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디카페인 모두 간 질환 위험 낮은 연관성 확인
하루 3~4잔 간세포암 위험 35%↓…카페인 400㎎ 이내
“매일 3~4잔 마셨더니?”
출근길에 한 잔, 점심을 먹고 한 잔, 나른한 오후에 또 한 잔. 하루 서너 잔씩 커피를 마신 사람에게서 간경변과 간세포암 발생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루 3~4잔 섭취군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보다 간경변과 간세포암 위험이 각각 35% 낮았다. 간 질환으로 사망할 위험도 41% 낮게 나타났다. 디카페인 커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카페인만으로는 커피와 간 건강의 관계를 다 설명할 수 없다.
◆35만명 13년 추적…3~4잔군 간세포암 위험 35%↓
미국 시더스-사이나이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 참가자 35만4957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Clinical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온라인판에 지난달 1일 게재됐다.
조사 시작 당시 간경변이나 간세포암이 없었던 참가자들을 중앙값 13년 동안 추적했다. 연구팀은 평소 커피 섭취량과 이후 간경변·간세포암 발생, 간 질환 관련 사망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살폈다.
하루 1~2잔부터 세 가지 위험이 낮게 나타나는 연관성이 관찰됐다. 차이는 하루 3~4잔 섭취군에서 더 뚜렷했다. 비섭취군과 비교한 간경변과 간세포암 위험은 각각 35%, 간 질환 관련 사망 위험은 41% 낮았다.
하루 5잔 이상 섭취군에서는 간경변 위험이 32%, 간세포암 위험이 47%, 간 질환 관련 사망 위험이 42% 낮았다.
섭취량이 늘수록 모든 위험이 일관되게 더 낮아진 것은 아니다. 간경변은 하루 3~4잔 섭취군에서 위험 감소 폭이 가장 컸지만, 간세포암은 5잔 이상 섭취군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났다.
‘위험 35% 감소’는 개인의 간 질환 발생 확률이 35%포인트 낮아졌다는 뜻이 아니다. 연령과 성별, 흡연·음주, 비만과 대사질환, 사회경제적·유전적 요인 등을 보정한 뒤 커피 비섭취군과 비교했을 때 상대위험이 35% 낮았다.
◆디카페인도 비슷…MRI·혈액에서도 같은 신호
카페인이 든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의 결과는 대체로 비슷했다. 커피 속 카페인 이외의 성분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연구팀은 참가자 가운데 2만8961명의 간 자기공명영상(MRI) 자료도 분석했다. 커피 섭취량이 많은 사람은 간에 축적된 지방과 철분이 적었고, 섬유화와 염증이 함께 진행되는 ‘섬유염증’을 반영하는 지표도 낮게 나타났다.
4만4633명의 혈액 단백질 분석에서도 비슷한 방향의 결과가 나왔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서는 간의 단백질 합성과 정상 기능에 관련된 단백질이 높은 반면, 섬유화와 면역세포 활성에 관련된 단백질은 낮은 흐름을 보였다.
질환 발생 통계뿐 아니라 MRI와 혈액 분석에서도 같은 방향의 차이가 확인됐다. 커피와 간 건강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단서다.
◆설탕 넣어도 위험 낮았지만…MRI 지표는 달랐다
설탕이나 인공감미료를 넣은 사람에게서도 간경변과 간세포암, 간 질환 관련 사망 위험이 낮게 나타나는 흐름은 대체로 유지됐다.
MRI에서는 다른 신호가 포착됐다. 설탕이나 인공감미료를 넣은 사람은 넣지 않은 사람보다 간의 섬유염증을 반영하는 철분 보정 T1 수치가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이를 두고 “설탕을 넣어 마셔도 간에는 괜찮다”고 보는 건 경계해야 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설탕이나 인공감미료가 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안전성을 별도로 검증하지 않았다.
커피에 설탕과 시럽, 크림을 넣으면 당류와 열량 섭취도 함께 늘어난다. 고열량 커피를 여러 잔 마셔도 간 건강에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하루 3~4잔’만 믿고 마시면 안 되는 이유
이번 연구에서 말하는 ‘한 잔’을 국내 카페의 대용량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같은 양으로 봐서는 안 된다. 참가자들은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는가”라는 질문에 답했다. 한 잔의 용량이나 원두 양, 추출 방식, 샷 수를 동일하게 맞춘 실험이 아니다.
작은 인스턴트커피 한 잔과 대용량 아메리카노는 전체 용량과 카페인 함량이 크게 다르다. 같은 크기의 커피라도 원두와 추출 방식, 추가한 샷에 따라 카페인 양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하루 카페인 400㎎을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과 관련되지 않는 수준으로 제시한다. 약 355㎖짜리 일반 커피 2~3잔에 해당한다.
같은 355㎖의 일반 원두커피라도 카페인은 113~247㎎으로 차이가 날 수 있다. 진한 커피를 세 잔 마시면 하루 400㎎을 훌쩍 넘을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신 뒤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안, 불면, 속 쓰림이 나타난다면 양을 줄이거나 마시는 시간을 앞당기는 게 낫다. 임신·수유 중이거나 카페인 섭취에 영향을 받는 질환이나 복용 약이 있다면 의료진과 적정량을 상의해야 한다.
◆간암 위험 35%↓…커피 많이 마실수록 좋을까
이번 연구는 참가자에게 정해진 양의 커피를 마시게 한 임상시험이 아니다. 평소 커피 섭취 습관과 이후 간 질환 발생 사이의 관계를 살핀 관찰연구다.
연구팀이 여러 변수를 통계적으로 보정했지만, 커피 섭취군과 비섭취군 사이에 파악하지 못한 생활 습관의 차이가 남아 있을 수 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커피를 끊은 사람이 비섭취군에 포함되는 역인과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섭취량을 설문 응답에 의존한 점도 한계다. 추적 기간에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달라졌을 수 있다. 한 잔의 용량이나 추출 방식도 제각각이다.
참가자 90% 이상이 유럽계인 만큼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과 집단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24년 유럽간학회·유럽당뇨병학회·유럽비만학회의 대사이상 지방간질환 진료지침도 커피 섭취가 간 손상과 간 질환 관련 임상 결과 감소에 연관됐다는 관찰연구가 있다고 평가했다. 근거 수준은 4단계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진도 간을 보호할 목적으로 커피를 새로 마시기 시작하거나, 하루 5잔 이상으로 일부러 섭취량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간암은 국내에서도 사망 부담이 큰 암이다. 2024년 간암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20.4명으로 폐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2019~2023년 간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40.4%로 전체 암 환자보다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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