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한 달간 최악의 폭락장을 경험했던 국내 증시가 마지막 날 기사회생했다. 사흘간 1100포인트 넘게 떨어진 지수가 하루 만에 1000포인트 이상 급등하는 등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변동성 장세를 보였다. 증권가에선 이달 코스피 우상향 전망에 힘을 싣는 가운데 미국 금리 결정에 영향을 끼칠 각종 경제지표 발표와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의 실적발표가 증시 향방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지난달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주요 20개국 통화 중에서도 원화 가치 상승폭이 최고였다. 지난달 초 1560원을 위협하던 환율은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 자금과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 확대에 힘입어 지난달 말 1420원대까지 내려오는 등 변동폭이 가팔랐다.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주문에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지만, 지난달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마통) 모두 큰 폭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증시가 지난 주 역대급 폭락과 반등으로 큰 변동성을 보였음에도 5대 은행 마통 잔액이 3년9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여전했다.
◆‘최악의 한 달’ 보낸 코스피, 바닥 찍었나
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코스피 지수는 전장보다 1001.89포인트(17.91%) 오른 6595.45로 마감했다. 역대 최대 상승 폭, 상승률이다. 앞서 28∼30일 사흘간 1162.19포인트가 빠졌지만, 하루 만에 손실의 86%를 회복했다. 그동안 국내 대형 반도체주 중심으로 매도 폭탄을 쏟아내던 외국인이 7조2197억원을 순매수한 게 결정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이 컨센서스(시장평균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놓으면서 미국 반도체 업종이 큰 폭으로 반등한 영향이 컸다.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약 4배 레버리지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종목에 집중 투자하다가 강제청산 위기에 몰려 보유 주식 대부분을 헤지펀드 시타델에 넘겼다는 소식도 투자심리를 되살렸다. 최근 반도체주 급락을 키웠던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하면서다.
7월은 국내 증시 역사에 남을 만한 ‘최악의 한 달’이었다. 코스피는 월간 22.2% 급락하며 전 세계 주요 주가 지수 중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다. 지수가 급등한 31일을 제외하고는 하락률이 34.01%에 육박해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0월(-27.25%)과 금융위기였던 2008년 10월(-23.13%)보다 더 큰 변동성을 보였다. 코스피를 이끄는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21.41%, 35.17% 급락했다. 코스닥 지수도 한 달간 21.4% 폭락하며 역대 7번째 하락률을 기록했다. 증시 부진에 지난달 31일 기준 6월30일 대비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은 전체 종목(2645개)의 70% 수준인 1859개에 달했다.
코스피는 한 달 내내 글로벌 AI·반도체 업황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우려와 중국발 반도체 악재 등에 시달렸다. 특히 중국의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상장과 국영 기업의 액침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 제조 보도 등 중국의 ‘반도체 굴기’ 소식은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AI·반도체 업계에 전례 없는 타격을 가했다. 여기에 5월 말 출시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역시 코스피 변동성을 자극한 요소로 꼽힌다.
코스피가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면서 증권가에선 상승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낙폭이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비해 과도했던 만큼, 충분히 바닥을 다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여전히 변동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의 금리 방향, 글로벌 빅테크의 실적발표 등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이달 코스피의 범위를 5500~8000으로 제시했다. 그는 “금리가 단기에 쉽게 내려오기 힘든 상황에서 증시가 다시 고점을 그리는 추세적 반등에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변동성에 노출되는 기간을 좀 더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이외에도 삼성증권이 6000~8000, 유안타증권은 5150∼6350을 이달 예상 범위로 각각 전망했다.
금융당국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대책도 수급 안정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본예탁금이 1000만원에서 현금 3000만원으로 상향된 첫날인 지난달 31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16종목의 거래대금은 약 3조원으로, 30일(12조4000억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환율 한달새 125.4원 급락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오후 3시30분 기준(기존 주간거래 종가) 1424.0원으로 집계돼 한 달 전인 6월말(1549.4원)보다 125.4원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150.5원 하락) 이후 월간 기준 가장 큰 폭의 내림세다. 7월 한 달간 달러화 대비 원화의 절상률은 8.81%로, 역시 2009년 3월(10.88%)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달 원화 가치는 주요 20개국 통화 중 가장 크게 올랐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달 말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6월말보다 7.95%(뉴욕 시장 종가 기준) 올라 주요 20개국 통화 중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원화와 동반약세였던 일본 엔화는 한 달 새 3.15% 상승했지만, 원화보다 상승폭은 작았다. 영국 파운드는 1.63%, 호주달러 1.45%, 캐나다달러 1.27%, 유럽 유로화 0.94% 등의 상승폭을 보였다.
원화 가치의 극적인 상승은 지난달 10일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에 따른 자금 유입과 수출기업의 네고(달러 매도) 덕분이다. SK하이닉스는 ADR로 조달한 265억달러 중 상당액을 국내 설비 투자를 위해 순차적으로 환전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주요 수출기업은 8월 법인세 중간예납을 위해 달러를 원화로 바꿨고, 한화오션이 20억달러 이상 선물환 매도를 하는 등 중공업체의 환헤지 수요도 더해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리밸런싱(비중조절)이 주춤해진 것도 한몫했다. 주가가 급등한 지난달 31일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7조3800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1일 장중 1559.2원까지 오르며 고공행진하던 환율은 지난달 중순 방향을 급전환해 30일 장중 1418.0원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0월20일 이후 9개월 만의 최저치다. 지난달 마지막 주(27∼31일)에는 환율이 42.6원 내려 주간 기준 2022년 11월 7∼11일(100.8원 하락) 이후 약 3년8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환율이 빠르게 떨어지자 개인들은 서둘러 달러 매수에 나섰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개인 고객이 원화를 달러화로 바꾼 규모는 총 2억8500만달러로 6월(1억6400만달러)보다 74%가량 늘었다. 이는 올해 1월(5억600만달러)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주담대·마통 큰 폭 증가세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7월30일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617조4287억원으로 6월 말(615조1456억원)에 비해 2조2831억원 늘었다. 5월 1조1437억원, 6월 1조7576억원에 이어 증가액 규모가 커지며 지난해 8월(3조7012억원) 이후 11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주택 매수 수요가 꾸준히 유입된 결과로 보인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함께 커지면서 증가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 뒤 집값을 전망하는 지표인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7로 전월 대비 7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집값 오름세가 이어졌던 2021년9월 이후 4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연간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하면서 시중은행들은 자체적으로 대출 한도 억제에 나섰지만 증가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KB국민은행은 7월 초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축소하고 다른 은행들도 대출모집인 채널을 통한 대출 신청 접수를 일시 중단하거나 모기지 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하는 등 대출을 조였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대통령 주재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피해 사례가 제기되며 잔금대출을 총량에서 제외하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대출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담대 증가세에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풀이된다.
주담대가 증가하면서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제시한 연간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정책성 대출 제외)은 이미 올해 초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연간 목표치보다 1조원 넘게 초과했다. 두 곳은 목표치의 197%, 168%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44조4669억원으로 2022년 8월(44조7699억원) 이후 최대치로 집계됐다. 6월 말에 비해 1조1857억원 늘며 5월(1조8579억원), 6월(1조8329억원)에 이어 석 달 연속 1조원대 증가세를 지속했지만 증가폭은 다소 축소됐다.
지난달 마통 잔액은 첫째 주(1~3일) 3289억원, 둘째 주(4~10일) 372억원, 셋째 주(11~16일) 5111억원으로 증가했다가 급여일이 몰린 넷째 주(17~24일)엔 1조4416억원 감소했다. 이후 다섯째 주(25~30일)에 다시 1조7501억원 늘었다. 이틀 연속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며 코스피가 5200선까지 밀려나자 저가매수를 노린 수요가 늘어 마통 잔액도 덩달아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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