실리콘밸리에서 중소벤처기업부 노용석 차관이 참여한 가운데 출범한 ‘K파운더(K-Founder) 펀드’(ASQ 파이오니어 펀드·Pioneer Fund)는 그 통로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1000억원 이상 규모로 조성될 K파운더 펀드는 정부의 모태펀드가 마중물이 되고, 현지에 자리 잡은 한인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첫 재외동포 펀드로 ASQ 파이오니어 펀드가 그 운용을 맡았다.
이는 한국 자본의 해외 유출이 아니라, 이미 글로벌 시장에 뿌리내린 한인 생태계가 현지에 진출하는 후배들과 결합하는 강력한 구조다.
K파운더 펀드는 단순한 자금 투입에 그치지 않는다. 현지 시장 진입과 핵심 인재 채용, 후속 투자유치까지 창업가의 옆에서 함께 달릴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기술이 미국에서 규모를 키우는 흐름과 미국에서 검증된 제품이 아시아의 제조·유통 네트워크를 만나 성장하는 흐름을 만들려고 한다.
바탕은 이미 마련돼 있다. 1500여명의 미국 한인 창업자가 모인 유나이티드 코리안 파운더스(UKF)와 지난해 뉴욕에서 1만3000명이 모인 Koom Festival(꿈 페스티벌)이 그 자산이다. 한국 벤처투자와 함께 실리콘밸리 거점도 운영하며 네트워킹 등을 밀착 지원할 계획이다.
나 역시 주변에서 조언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페이 잇 포워드(Pay-it-Forward·선배 창업가가 후배 창업가에게 조언해 주는)’ 문화가 말해주듯, 거둔 결실을 독식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순환이 개개인의 호의만으로 지속되기는 어렵다. 우연을 넘어 시스템으로 작동하려면 확실한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 재외국민 대상 창업지원 사업과 모태펀드의 출자가 바로 그 견고한 판이 되어줄 것이다.
이 펀드를 통해 후배들이 현지에 빨리 안착하고, 그렇게 성장한 회사들이 다시 한국 생태계로 돌아오는 선순환 위에서 다음 세대 창업가들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 출발선에서 도약하기를 기원한다.
김동신 ASQ 대표파트너 센드버드 공동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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