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 건너편, 덕수궁 돌담 바깥 대한성공회 앞쪽에는 ‘명례궁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명례궁 터’는 본래 수양대군의 잠저(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에서 근원하였는데 본래의 위치는 지금의 명동 근처였다. 수양대군(세조)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큰아들 의경세자 도원군(훗날 덕종으로 추전됨)이 요절하자, 세조는 세자빈 한씨를 두 아들(월산대군과 자산군)을 데리고 자신이 왕이 되기 전에 살던 명례궁에 머물게 하였다. 동서(예종비)에게 왕비 자리를 빼앗긴 한씨는 절치부심 끝에 둘째 아들인 자산군(성종)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대비(인수대비)가 되어 입궁하면서 왕권 경쟁에서 밀린 큰아들 월산대군으로 하여금 명례궁을 지키게 하였다. 이후 명례궁은 비빈들에게 속궁(屬宮: 왕과 왕비에게 따로 주어지는 거처로, 주로 그들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곳)으로 주어져서 유지되다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다 불타게 되자 선조가 월산대군의 후손과 이곳에 살던 비빈들을 쫓아내고 명례궁을 차지하여 잠시 임시 행궁(정릉동 행궁)으로 활용하였다.
선조가 죽은 뒤 명례궁은 광해군에 의해 지금의 서울시청 건너편 위치로 옮겨져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을 바꾸어 정식 궁궐로 격상되었으나 궁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다가, 조선 말 명성황후가 왜인 낭인들에 의해 시해된 이후(1895), 고종이 경복궁을 피해 이곳 경운궁으로 피난을 오게 되면서 근대화된 조선의 정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옛 경운궁의 뒷길을 따라 아관파천(1896)을 해야만 했고 그 아픈 역사는 ‘고종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어 2018년 10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러일전쟁(1905)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한 후, 고종에 대한 일본의 퇴위 압박이 거세지고, 이에 견디지 못한 고종은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게 된다. 마지못해 황위를 계승한 순종(재위 1907~1910)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경운궁에 남겨진 아버지 고종에게 ‘덕수(德壽)’라는 호를 내리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수양대군의 잠저로부터 고종의 아픔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덕수궁의 정문은 본래 인화문(仁化門)으로 지금의 중화문(中和門) 앞쪽에 있는 문이었고 지금의 정문 역할을 하는 대한문은 본래 덕수궁의 동문이었다. 그나마 본래 이름이 ‘크게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安’ 자가 “여자가 갓(宀)을 쓰고 있는 형상이어서 남자들의 위치를 위협하게 되었다”는 속설 때문에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꾸었다는 뒷이야기가 민간어원처럼 남아 있다. 그나마 그 이름이 ‘大韓(큰 한민족의)’도 아니고 ‘大漢(큰 중국민족의?)’이어서 덕수궁의 고난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明禮洞(명례궁)’은 조선시대 훈도방 진고개(지금의 명동)로 본래 조선 초 명례방(明禮坊)에서 기원하며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살던 잠저(潛邸), 명례궁(明禮宮)이 이곳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명례방(明禮坊)’을 ‘명치정(明治町, 메이지초)’로 바꾸고 이를 줄여서 ‘명정(明町)’이라고 하던 것이 해방 후에 ‘명동(明洞)’이라고 부르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오늘날 ‘명동’을 ‘명례방’의 전통을 이어받은 ‘명동’이라면 모를까 ‘명치정’의 이름으로 남겨져서 ‘명동(明洞)’이 되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땅이름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명동’의 본래 명칭인 ‘명례동(明禮洞)’으로 바꾸고 그 속명으로 ‘명동’을 사용하거나 적어도 이 동명을 ‘명례동’의 전통으로부터 지명의 근원을 찾는 것이 우리 지명의 전통성을 넘어 잊힌 우리의 역사를 되살리는 길이리라.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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