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신 통한 경쟁력 제고
정부, 공적자금 초기기반 조성
민간은 응용·상용화 단계 투자
‘성장 선순환 구조’ 만들수 있어
기관·해외펀드 자금 유치도 필요
증시 체질 개선
증시 변동성 최소화 지향해야
국민연금, 리밸런싱 시기 놓쳐
급등락 완충 역할 제대로 못해
연 10%대 수익 시장 목표 삼길
국내 증시는 올해 유례없는 상승장을 경험했다. 1월 ‘꿈의 지수’라 불리는 ‘5천피’(코스피 5000)를 달성한 후 미국·이란 전쟁 여파에도 ‘9천피’까지 쾌속 질주했다. 전대미문의 ‘1만피’ 달성도 시간 문제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최근 증시 흐름은 투자자들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상승 방향성을 잃고 극심한 변동성의 늪에 빠졌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 우려 속에 코스피는 어느덧 7000선까지 내려왔다. 증시가 조정 국면에 접어들자 소수 반도체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코스피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사이클 외에도 미국의 금리 정책,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변수에 크게 요동치는 코스피의 기초체력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일보가 22일 개최한 ‘2026 세계증권포럼’에서는 국내 증시가 건강하게 성장하며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투자 활성화로 혁신기업을 길러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자본시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건강한 증시 형성을 위한 세제 개편과 장기 자금 유입 방안 등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AI 혁신기업 육성, 산업·자본 역할 중요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AI 혁신기업 육성을 통한 산업 경쟁력 제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 연구위원은 “생성형 AI로 촉발된 기술 경쟁은 산업정책의 부활과 함께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며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AI 분야에 대한 민간투자가 크게 증가해 혁신기업의 성장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글로벌 흐름 속에 한국의 발걸음은 다소 더디다. 투자규모는 증가하고 있으나 경쟁 선도국 대비 여전히 격차가 크고, 조달 방식 면에서도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AI 혁신을 위한 산업정책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이 뒷받침돼야 산업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노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노 연구위원은 “정부는 기초 연구나 인프라 구축 등 고위험 영역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혁신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 투자는 응용 연구 및 상용화 단계에서 자본을 공급해야 한다”며 “공공정책의 방향성과 초기투자가 민간자본의 대규모 후속 투자와 결합해 AI 혁신 선순환 구조(연구→상용화→수익 창출→ 재투자)를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산업정책 방향으로는 △선택과 집중 △위험분담 △성장자본·회수시장 확대 △규범·신뢰 구축 등 네 가지 갈래를 제안했다. 한국은 시장 진입이 늦고 가용 자원이 제한된 후발주자인 만큼, 혁신기업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활성화해 연구 개발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연구위원은 ‘생산적 금융’ 정책 기조를 유지해 비생산적 분야로 쏠린 자금을 기업투자·벤처투자로 재배분하는 한편, 기관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해외 공동펀드 등을 통해 국내 AI 산업에 대한 잠재적 투자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정부의 명확한 성장 전략과 규율 체계하에 자본시장을 통한 공공, 민간, 해외 투자 협력이 종합적으로 작용할 때 글로벌 AI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며 “AI 산업정책 목표는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한 직접적인 효과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 민간의 후속 투자와 회수시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韓 증시 과제는 변동성 최소화
최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는 한국 증시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궁극적으로 한국 증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지수 상승이 아닌 변동성 최소화라는 지적이다. 최재원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AI 주도의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전망이 양 극단으로 갈리면서 뉴스 하나에도 증시가 크게 요동치는 현상을 짚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코스피의 구조적 특성상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과 AI 논쟁의 이중 변동성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자산 재조정)을 제때 하지 못한 것도 증시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최 교수는 “상승장에서 규칙대로 조금씩 팔았어야 할 것을 미루면서 급락 시 물량을 받아주는 완충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리밸런싱은 시장의 자동 안전장치인데, 시기를 놓치면 거꾸로 변동성 증폭기가 된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증시 변동성을 줄이고 자본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해선 현재의 주가 급등을 부추기는 정책 방향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수 레벨(코스피 5000·1만)을 정책 목표로 삼는 것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는 “가야 할 방향은 지수 레벨 목표가 아니라 꾸준히 연 10%대 수익률을 내는 시장”이라며 “지수 자체는 낮더라도, 복리로 국민 자산형성이 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거래세 중심, 대주주 외 양도차익 비과세 정책 등 현행 세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보유 기간과 무관한 과세로, 사실상 ‘단타 매매’를 우대하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장기투자 독려를 위한 해법으로 미국식 보유 기간 차등 과세 적용을 제안하며 “단기 양도차익에는 과세하고 장기 보유는 우대하는 등 장기투자 유인을 세제에 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기 기관 자금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하락장에서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받아주며 증시 변동성을 줄이고, 산업계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기 위해선 장기 자금이 필수라는 것이다. 장기 자금 유치를 위한 방안으로는 △공공기금 현금성 자산 풀링(집약) △대학 기금·퇴직연금 등 기관 자금의 주식 참여 확대 △리밸런싱 강화 등을 제언했다. 그는 주식시장의 자체적인 자본조달 기능이 복원돼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최 교수는 “변동성의 근본 원인은 통제가 불가하지만, 시장의 체질은 통제할 수 있다”며 “장기 자금이 안심하고 한국 자산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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