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최악의 공포에 빠졌다. 반도체 업황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SK하이닉스 2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음에도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자 코스피는 결국 6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정부는 변동성 확대 원인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개인별 투자 한도를 설정하고, 거래 비용 부담을 가중하는 등의 추가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척결을 위해 출범한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의 ‘1호 사건’이 강제수사 절차 위반 논란에 휩싸이며 암초를 만났다. 최근 법원이 압수물 지연 반환 등을 이유로 핵심 피의자의 준항고를 인용한 데 이어 또 다른 주요 피의자가 위법 수집 증거를 주장하며 제기한 별도의 불복 절차가 법원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패가망신’을 공언한 첫 사건부터 절차적 흠결 논란이 불거지면서, 자칫 핵심 증거가 효력을 잃고 본안 수사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공포에 빠진 국내 증시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360.42포인트(5.98%) 하락한 5663.24에 장을 마쳤다. 전날 10.84% 폭락한 것을 합쳐 이틀 동안 1092.51포인트(16%)나 빠졌다. 지난달 19일 기록한 전고점(장중 9385.59)에서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약 40% 내린 수준이다. 이날 기준 코스피 월간 하락률은 33.18%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1997년 10월·-27.24%)를 넘어 역대 최대를 향해가고 있다. 코스닥 지수 역시 43.17포인트(6.12%) 떨어진 662.68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오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엔 강한 매도세에 연이어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그럼에도 시장은 진정되지 않았고 낮 12시19분 코스닥, 12시32분 코스피에 잇따라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코스피 시장의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역대 15번째, 올해 들어서는 9번째다. 코스닥 시장의 서킷브레이커는 역대 14번째 올해 4번째다. 이틀 연속 양 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건 역대 처음이다.
이날 급락세는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불안과 추가 하락에 대한 공포 심리가 투매로 이어진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2분기 사상 최대인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거뒀으나,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 영업이익(63조9800억원)에는 미치지 못하자 투자심리가 더 악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날 각각 5.23%, 9.61% 하락했다. 전날 13∼14% 폭락에 이어 이날도 급락을 피하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장중 한때 19.61% 내린 124만6000원까지 추락하는 등 시총이 1000조원을 하회하기도 했다.
급락장이 연일 이어지며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코넥스)의 시가총액은 이달 들어서만 2400조원 증발하며 5041조193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레버리지 ETF 추가 대책 내놓은 당국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과 ‘긴급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레버리지 ETF에 대한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으로 인한 쏠림이 증시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공감한다”고 밝혔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8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이 국빈 방문 중인 브라질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모든 것이 레버리지 ETF 때문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김 실장은 “지난 2∼3개월 (나타난 큰 변동성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며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의 대규모 인공지능(AI) 분야 투자 및 사업 모델 지속가능성에 대한 일각의 회의적 시선과 중국 반도체 산업의 추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진단했다.
그러나 이날 금융당국 수장들이 내놓은 대책은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따른 증시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
먼저 정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개인별 투자 한도를 설정해 투자 규모를 관리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제한 수준을 못 박진 않았지만, 그 예시로 개인의 총투자금액 가운데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투자 비중을 20%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과도한 거래 행태를 제한하기 위한 거래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안도 내놨다. 선물시장에서 운영 중인 ‘과다호가부담금’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홍콩의 ‘가변 레버리지’ 제도를 참고해 긴급 상황에서 당국이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들 조치는 즉시 추진한다. 앞서 금융당국은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투자할 때 필요한 기본예탁금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하기로 했는데, 이 조치는 3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주가조작 1호’ 강제수사 절차 위반 논란에 차질
금융당국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신모씨 측이 합동대응단의 압수수색 과정에 불복해 제기한 준항고 사건에 대해 지난 21일 심문을 마치고 결정을 검토 중이다. 소액주주연합 대표를 지낸 그는 코스피 상장사 DI동일을 대상으로 주가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는 합동대응단 1호 사건의 주요 피의자 중 한 명이다. 이번 준항고는 또 다른 핵심 피의자인 학원장 김모씨 측이 압수처분 취소를 구해 법원이 최근 받아들인 것과 별개다.
두 피의자는 합동대응단의 첫 강제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절차적 흠결을 주장했다. 영장집행 권한이 없는 금융감독원 직원이 압수물 선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점과 압수물 원본을 기한(10일) 내 반환하지 않은 점을 공통으로 문제 삼은 것이다. 앞서 김씨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이 중 일부를 받아들이며 준항고를 인용했고, 금융위는 이에 불복하며 재항고를 예고한 상태다.
신씨 측은 여기에 검찰이 단행한 ‘2차 압수수색’의 위법성도 문제 삼았다. 합동대응단이 올해 3월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뒤 검찰은 기존 증거를 재차 확보하기 위해 추가 영장을 집행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수사기관에 사건을 넘길 때 진행되는 통상적인 절차이나, 신씨 측은 위법하게 수집·보관된 증거를 토대로 이뤄진 후속 수사 역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논리로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위법한 절차로 얻은 첫 증거(독이 있는 나무)를 바탕으로 파생된 2차 증거(열매) 역시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상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의 1차 압수처분은 물론 검찰의 2차 압수처분까지 취소돼야 한다는 게 신씨 측 주장이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압수수색 절차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영장을 집행한 조사공무원의 행위가 준항고 대상이 아닌 행정조사 성격이므로 준항고 청구 자체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직원의 현장 참여 역시 ‘업무 지원’이라는 방어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또한 2차 압수수색은 독립적인 영장에 따른 것인 만큼 독수독과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선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신씨 측이 제기한 준항고마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수사 일정에 적지 않은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앞서 법원은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준항고 사건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신병 확보에 실패한 데 이어 핵심 피의자의 준항고가 인용되면서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겹친 것이다. 합동대응단이 압수물 반환 기한 준수나 금감원의 임의조사권 한계 같은 강제수사의 기본 원칙을 간과해 본안 수사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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