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니 기분이 어때요?” 교육장 여기저기에서 “좋아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한다. “어쩌면 오늘까지가 여러분에게 가장 편안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통역 선생님이 있고, 같은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장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한국 사회와 직장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그때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교육을 마칠 무렵 나는 꼭 한 가지를 당부한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돈도, 기술도 아닙니다.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입니다. 말이 통해야 기술을 배우고, 기술이 쌓여야 신뢰를 얻습니다. 그리고 한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여러분의 기술도, 여러분의 가치도 함께 커집니다.”
이 말은 근로자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업주에게도 늘 같은 마음을 전한다. 사람은 단순히 채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야 할 동료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부가 고용허가제(EPS) 개편을 검토하며 비전문 외국인근로자(E-9)의 사업장 이동 제한 완화를 논의하고 있다. 노동권 보호와 직업 선택권 확대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인권침해를 당한 근로자는 지금보다 더욱 두텁게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그러나 노동권 보호와 사업장 이동 완화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권익은 근로감독 강화와 위법 사업장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 반면 사업장 이동은 고용허가제의 도입 목적과 산업현장의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할 별개의 정책이다.
고용허가제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오늘도 제조업과 뿌리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렵게 채용한 인력이 숙련을 쌓기도 전에 떠난다면 교육과 훈련에 투자한 시간은 사라지고, 그 부담은 기업과 산업현장에 고스란히 남는다.
제조업의 숙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어를 익히고 작업 공정을 이해하며 안전수칙과 품질기준을 몸에 익히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1년은 지나야 제 몫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 시간 동안 기업은 생산성 저하를 감수하며 가르치고 기다린다. 그렇게 쌓인 숙련은 기업만의 자산이 아니다. 근로자 자신의 경쟁력이자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다. 더 나은 임금과 근무환경을 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곳에서 성실하게 배우고 익힌 기술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신의 자산이다. 숙련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 반복되는 이동은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 자신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기 어렵다.
나는 기업의 권익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육장에서 만난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서 기술을 배우고, 인정받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교육자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사람을 키우는 시간은 근로자의 미래를 키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정책은 사람을 쉽게 이동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정책이어야 한다. 노동권은 더욱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동시에 사람을 키우는 기업의 시간과 노력도 존중받아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교육투자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가치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믿고, 가르치고,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숙련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그 시간을 지키는 정책이 결국 노동자도, 기업도 함께 성장시키는 길이다.
전원균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 근로자 교육강사·시인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현직 감사위원 구속](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22/128/20260722526015.jpg
)
![[세계포럼] 성장정책으로 회귀하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3/04/128/20260304519968.jpg
)
![[세계타워] 트럼프·인판티노의 ‘위험한 콜라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1/128/20260401521787.jpg
)
![[한국에살며] 한국의 ‘셀프서비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7/22/128/20260722525838.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