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견과류 아플라톡신 오염 취약…냉동해도 생긴 독소는 그대로
들기름, 곰팡이독소 아닌 산패 주의…4℃ 이하 냉장·쩐내 나면 폐기
“곰팡이만 떼고 먹었는데?”
식빵에 바르려고 잼 뚜껑을 열었더니 표면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 있다. 아깝다는 생각에 곰팡이가 핀 윗부분만 숟가락으로 두껍게 걷어낸 뒤 나머지는 그대로 먹는다.
냉동실 구석에 넣어둔 땅콩도 마찬가지다. 고소한 향 대신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얼려뒀으니 괜찮겠지’ 싶어 입에 넣기 쉽다.
하지만 냉장고와 냉동실은 식품의 변질 속도를 늦추는 장치일 뿐이다. 이미 만들어진 곰팡이독소까지 없애주는 ‘안전 금고’는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상당수 곰팡이독소가 화학적으로 안정해 일반적인 식품 가공 과정에서도 남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볶음땅콩서 기준치 8.5배…아플라톡신은 1군 발암물질
땅콩과 옥수수, 일부 견과류는 아플라톡신 오염에 주의해야 하는 대표 식품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아플라톡신을 만드는 곰팡이는 작물이 자라는 과정부터 수확과 저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온도와 습도, 강수량 등도 오염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
국내에서도 실제 회수 사례가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7월 23일 아플라톡신이 기준치를 초과한 볶음땅콩 제품에 대해 판매 중단과 회수 조치를 했다.
식품안전나라에 공개된 검사 결과를 보면 총 아플라톡신은 127.3㎍/㎏으로 기준치인 15.0㎍/㎏의 약 8.5배였다. 아플라톡신 오염은 재배와 수확, 운송·저장 등 공급망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단 만들어진 독소다. 땅콩 등에 증식하는 일부 아스페르길루스속 곰팡이는 아플라톡신을 생성한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아플라톡신을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근거가 충분한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특히 간세포암과의 인과관계가 확립돼 있다.
물론 한 번 먹으면 곧바로 암에 걸린다거나 다른 발암물질보다 무조건 위험성이 크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위험은 노출량과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냉동했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냉동은 곰팡이가 증식하는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미 생성된 아플라톡신을 제거하는 과정은 아니다.
견과류에서 곰팡이가 보이거나 맛과 냄새가 평소와 확연히 달라졌다면 골라내 먹기보다 제품 전체를 버리는 게 안전하다. 미국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USDA FSIS)도 곰팡이가 핀 견과류와 땅콩버터는 폐기하도록 안내한다.
◆곰팡이 핀 잼, 윗부분만 걷어내도 안 되는 이유
잼은 설탕 함량이 높아 많은 미생물이 증식하기 어려운 식품이다. 그렇다고 곰팡이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USDA FSIS는 곰팡이가 냉장고 온도에서도 자랄 수 있고 다른 미생물보다 당과 염분에도 비교적 잘 견딜 수 있다고 설명한다. 냉장 보관한 잼이나 젤리에서도 곰팡이가 발견되는 이유다. 잼 표면에 곰팡이가 조금 보일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윗부분만 걷어내고 나머지를 먹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곰팡이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분이 많은 부드러운 식품에서는 실처럼 가느다란 곰팡이 균사가 표면 아래까지 뻗어 있을 수 있다. 일부 곰팡이가 만든 독소가 함께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USDA FSIS는 잼과 젤리에 곰팡이가 생기면 해당 부분만 덜어내지 말고 제품 전체를 버리도록 권고한다. 곰팡이가 마이코톡신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잼을 덜어낼 때는 음식물이나 침이 묻지 않은 깨끗하고 마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사용한 뒤에는 곧바로 뚜껑을 닫고 제품에 표시된 보관방법과 소비기한을 지키는 것이 좋다.
◆쩐내 나는 들기름…냉장 보관해도 산패는 되돌릴 수 없어
들기름은 곰팡이독소가 아닌 ‘산패’ 때문에 보관에 주의해야 한다. 들기름에는 오메가3 지방산인 알파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다. 알파리놀렌산은 지방산 구조상 산화에 취약해 공기와 빛, 높은 온도에 오래 노출될수록 변질되기 쉽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들기름을 서로 다른 온도에서 보관한 결과 25℃에서는 20주부터 산가와 과산화물가가 급격히 증가했다. 반면 4℃ 보관군에서는 40주까지 두 지표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저온 보관이 산패를 늦췄다는 실험 결과이지 모든 들기름을 개봉 후 40주까지 먹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품별 소비기한과 개봉 시점, 빛과 공기에 노출된 정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들기름은 뚜껑을 단단히 닫아 4℃ 이하에서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고소했던 향이 사라지고 평소와 다른 쩐내나 불쾌한 맛이 뚜렷하다면 사용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 냉장고에 다시 넣는다고 이미 진행된 산패가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냉장고가 늦출 수 있는 것은 변질의 ‘속도’다. 곰팡이가 핀 잼은 윗부분만 걷어내지 말고 통째로 버려야 한다. 곰팡이가 의심되는 견과류 역시 몇 알만 골라내고 계속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들기름은 4℃ 이하에서 밀폐 보관하고 냄새와 맛이 변했다면 폐기하는 것이 좋다. 냉장고에 넣었다고 식품의 안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저온 보관은 변질 속도를 늦출 뿐, 이미 생긴 곰팡이독소를 없애거나 진행된 산패를 되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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