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공습이 장기화하면서 브렌트유 100달러와 미국 국채금리 4.7%가 동시에 증시를 덮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하루 만에 각각 7.6%, 8.3% 급락했고 코스피와 코스닥에서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외국인은 두 종목에서만 2조6000억원 넘게 팔아치웠다. 반면 개인은 4조원 넘게 사들이며 매물을 받아냈다. 급락 직전 KB증권이 제시한 삼성전자 60만원·SK하이닉스 420만원의 목표주가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는 증권가 전체의 전망이 아닌 KB증권의 개별 목표주가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각각 55만원, 420만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삼성전자는 7.59% 내린 24만9500원, SK하이닉스는 8.34% 떨어진 175만9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최근 3거래일 상승분의 상당 부분을 반납했고, SK하이닉스는 4거래일 만에 다시 170만원대로 내려왔다.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1조7568억원, 삼성전자를 8730억원어치 순매도했다. 두 종목 순매도액만 2조6298억원에 달한다. 기관도 SK하이닉스 8673억원, 삼성전자 8588억원 등 총 1조7261억원어치를 팔았다.
반대편에서는 개인이 삼성전자 1조6900억원, SK하이닉스 2조5600억원을 순매수했다. 두 종목에만 4조2500억원의 개인 자금이 몰린 셈이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406.27포인트(5.72%) 떨어진 6690.62로 마감했다. 23일 4.40% 뛰며 7096.89까지 올라 5거래일 만에 7000선을 회복했지만 하루 만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코스닥도 5.32% 내린 748.22로 장을 마쳤다.
낙폭이 커지면서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올해 21번째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매수·매도를 모두 합친 올해 전체 사이드카 발동 횟수는 41차례다. 코스닥에서도 올해 14번째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반도체 대형주를 끌어내린 직접적인 충격은 중동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이란 공습이 13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홍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이 공격받으면서 호르무즈해협에 이어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원유 수송 차질 우려가 번졌다.
현지시간 23일 브렌트유 선물은 7% 넘게 급등한 배럴당 100.69달러로 마감했다. WTI도 9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유가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4.71%까지 치솟았다.
고유가와 고금리는 미래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주가를 매기는 성장주에 특히 불리하다. 최근 주가가 빠르게 올랐던 반도체 대형주에 외국인의 차익 실현까지 겹치며 낙폭이 커졌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주가 급락도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알파벳의 올해 2분기 매출은 1198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증가했다. 구글 클라우드 매출은 248억달러로 82% 뛰었다. 클라우드 수주잔고는 1분기 4623억달러에서 2분기 5140억달러로 불어났다.
외형만 놓고 보면 호실적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투자비와 현금흐름으로 향했다.
알파벳의 2분기 설비투자는 449억달러로 전년보다 101% 증가했다. 설비투자가 급증하면서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59억달러를 기록했다. 알파벳이 분기 기준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을 기록한 것은 상장 이후 처음이다.
회사는 올해 설비투자 전망도 기존 1800억∼1900억달러에서 1950억∼2050억달러로 높였다. 클라우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투자지만 시장은 매출 증가보다 현금 소진 속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알파벳 주가는 뉴욕증시에서 7% 안팎 급락했다.
전날 알파벳의 투자 확대를 반도체 수요 증가 신호로 해석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사들였던 외국인이 하루 만에 순매도로 돌아선 배경이다.
최근 메모리주 조정의 또 다른 축은 2027년 하반기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 가능성이다. 다만 이는 국제유가와 미국 국채금리 급등으로 촉발된 24일 폭락의 직접적인 원인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3일 보고서에서 낸드 수급이 올해 1분기 10.8% 공급 부족에서 2027년 3분기 1.1% 공급 초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7년 4분기에는 공급 초과 폭이 12.2%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낸드 TLC·QLC 웨이퍼 계약가격이 2027년 3분기 9.4%, 4분기 15.4%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의 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시점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키옥시아의 신규 생산능력이 가동되면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주가 조정에 낸드 가격 하락 가능성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판단했다. 예정된 공급 확대도 심각한 과잉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며 메모리주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전자 55만원, SK하이닉스 420만원의 목표주가를 유지했다.
낸드와 달리 D램 가격 전망은 여전히 강하다.
미래에셋증권은 16기가비트 DDR4와 DDR5 계약가격이 이달부터 2027년 12월까지 각각 43%, 38%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마트폰용 메모리 수요가 부진하더라도 AI 서버 시장의 성장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핵심은 고대역폭메모리(HBM)다. HBM은 같은 비트 생산량을 확보하려면 범용 D램보다 더 많은 웨이퍼를 투입해야 한다. 반도체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HBM 생산을 늘릴수록 일반 DDR4·DDR5에 배정할 수 있는 생산능력은 줄어든다.
KB증권은 전체 D램 웨이퍼 생산능력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5%에서 내년 3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규 D램 생산능력도 대부분 HBM에 먼저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빅테크와의 장기공급계약 확대도 과거 메모리 사이클과 달라진 부분이다. 계약 물량과 공급 기간이 길어지면 단기 현물가격 변화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줄고 매출 예측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를 구글 AI 생태계의 최대 수혜주로 평가하며 목표주가 60만원과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올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구글 서버용 메모리 수요의 약 50%, HBM 수요의 약 80%를 공급하고 있다는 KB증권의 추정이 근거다.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의 AI 투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HBM 생산 확대가 범용 D램 공급까지 제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KB증권은 올해 3분기 메모리 가격이 최소 30% 이상 상승하고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에 대해서도 목표주가 420만원을 유지했다. HBM 생산 확대와 장기공급계약 증가로 빅테크·AI 데이터센터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기업 간 거래 매출 비중이 2027년 70%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삼성전자 60만원과 SK하이닉스 420만원은 증권가 전체의 합의된 전망이 아니다. 최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는 증권사별로 185만∼420만원까지 벌어져 있고 삼성전자 역시 39만∼60만원으로 편차가 크다. AI 투자 사이클과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지를 놓고 판단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낸드 공급과잉이 예상보다 빨리 나타나거나 빅테크가 AI 설비투자를 줄이면 실적과 목표주가는 다시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HBM 생산 확대에 따른 범용 D램 공급 제약이 지속되면 이번 급락을 저점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결국 24일 급락은 반도체 실적 전망이 무너졌다기보다 국제유가와 시장금리 상승, 빅테크의 현금흐름 우려, 외국인의 차익 실현이 한꺼번에 겹친 결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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