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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에어컨 없는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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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역사 자랑하는 獨 공연장
냉방 안 되는데 드레스 코드 엄격
바그너 음악은 구원을 말하지만
극장의 공기처럼 논쟁은 뜨거워

한여름에 에어컨 없는 공연장에 간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보통 공연장은 여름에 가장 시원한 곳이다. 밖은 뜨겁지만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공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은 정반대다. 에어컨이 없다. 1876년 문을 연 이 극장에는 처음부터 에어컨이 없었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특한 건축 구조와 문화재로서의 역사성 때문에 쉽게 냉방 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은 어느 극장보다 드레스 코드도 엄격하다.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극장에 들어가면서도 관객들은 가벼운 옷차림을 선택하기 어렵다. 재킷과 넥타이부터 정장과 드레스까지, 객석은 한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으로 채워진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그렇게 더위를 견디며 객석에 앉아 있으면 문득 이 극장이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한여름에도 정장을 갖춰 입고 찾는 이곳은 150년 동안 단 한 사람의 음악만을 위해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 음악을 만든 사람은 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인 동시에, 가장 복잡하고 논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다.

그는 게르만 신화를 하나의 거대한 음악 세계로 만들어냈고, 생전에는 반유대주의적 글을 남겼다. 그의 음악과 이름은 훗날 나치즘과도 복잡하게 얽혔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열렬한 숭배자였고 바이로이트를 여러 차례 찾았다. 바그너의 후손들과 바이로이트 축제 역시 나치 정권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한 작곡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이 훗날 나치 정권의 문화적 상징처럼 이용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작 그의 작품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권력이나 민족의 우월함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과 연민을 통한 구원이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다.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모든 질서가 무너진 뒤 브륀힐데의 사랑만이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사랑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다. 또 ‘파르지팔’에서 구원의 출발점은 바로 연민이다.

바그너를 둘러싼 역사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음악은 사랑과 연민을 통한 구원을 말하지만, 그 음악을 만든 인간과 그 음악이 지나온 역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숭배한 작곡가였지만, 그의 음악을 가장 뛰어나게 노래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유대인 음악가들도 있었다. 오틸리 메츠거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20세기 초 바이로이트에서 활동했던 뛰어난 가수였다. 1901년부터 1912년까지 페스티벌에 출연하며 바그너의 음악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성악가로 평가받았다.

나치가 집권한 뒤 독일을 떠나야 했던 그녀는 1939년 딸과 함께 브뤼셀로 피신했다. 그러나 피신은 끝내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하자 그녀는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고, 1943년 그곳에서 살해되었다. 한때 바이로이트 무대에서 바그너를 노래했던 가수가 아우슈비츠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한 사람의 삶만 놓고 보아도 바그너와 바이로이트를 둘러싼 역사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곳의 무대에는 과감하고 급진적인 연출이 등장한다. 바그너의 작품을 아름다운 신화로만 재현하는 대신, 그 안에 담긴 권력과 욕망, 민족주의와 폭력의 문제를 오늘의 현실 속으로 다시 끌어온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바그너를 박제해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는 공간이다.

물론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결코 편하지 않다. 그의 음악을 그의 사상과 분리할 수 있는지, 그의 작품 속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그의 역사적 책임과 함께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바이로이트는 여전히 하나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바이로이트의 공연장은 덥다. 그것은 단지 에어컨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이곳이 품고 있는 음악과 역사 역시 여전히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바그너는 논쟁적이고, 불편하며, 뜨겁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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