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PS 일부 자사주 지급 제시…노조 “10년 합의 1년만에 흔들”
주택대출 한도 확대 놓고도 이견…노사, 조만간 4차 본교섭 재논의
“1인당 8억대라는데?”
SK하이닉스 노조는 최근 공개한 내부 질의응답에서 사측의 첫 성과급 제시안을 두고 “놀랄 정도로 터무니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가운데 회사가 초과이익분배금(PS)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방안을 꺼내 들면서 노사 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총 소속 SK하이닉스 전임직 노조는 지난 21일 오전 충북 진천상공회의소에서 사측과 집중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민주노총 소속 기술사무직 노조도 같은 날 오후 별도로 교섭에 나섰다.
이번 집중교섭은 지난 14일 열린 3차 본교섭에서 성과급을 비롯한 주요 안건을 놓고 노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마련됐다. 사측은 교섭 과정에서 PS 일부를 자사주로 의무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영업익 10% 나누면 1인당 8억4000만원
성과급 논란에 불을 붙인 것은 올해 예상 실적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98%, 405%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72%다. 매출과 영업이익, 영업이익률 모두 분기 기준 창사 이래 최고치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기존 PS 지급 상한이던 기본급 1000%를 없애고 매년 영업이익의 10% 전체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기로 합의했다. PS 산정액의 80%는 당해 지급하고 나머지 20%는 2년에 걸쳐 매년 10%씩 이연 지급한다. 새 기준은 10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KB증권은 지난 3일 메모리 가격 상승과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를 반영해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290조4940억원으로 제시했다. 기존 전망치 280조2950억원에서 3.6% 높였다. 지난 9일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관련 보고서에서도 같은 전망치를 유지했다.
이 전망대로면 PS 재원은 29조494억원이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상 직원 3만4549명으로 단순히 나누면 1인당 약 8억4000만원이다. 당해 먼저 지급되는 80%만 계산해도 약 6억7000만원이다.
이는 전체 재원을 직원 수로 똑같이 나눈 세전 산술 평균이다. 실제 지급액은 개인별 임금과 직급, 평가 기준 등에 따라 달라진다. KB증권 한 곳의 전망치를 토대로 한 계산이고, 연간 영업이익도 하반기 메모리 가격과 수요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일부 자사주 의무 지급 거론…노조 “합의 취지 훼손”
갈등의 핵심은 성과급 규모보다 지급 방식이다. 사측은 최근 교섭에서 PS 일부를 자사주로 의무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비중과 매각 제한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노조는 시행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성과급 제도를 다시 손보는 것이 지난해 합의의 취지와 기본 방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기술사무직 노조도 성과급 기준이 바뀌거나 구성원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임직원이 PS 일부를 자율적으로 자사주로 전환할 수 있는 ‘주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직원은 PS의 10%부터 최대 50%까지 10% 단위로 주식 전환 비율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 주식을 1년간 보유하면 전환 금액의 15%를 현금으로 추가 지급받는다. 기존 제도는 직원에게 선택권을 주지만 사측의 새 제안은 PS 일부를 주식으로 의무 수령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노조는 주식 지급이 의무화되면 직원이 주가 하락 위험을 떠안게 된다고 주장한다. 주택 구입이나 전세보증금 마련, 대출 상환 등 목돈이 필요한 직원에게는 당장 손에 쥐는 현금이 줄어드는 것도 부담이다.
◆현금 부담 줄이려는 셈법…조달 방식 따라 효과 달라
업계에서는 실적 급증에 따른 대규모 현금 지출을 분산하고 임직원 보상을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연계하려는 구상이 사측 제안에 반영됐다고 본다.
자사주 지급이 곧바로 현금 유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이미 보유한 자사주를 활용하면 당장의 현금 지출을 줄일 수 있지만, 지급할 주식이 부족해 시장에서 새로 사들이면 매입 자금이 필요하다. 현금 절감 효과는 자사주를 어떤 방식으로 마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올해 노사 합의를 통해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과 별도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했다. 재원은 사업성과의 10.5%이며, 세후 전액을 자사주로 지급한다. 지급 주식의 3분의 1은 즉시 매각할 수 있고 나머지는 각각 1년과 2년 뒤 처분할 수 있다.
노조는 회사가 실적 개선으로 성과급 재원이 크게 늘자 10년간 유지하기로 한 지난해 합의를 1년 만에 바꾸려 한다고 본다. 지급 수단까지 지난해 합의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놓고는 노사 간 해석이 엇갈린다.
◆최태원 “이해관계자 침해하면 제도 조정 필요”
성과급 논쟁은 주주와 협력업체 등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미칠 영향으로도 번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9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구성원에게 가능한 많은 행복을 주고 싶지만 이해관계자와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구성원의 행복이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현 단계에서 곧바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상황까지는 아니라며 좀 더 지켜보자는 취지로 말했다. 고액 성과급의 긍정적 영향도 있는 만큼 실제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해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은 최대 5억원…하이닉스 주택대출 확대 요구
성과급과 함께 주택자금 지원 확대도 이번 교섭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노사 합의를 통해 무주택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사내 주거안정 대출 제도를 도입했다.
주택 매매 자금은 최대 5억원, 임차 자금은 최대 3억원이며 직원이 부담하는 금리는 연 1.5%다. 제도는 세부 준비를 거쳐 오는 9월 시행된다.
SK하이닉스도 연 1.5%의 주택자금 융자 제도를 운영하지만 한도는 최대 1억원 수준이다. 주택 매매 자금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최대 5배 차이가 난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주택자금 지원 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노조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한 주택자금 지원 확대 방안을 사측과 협의하고 있다.
노조는 높은 임금 인상률보다 하이웰포인트와 연금, 교대수당 등 구성원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항목 개선에도 무게를 둔다.
SK하이닉스는 민주노총 소속 기술사무직 노조와 한국노총 소속 전임직 노조가 각각 사측과 교섭하는 복수노조 체제다. 노사는 조만간 4차 본교섭을 열고 성과급 지급 방식과 주택자금 지원 확대 등을 다시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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