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버거 하나면 해외에서도 통한다’는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K푸드 인기가 높아졌지만 해외 외식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한국에서 팔던 메뉴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지인의 식사 시간부터 종교, 식재료 조달 방식까지 다시 짜는 ‘현지화’가 해외 사업의 성패를 가르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리아가 싱가포르에서 꺼낸 카드도 ‘할랄’과 ‘아침 식사’다. 롯데GRS가 운영하는 롯데리아는 올해 2월 싱가포르 동부 주얼 창이 공항에 1호점을 연 데 이어 서부 주롱포인트(Jurong Point)에 2호점을 열며 영업지역을 넓혔다. 롯데리아 싱가포르 공식 홈페이지에도 현재 주얼 창이 공항점과 주롱포인트점이 영업점으로 안내돼 있다.
지난 2월 문을 연 1호점은 싱가포르 현지 외식기업 카트리나그룹이 운영을 맡았다. 롯데GRS는 싱가포르 진출 당시 국내 대표 메뉴인 불고기버거와 새우버거뿐 아니라 현지 전용 메뉴인 김치버거 등을 내세웠다. 당시 롯데GRS의 해외 롯데리아 매장은 베트남·미얀마·라오스·말레이시아·몽골·미국 등을 합쳐 약 330곳이었다.
2호점 전략은 한 단계 더 현지화됐다.
롯데리아는 싱가포르에서 발달한 외식형 아침 식사 문화와 주롱 지역의 생활상권 특성을 고려해 조식 전용 ‘K-오믈렛 버거’ 3종을 개발했다.
한국 길거리 토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계란 패티를 버거 형태에 결합한 메뉴다. 한국에서 판매하던 제품을 그대로 수출하기보다 ‘한국적인 요소’를 현지인이 익숙하게 소비하는 아침 메뉴에 다시 입힌 셈이다.
종교적 장벽도 낮췄다.
롯데리아는 버거와 치킨류 등에 사용하는 주요 원재료의 할랄 인증을 마쳤다. 싱가포르에서는 이슬람종교위원회(MUIS)가 할랄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식재료뿐 아니라 조리·운영 과정도 인증 대상이 된다.
특히 이번 싱가포르 사업에서는 이미 말레이시아 진출 과정에서 개발·검증한 핵심 원재료를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연결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할랄 식품 수요가 크다는 공통점을 활용해 국가마다 원재료 공급망을 처음부터 따로 구축하는 비용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점포 하나를 더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인접 국가를 하나의 공급망으로 묶는 단계까지 해외 사업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리아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올해 2월 싱가포르 전 매장에 대해 MUIS 할랄 인증을 받았다.
파리바게뜨 싱가포르는 과거 ‘노 포크·노 라드(No Pork, No Lard)’ 정책을 운영했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식 할랄 인증 체제로 전환했다.
파리바게뜨 측은 원재료와 제조 과정, 매장 운영이 MUIS 기준을 충족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지 매장에서 판매하는 할랄 인증 제품뿐 아니라 공식 주문 채널에서도 이를 적용하고 있다.
현지 매체 CNA도 지난 2월 13일 싱가포르의 파리바게뜨 매장이 공식적으로 MUIS 할랄 인증을 받았으며, MUIS 명단에서도 현지 전 매장의 인증이 확인된다고 보도했다.
단순히 돼지고기와 돼지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자체 기준과 공인기관의 할랄 인증은 차이가 크다.
할랄 소비자 입장에서는 식재료뿐 아니라 생산·보관·조리 과정까지 기준을 충족했다는 제3자 인증이 구매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촌치킨도 비슷한 길을 먼저 걷고 있다.
교촌의 말레이시아 법인은 현지 이슬람개발부(JAKIM)의 기준에 맞춰 할랄 인증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교촌 말레이시아 공식 홈페이지에는 쿠알라룸푸르와 셀랑고르, 조호르, 페낭, 파항, 느그리슴빌란 등 여러 지역의 매장이 할랄 인증 점포로 공개돼 있다. 일부 신규 점포는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올해 2월에는 동부 해안 쿠알라테렝가누의 마양몰 매장도 JAKIM 할랄 인증을 새로 획득했다.
교촌 측은 원재료 조달부터 조리 과정과 매장 운영까지 인증 기준을 적용하면서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인증 매장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식 치킨의 간장·매운맛이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되 이를 소비할 수 있는 고객층 자체를 넓히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해외 외식 브랜드가 성공하기 쉬운 시장만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브랜드가 몰리는 데다 임대료와 인건비가 높고 현지 소비자의 선택지도 넓다. 실제로 과거 싱가포르에 진출했던 한국 외식 브랜드 가운데 철수한 사례도 있다.
반대로 현지 시장에 뿌리를 내린 아시아 외식 브랜드는 공통적으로 메뉴와 운영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바꿔왔다.
필리핀 패스트푸드 업체 졸리비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졸리비가 싱가포르를 메뉴와 운영 방식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으며 여기서 얻은 결과를 다른 국가에도 적용한다고 소개했다. 졸리비는 싱가포르에서 20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결국 해외에서 K푸드 브랜드끼리 경쟁하는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상대는 맥도날드와 KFC 같은 글로벌 업체뿐 아니라 졸리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 강자와 수많은 현지 브랜드다.
한국에서 성공한 메뉴와 간판은 진출의 출발점일 뿐이다.
롯데리아가 싱가포르 2호점에서 아침 메뉴를 따로 만들고 할랄 인증을 받은 데 이어 말레이시아와 원재료 공급망까지 공유하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리바게뜨는 싱가포르 전 매장의 할랄 인증으로 문턱을 낮췄고, 교촌은 말레이시아에서 인증 지역을 넓히고 있다.
K푸드 열풍이 문을 열어줬다면 그다음부터는 결국 현지인의 한 끼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느냐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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