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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벽 무너뜨리고 협회엔 소신 발언… 승부사의 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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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원 기자 rewonv@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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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드민턴 첫 그랜드슬램 쓴 안세영
복싱 국가대표 아버지 빼닮은 ‘어퍼컷’

스물네 살 안세영이 코트 위에서 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관중의 함성이 커지자 오른 주먹을 힘껏 치켜올렸다. 복서의 어퍼컷을 닮은 세리머니였다.

 

올해 4월 중국 닝보. 유독 인연이 없던 아시아선수권 정상에 올라 한국 여자 배드민턴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우승 뒤 귀에 손을 가져다 대며 관중의 함성을 이끌어내는 안세영.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우승 뒤 귀에 손을 가져다 대며 관중의 함성을 이끌어내는 안세영.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셔틀콕을 든 세계 최강의 배드민턴 선수는 왜 우승할 때마다 복서처럼 주먹을 치켜올릴까.

 

그 주먹에는 내력이 있다. 복싱 국가대표 출신 아버지 안정현을 빼닮은 딸의 승부사다운 몸짓이다.

 

파리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안세영. 뉴시스
파리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안세영. 뉴시스

 

복서의 딸, 셔틀콕을 잡다

 

안세영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복싱 국가대표 출신이자 배드민턴 동호인이었고 어머니는 체조 선수였다. 운동이 몸에 밴 집안이었다.

 

풍암초등학교 1학년, 아버지를 따라 체육관을 드나들다 라켓을 처음 쥐었다. 2학년 때 고된 훈련에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최용호 감독이 “배드민턴으로 세계 1등 시켜줄게”라고 붙잡았다. 그때부터 써온 훈련일지는 지금도 이어진다.

 

어린 시절부터 승부욕은 남달랐다. 배드민턴부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고학년 선배들의 전지훈련을 따라갔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백사장 훈련은 버거웠다. 뒤처져 울면서도 끝까지 뛰었다. 훈련을 마친 뒤에는 차를 타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숙소까지 약 4㎞를 더 달렸다.

 

열다섯. 중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 현역 국가대표를 포함한 실업선수 4명과 대학생 1명, 고등학생 2명을 모두 꺾었다. 7전 전승, 조 1위. 선발전을 통과해 국가대표에 뽑힌 중학생은 그가 처음이었다. 누구의 추천도 아닌 오롯이 제 실력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15세에 태극마크를 단 안세영은 파리에서 마침내 올림픽 정상에 섰다. 뉴시스
15세에 태극마크를 단 안세영은 파리에서 마침내 올림픽 정상에 섰다. 뉴시스

 

28년 빈자리, 그랜드슬램으로 채우다

 

한국 여자 배드민턴 단식은 1996년 애틀랜타에서 마지막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방수현 이후 오래도록 불모지로 불렸다. 안세영은 그 빈자리를 메워갔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2020 도쿄올림픽 8강, 열아홉의 그를 멈춰 세운 상대는 천위페이였다. 좀처럼 넘지 못하던 중국의 벽이었다.

 

하지만 안세영은 그 벽을 조금씩 허물어갔다. 2023년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 사상 처음으로 단식 정상에 올랐고 두 달 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는 다시 천위페이와 마주 섰다.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을 다쳐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지만 끝까지 코트를 지켰다. 결국 자신을 도쿄에서 멈춰 세웠던 천위페이를 꺾고 정상에 섰다.

 

이듬해 파리올림픽에서는 28년 만에 한국 여자단식 금메달을 되찾았다. 중계석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방수현은 “이제 안세영의 시대”라며 후계자의 등장을 반겼다.

 

올해 4월에는 유독 인연이 없던 아시아선수권마저 제패했다.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에 마지막 조각을 더한 한국 여자 배드민턴 최초의 그랜드슬램이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이 대표팀의 부상 관리와 운영 방식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뉴시스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이 대표팀의 부상 관리와 운영 방식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뉴시스

 

정상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안세영이 세상을 놀라게 한 건 경기 결과만이 아니었다.

 

파리올림픽 시상대에서 내려온 직후 그는 대표팀의 부상 관리와 운영 방식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다친 무릎을 치료하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쌓인 불만이었다.

 

스물두 살 챔피언이 던진 말은 한국 배드민턴계를 뒤흔들었다.

 

파장은 컸다. 협회를 겨눈 문제 제기는 진상 조사로 이어졌고 안세영은 한동안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그럼에도 다시 라켓을 들었다. 세계 1위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방식대로 승부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지난 7월 왼발 부상으로 대회를 중도에 기권한 뒤 재활에 들어갔고 이달 인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 시간을 두고서 “선수로서 더 오래 하기 위해, 건강하게 오랫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다시 재정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상도, 논란도 그를 코트 밖에 오래 세워두진 못했다.

 

다시 코트에 서는 날, 복서의 딸은 또 한 번 오른 주먹을 치켜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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