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평범한 청년이 출근길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리며 시작된다. 주인공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지만, 결국 법정에 서게 된다. “인정하면 벌금형으로 끝난다”는 권유도 받지만, 그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끝내 무죄를 다투기로 한다. 영화는 한 사람이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형사사법 절차를 견뎌야 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몇 해 전 나도 기사와 관련해 고소장을 받아본 적이 있다. 수많은 고소·고발 사건 기사를 썼지만 막상 경찰 조사를 받게 되니 긴장이 됐다. 변호인을 선임할지 고민했지만 법리를 공부하고 판례를 찾아 나홀로 경찰서를 찾았다. 투명한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경찰이 묻는 말에 답하며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나와 있는 판례를 들어가며 내 입장을 설명했다.
이후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송치 결정을 내렸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소인의 불복으로 검찰의 재수사 요청이 이뤄져 다시 수사가 진행됐다. 검찰도 결국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하는 재정신청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경찰과 검찰, 법원을 거치는 3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사건은 끝났다.
당시에는 ‘왜 이렇게 끝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이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관이 같은 사건을 다시 살피고 앞선 판단을 검증하는 절차였다. 고소인에게는 수사기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를 보장하고, 수사기관에는 앞선 판단을 다시 점검할 책임을 지우는 장치였다. 피의자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형사사법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만큼이나 결론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검증과 견제를 거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몸소 체험했다.
최근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은 주로 검찰 권한 축소와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형사사법 시스템은 “누가 권한을 갖느냐”보다 “국민이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둬야 한다. 범죄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아야 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도 없어야 한다.
형사사법 절차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새로 바뀌는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절차가 이러한 원칙을 얼마나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수사권자가 바뀌었다면 그에 맞는 책임성과 통제장치도 함께 고민돼야 한다. 새롭게 설계되는 형사사법 절차도 이러한 원칙을 충실히 구현해야 한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손질되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제도여야 한다. 이번 개정 역시 검찰의 권한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아니라 국민이 더 공정하고 충실한 수사를 받을 수 있게 됐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국민의 권리가 저절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형사사법제도의 기준은 특정 기관이나 정권이 아니라 그 제도를 이용하게 될 국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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