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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현장서 훔치며 ‘악마의 미소’…30년 지나도 되풀이되는 재난 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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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나 인턴기자 sonyu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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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참사 절도범 약 400명 검거…일본 지진 현장도 예외 없었다
전문가 “재난 시 법적 규제 작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범죄 유발”

짙은 연기를 뚫고 목숨을 건 대피가 이어지는 절체절명의 현장. 누군가 타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질 때, 누군가는 슬그머니 타인의 물건에 손을 뻗는다.

 

대피와 인명 구조가 급선무인 재난 현장의 혼란을 틈탄 ‘재난 절도’ 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30년 전 서울 삼풍백화점 참사부터 최근 서울 신림동 화재, 일본의 대지진 현장에 이르기까지 참사 현장에서 혼란을 악용한 범죄가 되풀이되는 이유를 살펴봤다.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시민들이 대피하는 사이 식료품을 훔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A씨와 화재가 발생한 상가 건물. 인스타그램 계정 ‘no_mute’ 캡처, 관악경찰서 제공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시민들이 대피하는 사이 식료품을 훔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A씨와 화재가 발생한 상가 건물. 인스타그램 계정 ‘no_mute’ 캡처, 관악경찰서 제공

 

◆ 화재 현장에서 통조림 챙겨…국내 재난 범죄들

 

5일 서울 관악경찰서 등에 따르면 20대 여성 A씨는 지난 2일 오후 3시23분쯤 4층짜리 신림동 한 상가 건물 에서 불이 나 130여명이 대피하는 사이 건물 안 마트에서 식료품을 훔쳤다.

 

현장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A씨의 행동은 담담했다. 당시 매장 업주는 건물 밖으로 대피해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안내했으나 A씨는 오히려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A씨는 주변을 살피고 카메라 위치를 확인한 뒤 등을 돌린 채 통조림 등을 챙겼다.  

 

A씨는 범행 이튿날 피해 매장을 다시 찾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피해 매장에 “죄책감이 들어 찾아왔다”, “충동적으로 도벽이 발동할 때가 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불은 소방 인력 90여명이 투입된 끝에 40분 만에 진화됐다.

 

재난 현장을 노린 절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다. 인명 구조 작업이 한창이던 현장에서 붕괴를 면한 B동 슈퍼마켓 계산대를 털거나 무너진 A동의 잔해 더미를 뒤져 매몰 상품이나 희생자의 소지품을 훔쳐 가는 행태가 이어져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당시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인원만 약 400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절도범들은 현장 잔디밭에 놓인 골프채 29개를 몰래 가져가는가 하면 여름철임에도 추위를 핑계로 17만원 상당의 바지 10벌을 껴입고 절도를 저지르기도 했다. 특히 한 신원불명의 여성이 옷을 훔치며 웃는 장면은 지금도 ‘악마의 미소’라 불리며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사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세계일보에 “참사의 전반적인 여파를 고려하기보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면서 ‘나는 살아남았으니 이 기회를 노려야겠다’는 개인의 이기심이 작동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인명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옷을 훔치며 웃는 모습이 포착돼 이른바 ‘악마의 미소’로 알려진 신원 미상의 여성과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YTN·연합뉴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인명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옷을 훔치며 웃는 모습이 포착돼 이른바 ‘악마의 미소’로 알려진 신원 미상의 여성과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YTN·연합뉴스

 

◆ 강진 덮친 일본의 또 다른 수난, ‘절도’

 

지진 등 대형 재난이 잦은 일본에서도 이를 노린 절도 범행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일본의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전날 일본 규슈 서부 구마모토현에서 발생한 규모 7.1 강진 직후 대형마트 상황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지진으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나왔지만 작성자는 “지금이라면 마음껏 훔칠 수 있어서 좋다”는 취지의 글을 덧붙였다. 계정 소개란에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적혀 있으나 실제 신원이나 범죄 여부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현지 누리꾼들은 “재난 때마다 꼭 이런 인간들이 나온다.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 “농담이어도 정도를 넘는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질타를 쏟아냈다.

 

일본 이시카와현 경찰에 따르면 앞서 2024년 1월 노토반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오쿠노토 지역 기초자치단체 4개의 절도 사건 수가 지진 발생 전인 2023년 84건에서 2024년 178건, 2025년 242건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일본안전사회연구재단의 지원으로 2023년 발표된 논문 ‘구마모토 지진이 절도 범죄 증가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지진 발생 후 절도 범죄가 일시적으로 증가한다는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연구진이 2009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구마모토현 경찰서의 월별 도둑질 적발 건수를 분석한 결과 피해가 컸던 지역은 지진 직후인 2016년 4월에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건이 급증했고 5월 들어 증가세는 다소 완화됐으나 그 영향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피해가 적었던 지역은 지진 시점과 도둑질 건수에 유의미한 변화가 거의 없다고 조사됐다.

 

지난달 29일 SNS에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강진을 두고 “지금이라면 마음껏 훔칠 수 있어서 좋다”는 취지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을 공유한 글(왼쪽)과 원문.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지난달 29일 SNS에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강진을 두고 “지금이라면 마음껏 훔칠 수 있어서 좋다”는 취지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을 공유한 글(왼쪽)과 원문. 엑스(X·옛 트위터) 캡처

 

◆ 혼란 속 통제 공백이 부른 재난 범죄

 

재난 현장에서 범죄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재난이 발생할 때 대피로 인해 빈집이나 비어있는 매장이 늘어나는 반면, 경찰이나 주인의 감시는 공백 상태가 되는 것이 절도범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일본안전사회연구재단 연구진들은 “피해가 클수록 대피 인원이 늘어나 빈집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라며 “일본에서 일어난 한신·아와지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 구마모토 지진에서 범죄가 증가하는 배경은 ‘일상활동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일상활동이론은 범죄가 잠재적 범죄자의 존재, 적절한 범죄 대상, 이를 막을 유능한 감시자의 부재라는 세 가지 조건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동시에 충족될 때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곽 교수 또한 “재난 상황처럼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면 법적 규제나 제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평소 도덕적으로 억눌러왔던 욕망이 법질서가 흔들리는 시점에 도덕적 해이의 형태로 드러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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