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메모리 수직으로 쌓아 제작
낸드 기반 용량 크게 키울 수 있어
대역폭·용량 동시 잡는 기술 주목
본격 상용화 시점은 2030년 전후
표준 규격 선 공개로 주도권 확보
구글 등과 개방형 협력… 저변 넓혀
SK하이닉스가 미국 메모리 칩 기업 샌디스크, 거대기술기업(빅테크) 구글과 손잡고 고대역폭낸드플래시(HBF)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과거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공략하며 인공지능(AI) 메모리 강자로 올라선 것처럼, 그다음 세대 기술로 꼽히는 HBF 시장도 선점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4일(현지시간)부터 6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전시 행사 ‘FMS 2026’ 개막에 맞춰 HBF의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표준 규격 공개는 지난해 8월 SK하이닉스가 샌디스크와 HBF 올해 2월 개발을 위한 협력체를 출범한 지 약 6개월 만에 내놓은 첫 결과물이다.
이들이 개발 중인 HBF는 HBM과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메모리다. 메모리 반도체는 사용자의 지시에 맞춰 데이터를 처리하는 연산과 사용자가 입력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장 기능을 수행한다. HBM은 연산에 강점이 있다. 데이터의 이동 통로인 대역폭을 늘려 데이터 이동 속도를 빠르게 해 고속 연산이 가능하다. 연산은 빠른 반면, 저장용량이 적다. 주차가 불가능한 고속도로의 차선을 늘린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낸드플래시는 반대로 저장용량은 한없이 크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연산과 데이터 저장이 별개의 개념이었던 AI산업 초창기만 해도 두 반도체를 각각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AI산업에 막대한 데이터를 소모하는 ‘추론’ 개념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용량의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고속 연산이 필요한 상황이 빈번해지자, HBM과 낸드플래시의 강점을 합친 제품이 절실해졌다. 이에 맞춰 등장한 개념이 HBF다. D램을 쌓아올려 만든 HBM처럼, HBF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아올려 제작한다. 낸드플래시 기반으로 대역폭을 늘린 제품이다. HBM의 빠른 연산과 낸드 플래시의 대용량 저장 공간을 함께 가지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와 협력회사들이 개발 중인 HBF는 HBM을 웃도는 성능을 자랑한다. 용량은 최대 512GB까지 저장할 수 있고, 대역폭은 0.4TB(테라바이트)/s에서 3.0TB/s까지 구현했다. 1초에 최대 3TB에 달하는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연결 방식은 업계 표준 방식인 ‘UCle’를 채택했다. 덕분에 어떤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와도 문제없이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HBF는 당장 개발이 완료된 제품은 아니다. 반도체 업계는 HBF의 본격 상용화 시점을 2030년 전후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제대로 된 출시에 4년이나 남은 기술의 표준 규격을 서둘러 공개하는 배경에는 산업 주도권이 있다. 제품의 표준 규격을 선점하면 자사가 확보한 기술과 강점을 그대로 규격에 녹여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들은 규격을 만든 회사와 동일하게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자사 제품이 곧 업계의 표준이 되기 때문에 시장의 판을 유리하게 짤 수 있고, GPU·CPU 제조사와 소프트웨어·부품 기업을 조기에 자기 진영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HBM3부터 HBM 시장을 발 빠르게 꿰찬 덕에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을 제치고 AI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한 바 있다. HBM에서 통했던 선점 공식을 HBF에서도 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표준 규격 공개를 계기로 AI 메모리 시장 내에 HBF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속도를 낼 것” 이라며 “개방형 협력을 바탕으로 (HBF의) 저변을 넓히는 동시에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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