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 작품, 프리미엄 예술로 조명
해외전시·국제 아트페어 진출 잇따라
이우환 작품 美·이탈리아서 전시 일정
양혜규·나미라 미국서 개인전 계획도
해외 아트페어 출품작 판매 실적도 쑥
스타 1명 아닌 여러명 시장 진입 주목
현 미술계 지원 마켓·판매자·딜러 쏠림
기획자·비평가 등에 확대 필요성 제기
K아트가 K컬처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를 전후해서 급격한 팽창과 조정을 경험한 국내 미술시장은 최근 거래 규모와 해외 전시, 국제 기관 진출이 함께 늘어나는 질적·양적 반등 국면에 들어섰다. 단순히 경매 실적이 되살아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미술이 독자적인 성장 경로로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작가의 국제적 위상에도 질적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해외 미술계의 관심은 단색화 거장이나 일부 스타 작가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세대, 그 배경에 놓인 문화적 정체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은 희소성과 독자적인 미학을 갖춘 프리미엄 예술로 조명받으며 주요 미술관 전시와 국제 아트페어 거래로 진입로를 넓히고 있다.
◆뻗어나가는 K아트
한국 미술의 달라진 위상은 시장 밖에서 먼저 확인된다. 미국의 대표적 현대미술 기관인 미국 디아미술재단은 지난 5월 뉴욕주 디아비컨에서 이우환의 모노하 시기 조각과 최근 소장한 회화를 함께 선보이는 전시를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도 공식 병행전시로 산마르코 아트센터 8개 전시실에서 개인전 ‘이우환’이 열리고 있다. 11월까지 초기 작품과 대표 설치작, 최근 회화까지 70여년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디아미술재단은 10월에는 디아비컨에서 양혜규 개인전 ‘스루’를 개막한다. 또 뉴욕 현대미술관은 11월 14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한국계 미국 작가 나미라의 개인전 ‘노 스모킹’을 열고 새 미디어 설치작을 선보인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은 파리에서도 두 개의 전시가 나란히 열렸다. 세르누치미술관은 신성희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을, 화이트큐브 파리는 박서보의 ‘묘법’ 연작을 소개하는 개인전을 각각 선보였다.
이처럼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통로는 상업 갤러리와 미술관, 비엔날레, 기업 후원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국내 작가가)유학을 갔든 활동 거점을 옮겼든 현지에 정착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 정도가 걸린다”며 “그 적응 기간을 지나 성과를 내는 시점이 지금의 K아트에 대한 관심과 맞물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미술계가 가지는 관심의 성격도 예전과는 다르다. K팝과 드라마로 형성된 팬층이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고 이같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그 주변의 문화와 예술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라진 K아트 위상은 해외 아트페어 실적으로 확인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를 보면 지난 4월 미국 엑스포 시카고에 참가한 한국 화랑 12곳은 출품작 360여점 가운데 100여점을 판매해 전년보다 나은 실적을 냈다. 5월 프리즈 뉴욕에서 국제갤러리는 하종현·이기봉·함경아·김홍석 등의 작품을 판매했다. 티나킴갤러리도 하종현 작품 두 점과 김창열·이신자의 작품을, 조현화랑은 이배의 작품으로 꾸린 부스에서 10만∼25만달러대 판매를 기록했다.
판매와 비평적 평가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6월 아트바젤에서 PKM갤러리가 프리미어 섹터에 마련한 홍영인 개인 부스는 미술 전문 플랫폼 아트시가 선정한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미술계 특정 스타 한 명의 성공이 아니라 여러 세대와 경향의 작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국제무대에 진입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미술 거점으로 떠오른 서울
서울이 아시아 주요 미술 거점으로 급부상한 것도 K아트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미술관 관람객 수를 매년 조사하는 영국 미술 전문지 ‘더 아트 뉴스페이퍼’는 지난 3월 말 발표한 조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루브르박물관과 바티칸박물관에 이은 세계 3위로 집계했다. 지난해 관람객이 650만7483명으로 전년보다 70% 이상 늘며 영국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앞질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도 관람객이 28% 늘어 약 211만명을 기록하며 35위에 올랐다. 매체는 세계 주요 미술관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증가세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서울의 위상을 높여준 프리즈 서울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 한국화랑협회와 프리즈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의 공동 개최 계약을 5년 더 연장해 2031년까지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서울을 단기 행사 개최지가 아니라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장기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 결산에서 리만머핀의 레이철 리만 대표는 “서울이 강력한 컬렉터, 기관, 작가, 갤러리 생태계를 기반으로 계속 성장하는 세계 주요 미술 중심지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지난 6월에는 여의도 63빌딩에서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국내 분관 격인 ‘퐁피두센터 한화’가 문을 열어 앞으로 4년간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를 이어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6월 13일 이탈리아 우피치미술관과 전시 교류와 소장품 관리·복원 등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다.
다만 화랑이 작품을 직접 거래하는 1차 시장은 일부 해외 갤러리의 철수와 국내 중견 갤러리의 폐업·운영 중단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래가 대형 경매사와 검증된 작가에 집중되면서 시장의 저변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미술계에서는 지원 방식의 전환 등을 K아트 성장 과제로 지목한다.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 대표는 “현재 지원은 마켓과 판매자, 딜러 중심에 많이 치우쳐 있다”며 “기획자와 연구자, 비평가, 포럼, 전시기획, 쌍방향 문화교류로 지원 채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 중심이 아니라 작가와 그를 둘러싼 문화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져야 K아트에 대한 연구와 장기적인 컬렉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업의 예술 투자도 사회공헌을 넘어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루이비통과 에르메스는 미술관과 재단을 운영하며 제품을 넘어 문화를 생산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이 본보기 사례다. 김 대표는 “예술 지원은 단순한 사회공헌이나 헌신이 아니다. 수치로 즉시 환산하기 어려울 뿐, 예술 지원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주체는 결국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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