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은 자연의 섭리를 깨치는 수양
금강산 유람은 다음 생에서도 소원
관동팔경의 위상 앞에선 신분도 무색
기생 출신 만덕도 청했던 금강산 유람
사찰은 선비들의 산중 게스트하우스
당시 최고 콘텐츠는 정철의 관동별곡
“관동은 진실로 형승의 고장이라 선비가 세상에 나면 유람을 해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자가 없다.” –이행, 《용재집》 –
세상이 요구하는 배역을 연기하다 정작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시대다. 이 각박한 시대에 여행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증명하는 필수템이 되었다. 밤새 ‘랜선 여행'을 즐기다 꿈속에서마저 길을 나서는 중증 여행 앓이 환자들이 늘고 있다. 우리에겐 늘 현실 너머 넓은 세상을 마주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여행 DNA'가 흐른다. 이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조선 선비의 버킷리스트 1순위 역시 산수 유람이었다.
조선 선비에게 산수 유람은 호연지기를 기르고 자연의 섭리를 몸소 깨닫는, 수양을 겸한 고결한 풍류였다. 선비가 가장 갈망했던 ‘핫플레이스’는 단연 ‘금강산’과 ‘관동팔경’이었다. 오죽하면 이시직은 관동을 유람하는 것이 전생·현생·내생의 숙원이라 고백했을까.
조선시대 관동팔경 유람 앞에서는 귀천도, 남녀노소의 구별도 무색했다. 1788년 정조는 관동의 풍경을 곁에 두고자 김홍도에게 그 실경을 그려오게 했다. 1796년 정도가 백성을 구휼한 제주도 기생 출신 거상 만덕을 포상하려 하자, 그녀는 금강산 유람을 요청하였다. 기생이라는 신분과 여성이라는 제약을 넘어 금강산으로 향했던 만덕의 바람은, 당시 관동의 산수가 지녔던 상징성을 웅변한다.
선비들에게 관동유람은 출발부터 설렘이었다. 짚신과 지필묵, 요깃거리 등 유람의 ‘잇템’을 나귀 등에 싣고 길을 나서노라면, 천하 명산 금강산과 조선 제일의 팔경인 관동팔경을 마주한다는 기대에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밤마다 꿈결에 거닐던 풍경이 마침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 짜릿함은 어떠했을까. 신선 세계처럼 황홀한 금강산 전경에 넋을 잃고, 끝없이 펼쳐진 동해를 마주하며 대자연 속 한 마리 하루살이 같은 인간의 무상함을 통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붉게 타오르는 일출 앞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경외하며, 속세의 혼돈을 이겨낼 힘과 희망을 길어 올렸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호텔이나 리조트 같은 전문 숙박 시설이 드물었다. 유람에 나선 선비들은 주로 공무 수행자를 위한 원(院)이나 주막, 혹은 민가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산중에서는 사찰이 일종의 게스트 하우스 역할을 했다. 승려들은 선비들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선비들은 그 대가로 시 한 수를 써주거나 소박한 보시를 얹었다. 여기에 더하여 대부분의 선비는 승려들이 메는 의자 형태 가마인 ‘남여(藍輿)’를 타고 산을 구경했다. 신분제 사회에서 누릴 수 있었던 선비들만의 ‘플렉스'였으나, 유람의 낭만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었다.
선비들은 관동유람의 짜릿한 전율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어 했다.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그들의 손에는 붓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현장의 바위에 이름과 글을 새겨 일종의 방문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고, 벅찬 감흥을 시와 여행기로 써 내려갔다. 때로는 화가를 대동해 눈앞의 풍경을 화폭에 옮겼다. 관동의 명품 경관과 유람객의 예술적 기예가 만나 ‘프리미엄 굿즈’가 탄생한 것이다. 정철의 <관동별곡>이나 정선, 김홍도의 관동 산수화는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인기 콘텐츠였으며, 이들은 오늘날의 파워블로거나 메가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명성을 누린 조선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었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디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여행이 쉬워진 만큼, 그 길 위에 서린 간절함과 설렘의 밀도는 오히려 희박해진 것은 아닐까. 초고속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조선의 선비들처럼 풍경 하나를 깊게 음미하는 느긋한 낭만이 절실하다. 가끔은 속도를 늦추고 대자연의 결을 씹어보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각박한 일상에서 나를 되찾는 진정한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동해의 시원한 파도 소리에 마음의 번뇌를 씻어내고, 장쾌하게 뻗은 백두대간의 능선을 바라보며 삶을 반추해 보는 것. 수백 년 전 조선 선비들이 꿈속에서조차 염원했던 관동유람의 ‘찐’ 가치였다. 이제 우리의 다음 여행에서는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놓자. 대신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기상을 영혼에 오롯이 담고자 했던 조선 선비들의 마음에 빙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풍경 속에 진짜 ‘내’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17)
이상균 강원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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