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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저작권료 외제차 값…이승철이 자녀 유산 상속 0원 선언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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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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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대물림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설 발판만 남기겠다는 40년 음악 인생의 기록

한 달 저작권료가 외제차 한 대 값에 달했던 최정상 가수가 자녀에게는 단 1원의 유산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의 대물림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발판만 남겨주겠다는 이승철의 철학은, 화려한 스타의 삶 뒤에 가려진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깊은 화두를 던졌다. 이는 요행에 기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무대를 지켜온 그의 40년 음악 인생 궤적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스타라는 수식어를 걷어내고 생의 진실만을 담은 그의 기록을 들여다본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이승철의 단단한 눈빛. 가수 인생 40년의 무게가 그의 말 한마디에 실려 있다. MLD엔터테인먼트 제공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이승철의 단단한 눈빛. 가수 인생 40년의 무게가 그의 말 한마디에 실려 있다. MLD엔터테인먼트 제공

1986년 밴드 부활의 보컬로 데뷔한 이승철은 솔로 가수로 거쳐 온 40년 동안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부활의 초대 보컬이었던 김종서가 탈퇴한 뒤 김태원의 권유로 밴드에 합류한 그는 데뷔 앨범부터 ‘희야’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메가히트시키며 단숨에 가요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당시 밴드 내에서 이승철이 얻은 관심은 전 국민이 주목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오늘도 난’ 등을 연이어 성공시켰으며 전성기 시절 한 달 저작권료가 외제차 한 대 값에 달하는 막대한 성과를 기록했다. 그가 이뤄낸 기록과 음악적 성취를 냉정하게 바라봐도, 이승철이란 인물이 대중에게 각인시킨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그의 음악 인생이 언제나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두 번의 대마초 논란으로 인해 방송 활동이 금지되는 치명적인 시련을 겪기도 했으며 전성기 시절 솔로 앨범의 표절 의혹이나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 출연이 막힌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주저앉는 대신 묵묵히 음악적 연구를 거듭하며 재기를 이뤄냈다. 특히 2002년 부활과 재결합하여 발표한 ‘네버엔딩 스토리’는 침체기에 빠졌던 밴드와 개인 모두에게 반등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에도 ‘말리꽃’,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그 사람’ 등 수많은 OST와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세대를 관통하는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두 번의 방송 불가 시련을 딛고 일어선 ‘네버엔딩 스토리’의 순간.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그의 진가는 오랜 연습과 치열한 자기 관리에서 비롯됐다. 진엔원뮤직웍스 제공
두 번의 방송 불가 시련을 딛고 일어선 ‘네버엔딩 스토리’의 순간.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그의 진가는 오랜 연습과 치열한 자기 관리에서 비롯됐다. 진엔원뮤직웍스 제공

보컬리스트로서 이승철의 역량은 업계 전문가들과 후배 가수들에게도 폭넓게 인정받아 왔다. 약고음과 섬세한 호흡 조절, 그리고 얇은 성대 접촉을 통해 2옥타브 중후반의 음역대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능력은 국내외를 통틀어 손꼽히는 수준이다. 음악 평론가들과 동료 가수들이 그를 라이브의 황제로 칭송하는 이유는 이러한 뛰어난 기교가 치열한 자기 관리와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가수는 타고나야 하며 노래로 돈을 벌어먹고 살 정도의 재능은 기본이라는 그의 지론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다. 음악 외적인 행보에서도 그는 스타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등 오지 학교 건립 사업에 사재를 출연하며 장기적인 사회 공헌을 실천해 온 이력은 대중의 신뢰를 높이는 요인 중의 하나다. 엠넷 ‘슈퍼스타K’ 시리즈에서 다년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독설을 마다하지 않았던 모습 역시 대중음악계의 질적 향상을 위한 냉정한 평가의 연장선에 있었다.

 

오랫동안 오지 학교 건립 등 기부 활동을 이어온 그는 최근 방송을 통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다. 그는 “별로 줄 게 없어서”라는 너스레를 떨며 유산 대신 유학과 학업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녀들의 생각은 어떠냐는 물음에는 자녀의 동의보다 자신의 원칙이 중요하다며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두 딸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적용한 현실적인 육아법은 유명인의 경계를 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자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립할 수 있는 토대만 제공해주겠다는 태도는 대중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성을 고수하는 이승철의 프로페셔널한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팬이 단 한 명이라도 남을 때까지 노래하겠다”는 영원한 현역의 다짐. 40년 전 풋풋했던 청년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거장이 되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팬이 단 한 명이라도 남을 때까지 노래하겠다”는 영원한 현역의 다짐. 40년 전 풋풋했던 청년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거장이 되어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음악 인생의 최종 목표에 대해 그는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팬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무대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무대에 언제까지 서고 싶냐는 질문에는 티켓이 열 장이라도 팔릴 때까지 노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현역으로 남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자신이 세상에 없더라도 여행길이나 비 오는 날 자연스럽게 찾아 듣게 되는 퀸 같은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은 그가 예술가로서 지닌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데뷔 50주년에도 팬들과 함께 무대를 지키고 싶다는 약속을 남긴 그는 부의 축적에 대한 소견뿐 아니라 음악적 생명력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고 무대를 지키는 예술가 이승철의 발자취가 묵직한 족적을 남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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