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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만도 못한 국제법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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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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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유엔 산하 기관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엔이 출범할 때 ‘국가 간 다툼을 전쟁 대신 재판으로 해결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인류의 염원 속에 ICJ가 탄생했다. 1907년 헤이그에선 세계 여러 나라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만국(萬國)평화회의’가 열렸다. 당시 조선의 고종 황제도 이준 열사를 특사로 보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의 부당한 국권 침탈을 호소하려던 이 열사의 구상은 ‘조선은 외교권이 없다’라는 이유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며 좌절됐다. 헤이그는 한국인들에게는 나라 잃은 설움을 떠올리게 만드는 도시다.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침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이듬해 순국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1879~1910).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침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이듬해 순국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어느덧 8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ICJ는 그간 많은 성과를 올렸다. 2009년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간 영토 분쟁을 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에 불리한 판결이 나왔으나 깨끗이 승복했다. ‘유엔 회원국은 자국이 당사자인 어떤 사건에 있어서도 ICJ 결정에 따를 것을 약속한다’라는 유엔 헌장 규정을 준수한 결과다. 문제는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다. 국내 법원과 달리 ICJ 결정은 구속력이 없어 강제 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나라들은 판결을 대놓고 무시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불법”이라는 ICJ의 결정에 정작 이스라엘은 콧방귀만 뀔 뿐이다.

 

유엔 산하에는 ICJ뿐만이 아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있다. 오직 심리를 통해 판결만 내리는 ICJ와 달리 ICC는 검찰부를 둬 전쟁 범죄 등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 및 기소까지 담당한다. 이에 따라 ICC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동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집단 학살한 혐의를 받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네타냐후 체포 시도는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해 ICC를 해체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ICC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

최근 일본에서 환수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라는 여덟 글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일본에서 환수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라는 여덟 글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09년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침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유묵 1점이 일본에서 환수됐다. 안 의사가 순국 직전에 남긴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라는 여덟 글자다. 만국공법이란 오늘날의 국제법과 동의어다. 대포는 강대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용어다. 한마디로 ‘법보다 주먹이 우선’이란 뜻인데, 국제사회의 본질은 약육강식이란 점을 안 의사가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제에 의한 한국 식민지화는 구미 열강들의 ‘양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국제법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군사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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