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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쓰레기장 옆 흙수저 아파트의 40년… 성산시영이 견뎌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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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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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난지도 저지대에 세워진 3710가구 서민 보금자리
상암 월드컵지구 개발과 '주거 사다리'… 몸테크족 터전
용적률 148% 사업성… 2025년 조합설립 거쳐 4800가구로

 

1986년 가을 마포구 성산동 저지대 흙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에 웅장한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성산동은 바로 옆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서 먼지와 악취가 날려 오고, 비만 오면 땅이 질척이던 서울의 쓸쓸한 외곽 변두리였다.

 

지하철 6호선도 없던 시절, 3040 청년 가장들과 신혼부부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연탄가스 걱정 없이 따뜻한 중앙난방이 들어오는 번듯한 아파트, 방 2개짜리 소형 평형이었지만 ‘내 명의로 된 첫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날의 감격은 강렬했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서울에 겨우 뿌리내린 서민들의 꿈의 전진기지였던 마포구 성산시영 아파트(대우·선경·유원 3710가구)는 이제 서울 서부권을 대표하는 최고 몸값의 ‘재건축 대어’가 됐다.

 

40년 전 연탄 때던 시절의 아파트에서 수명을 다한 배수관이 누수를 일으키고, 세면대 수도꼭지마다 갈색 녹물 필터가 달리는 노후 단지가 됐지만, 이곳의 매매가는 현재 16억 원을 넘나든다. 성산시영이 견뎌온 40년의 세월 속에는 대한민국 서민과 중산층이 걸어온 주거 이동의 역사와 자산 축적의 희노애락이 켜켜이 쌓여 있다.

1986년 준공되어 올해로 40년 차를 맞이한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 아파트(24동·25동 방향) 전경. 외벽에는 시공사 선정 및 재건축 동의율 달성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지하주차장이 없어 지상 주차장에는 빼곡하게 차들이 들어서 있다. 양다훈 기자
1986년 준공되어 올해로 40년 차를 맞이한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 아파트(24동·25동 방향) 전경. 외벽에는 시공사 선정 및 재건축 동의율 달성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고, 지하주차장이 없어 지상 주차장에는 빼곡하게 차들이 들어서 있다. 양다훈 기자

대우·선경·유원이 나눠 지은 3,710가구… 마포를 지탱한 거대한 보금자리

 

성산시영의 시작은 서울의 격동적인 확장기였던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는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인한 주택난을 해소하고 서민 주거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서울 외곽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을 조성했다. 성산지구 역시 그 일환이었다.

 

당시 서울 서부권 최대 규모로 들어선 성산시영은 국내 대표 건설사였던 대우건설,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유원건설 3개 사가 구역을 나누어 지었다. 유원건설이 지은 1동부터 15동까지는 전용면적 59㎡(23평형) 중심의 단지로 조성됐다. 선경건설이 지은 16동부터 23동, 그리고 대우건설이 지은 28동부터 33동까지는 전용면적 50㎡(21평형, 20평형) 소형 평형으로 채워졌다.

 

현재 마포구에서 가장 가구 수가 많은 단지인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3885가구)’에 이어 마포구 내 세대수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묵직한 거인이다.

 

1986년 입주 당시 30대 청년이었던 원주민 B(72)씨는 “당시엔 비만 오면 땅이 질척이고 교통도 불편했지만, 번듯한 아파트에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에 밤잠을 설쳤다”며 “그 시절 성산시영은 서울에서 기반을 잡으려 애쓰던 젊은 가장들의 거대한 꿈의 전진기지였다”고 회상했다.

 

성산시영 아파트 단지와 서울월드컵경기장 일대 항공 조망(2020년 3월 촬영). 전경에 펼쳐진 성산시영 아파트 단지(18동~24동 등) 바로 건너편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불광천, 그리고 난지도 매립지가 변모한 상암 생태공원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데이터연구원 제공
성산시영 아파트 단지와 서울월드컵경기장 일대 항공 조망(2020년 3월 촬영). 전경에 펼쳐진 성산시영 아파트 단지(18동~24동 등) 바로 건너편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과 불광천, 그리고 난지도 매립지가 변모한 상암 생태공원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 데이터연구원 제공

 

2000년대: 상암의 대변신과 '이주 사다리', 그리고 부동산 잔혹사

 

2000년대에 접어들며 성산시영을 둘러싼 도시의 지형도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와 함께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가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고, 그 뒤편으로 ‘상암 DMC(디지털미디어시티)’와 신도시급 단지인 ‘상암 월드컵파크(1~12단지)’가 들어선 것이다.

 

성산시영에서 15~20년 가까이 살며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늘려온 주민들에게 상암지구 개발은 새로운 기회였다. 소형 평형과 주차난, 노후 배관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은 “같은 서마포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더 넓고 쾌적한 새 아파트로 가자”며 상암 월드컵파크 단지(주로 30~40평형대)로 대거 이주했다.

 

당시 성산시영은 서민들이 자산을 모아 더 넓은 평형으로 차근차근 옮겨가는 든든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하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이주사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교차한다. 2000년대 초반 성산시영을 거쳐 상암 월드컵파크로 이사했다는 50대 주민 A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쉬운 한마디를 던졌다.

 

A씨는 “당시엔 애들이 크고 지하주차장도 없으니까 상암동 새 아파트로 옮기는 게 주거 환경도 좋아지고 성공하는 이사인 줄 알았죠”라며 “지금 성산시영 재건축이 진행되고 집값이 치솟는 걸  보니 그냥 전세주고 전세갈 걸 그랬나봐요”라고 웃었다. 현재 상암월드컵 30평대 매물들은 재건축 프리미엄이 붙은 성산시영 20평대 매물보다 저렴하다.

 

쾌적한 주거 환경을 찾아 떠난 이들과, 녹물과 주차난을 견디며 노후 아파트에 남아 ‘몸테크’를 선택한 이들. 성산시영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거쳐 간 사람들의 희비는 어떤 선택을 했냐에 따라 달라졌다.

 

성산시영 복도에서 바라본 서울월드컵경기장 조망. 양다훈 기자
성산시영 복도에서 바라본 서울월드컵경기장 조망. 양다훈 기자

 

용적률 148%의 잠재력… 59㎡ 실거래가 16억 8000만 원 '재건축 대어'의 현주소

 

원주민들이 떠나고 건물은 낡아갔지만, 성산시영이 품고 있던 ‘땅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했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과 맞닿은 초역세권 입지, 상암 DMC·여의도·광화문 등 서울 3대 주요 업무지구로 통하는 뛰어난 교통망, 그리고 불광천과 월드컵공원을 끼고 있는 환경적 입지가 재건축 시대와 맞물리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 것이다.

 

특히 성산시영의 핵심 무기는 우수한 사업성이다. 기존 용적률이 148%에 불과하고, 가구당 평균 대지지분이 13.9평에 달한다. 이는 서울 재건축 단지 중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사업성 수치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성산시영의 재건축 시계는 빠르게 돌아갔다. 2020년 12월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며 서울 서부권 재건축 시장의 핵심 대어로 급부상했고 2025년 12월 재건축 사업의 핵심 8부 능선이라 불리는 ‘조합설립인가’를 획득했다.

 

현재 성산시영 전용면적 59㎡(유원)의 실거래가는 16억 8000만 원 선을 형성하고 있다. 1986년 소형 서민 아파트로 시작했던 이곳이 40년 만에 서울 서부권 부촌의 상징적 가격대에 진입한 것이다.

 

향후 재건축이 완료되면 기존 3710가구는 최고 35~40층, 약 4800가구 규모의 초대형 신축 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마포구 가구 수 1위인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3885가구)'를 제치고 마포구 최대 단지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눈 쌓인 성산시영 아파트 단지의 지상 주차장 현장. 지하주차장이 없는 1980년대 구축 단지 특성상 지상 주차 구역을 넘어 통로마다 이중·삼중 주차된 차량들이 빼곡하다. 양다훈 기자
눈 쌓인 성산시영 아파트 단지의 지상 주차장 현장. 지하주차장이 없는 1980년대 구축 단지 특성상 지상 주차 구역을 넘어 통로마다 이중·삼중 주차된 차량들이 빼곡하다. 양다훈 기자

2~3억 대 전세 오아시스와 ‘몸테크’ 영끌족의 동거

 

재건축이라는 거대한 미래 가치 뒤편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지독한 실거주 고충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지하주차장이 없어 매일 밤 벌어지는 이중·삼중 주차 전쟁, 운전석 문을 열지 못해 트렁크로 타고 내려야 하는 고단함, 여전히 세면대 필터를 며칠 만에 갈색으로 물들이는 수돗물, 삐걱거리는 복도식 엘리베이터. 노후화로 인한 고충에 눈물짓다 떠나는 세대가 있는가 하면,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새로 들어오는 젊은 세대도 존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산시영의 심각한 노후화는 ‘서울 한복판에서 2~3억 원대 전세금으로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오아시스’를 제공하는 역설을 낳았다.

 

상암 DMC나 여의도, 종로로 출퇴근하는 30대 직장인과 신혼부부들에게 성산시영의 저렴한 전세가는 서울 실거주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유용한 사다리가 되어준다. 동시에 10억 원이 넘는 매매가를 치르고 들어와 녹물과 주차난을 참아내며 재건축 완공을 기다리는 3040 '몸테크 영끌족'도 단지 내부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40년 전 흙먼지 날리던 마포 변두리에서 첫 집 마련의 기쁨을 누렸던 1세대 원주민과 2000년대 상암으로 이주한 세대, 그리고 미래 가치를 바라보며 불편을 참아내는 영끌족까지. 성산시영이라는 하나의 공간에는 서로 다른 세대와 계층의 삶이 오롯이 겹쳐져 있다.

 

40년 차 노후 단지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성산시영 아파트 내 놀이터 전경. 양다훈 기자
40년 차 노후 단지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성산시영 아파트 내 놀이터 전경. 양다훈 기자

40년의 허물을 벗고, 다음 세대의 서울을 향해

 

건축학적으로 아파트의 수명은 30~40년이라 한다. 콘크리트는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되고, 철근은 녹슬며, 배관은 누수를 일으킨다.

 

그러나 성산시영이 걸어온 40년은 단순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노후화’로만 치부될 수 없다. 이곳은 1980년대 대한민국 서민들이 가난을 딛고 중산층으로 도약했던 발판이었고, 2000년대 마포가 서울의 핵심 주거지로 변모하는 과정의 든든한 징검다리였으며, 오늘날 청년들이 서울에 뿌리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삶의 현장이다.

 

조합설립인가를 마치고 본격적인 재건축 궤도에 오른 성산시영은 이제 조만간 40년 묵은 콘크리트 허물을 벗어 던질 것이다. 녹물이 나오던 수도관은 지워지고, 밤마다 전쟁이 벌어지던 주차장은 넓은 지하 주차장으로 바뀔 것이며, 5층·14층 복도식 아파트는 35층 높이의 현대적 마천루로 재탄생할 것이다.

 

최고 35~40층, 4800여 가구 규모의 랜드마크로 재탄생할 성산시영 아파트 재건축 조감도. ANU건축 제공
최고 35~40층, 4800여 가구 규모의 랜드마크로 재탄생할 성산시영 아파트 재건축 조감도. ANU건축 제공

 

40년 전 연탄가스를 피우던 마포의 변두리 아파트가 16억 원대의 명품 단지로 변신하는 서사는, 단순한 ‘부동산 투기’나 재건축 대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도시 서울의 생로병사이자, 한 세대의 추억과 정성이 다음 세대의 터전으로 교체되어 가는 대한민국 주거사 그 자체다.

 

성산시영의 콘크리트는 허물어지겠지만, 그 속에서 40년간 쌓여온 서민들의 삶과 기억은 새로 들어설 4800가구 아파트의 머릿돌 속에 그대로 남아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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