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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도시 속 머물고 싶은 사옥… ‘美의 광장’이 되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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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설계자 치퍼필드, 사방에 출입구 개설
기업 건물 넘어 공원의 확장 역할 의도
프리츠커상 수상 덕에 홍보 효과 톡톡

조선백자 ‘달항아리’서 디자인 모티브
적절·긴밀·적당한 공간 조건 갖춘 로비
내부 공간은 ‘포용의 아름다움’ 보여줘

미술관을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휴일 볕 좋은 카페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실 계획은 틀어져 버렸다. “밖에 비도 오는데 커피는 여기서 마시자.” 커피와 케이크는 2층 카페에서 샀지만 자리는 3층에 잡았다. 사람들이 오가고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다.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곳이 빈터가 되지 않으려면 특정한 이유가 없더라도 그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설계자들은 세 가지 조건을 말한다. 그 공간이 건축물로 ‘적절하게’ 둘러싸여 있을 것.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상업시설이 있어 사람들이 ‘긴밀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건축물의 높이가 공간의 폭에 비해 지나치게 높거나 낮지 않아 ‘적당히’ 감싸여 있다는 느낌(위요감·圍繞感)을 줄 것. 하지만 ‘적절’, ‘긴밀’, ‘적당’은 일정한 수치로 말할 수 없는 감각적인 정도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래서 쉽사리 따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아니다. 설령 이런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날씨라는 외부변수까지 설계자가 결정할 수는 없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로비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정해진 목적이 없어도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을 한 기업의 사옥이 아니라 ‘미의 광장’으로 만든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로비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교차한다. 정해진 목적이 없어도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을 한 기업의 사옥이 아니라 ‘미의 광장’으로 만든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로비(Lobby)는 앞서 설계자들이 언급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한다. 심지어 2층과 3층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위아래로 교차함으로써 이곳이 사람으로 채워져 있으며, 서로를 인식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준다. 이를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도시학자인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거리를 바라보는 눈(Eye on the street)’이라 불렀다. 거리를 향해 열린 창과 시선이 낯선 이들을 수용하고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설계한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는 향후 용산민족공원이 들어서면 로비가 도시에서 공원으로 향하는 입구이자 공원의 확장된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건물이 단순히 기업의 사옥이 아니라 도시의 흐름 속에 위치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사방으로 냈다. 이런 그의 의도가 이곳을 처음 찾은 내게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 건물이 준공되고 6년이 지난 2023년,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 건축상을 받았다. 심사위원회는 치퍼필드의 건축에 대해 “도시마다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치퍼필드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 맞게 설계된 서로 다른 치퍼필드 건물이 있다”고 평했다. 이런 평가는 “어떻게 도시 풍경에 기여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설계를 시작한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고요함’, ‘절제미’, 그리고 그가 디자인 모티브를 얻었다는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닿아 있다.

 

고요함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외관.
고요함과 절제미가 돋보이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외관.

건축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이 사옥은 아모레퍼시픽의 가장 비싼 홍보수단이 되었다. 그들이 사옥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동시대적 고전(Contemporary Classic)’을 비롯해 여럿인데, 이 중 ‘창조적 혁신’과 같이 기업문화나 일하는 방식과 관련된 메시지의 진위는 구성원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 내가 주목한 건 ‘미의 전당’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이 화장품을 만드는 기업이니 ‘아름다움(美)’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담는 본사를 ‘전당(殿堂)’이라 부른 건 조용하고 두드러지지 않는 건축을 추구하는 치퍼필드의 가치와 맞지 않아 보였다.

‘전당’의 사전적 의미는, ①높고 크게 지은 화려한 집, ②학문, 예술, 과학, 기술, 교육 따위의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연구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신불을 모셔 놓은 집이다. 아마도 아모레퍼시픽은 두 번째 의미를 ‘아름다움’이라는 영역에 적용해 자신들이 최고의 ‘미’를 추구하는 집단임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전당’이라는 단어가 1973년 유신정권이 “가치의식과 사관을 바로잡기” 위해 전국 곳곳에 문화의 전당을 세우겠다는 ‘문예중흥선언’을 발표하면서 퍼졌다는 데 있다. 이후 ‘전당’이라는 이름의 건축물은 대부분 권위적인 자리에 위엄 있는 모습으로 지어졌고 지도자가 국민을 위해 내려주는, 시혜성 시설이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커피를 다 마시고 케이크를 다 먹은 내게 ‘이제 나가 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도 일어날 생각이 없다.

그럼, 내가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은 이유는 뭘까? 적절하고 긴밀하며 적당하게 설계된 공간들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모레퍼시픽이 자신들의 사옥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에 동감하기 때문일까? 아모레퍼시픽이 추구하는 ‘미’는 완성된 상태의 아름다움이다. 진열장에 놓이고, 피부에 발리고, 결과로 확인되는 아름다움, 결국 ‘상품의 미학’이다. 그런데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그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긴다. ‘아름’이 ‘알음’과 ‘앎’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앎’은 관계 속에서 완성되고 관계는 한 공간에 함께 있을 때 시작된다. 그 공간이 물리적이든 비물리적이든. 결국, 내가 어떤 공간에 더 머무르고 싶다는 마음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대상에 대한 궁금함이다.

건축물을 통해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선언하지 않는 치퍼필드가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통해 취하고자 한 태도는 관계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우리는 두 팔을 둥글게 모아 끌어안을 수 있는 둘레를 ‘아름’이라 말하고 그 길이를 넘는 것을 ‘아름드리’라 부른다. 우리 조상들에게 ‘아름드리’는 풍성하고 만족한 상태였고 이런 의미가 확장돼 ‘아름다움’이 되었다.

사옥을 자신들의 철학과 비전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회사에 건축물은 광고에 나오는 상품과 같은 오브제(Objet)다. 그러니 건축가가 꺼내는 ‘고요함’, ‘절제미’는 오브제를 설명하는 미학의 단어다. 하지만 정작 건축가에게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비록 한 회사의 사옥일지라도- 공공의 성격을 지향한다는 책임의 단어가 된다.

“복잡한 곳에서는 고요함을 간직한 건물이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치퍼필드의 설명은 ‘달항아리’를 닮았다는 외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앎’과 ‘아름’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 품은 내부 공간에서 더 유효하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될 때 비로소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아름다움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겉모양의 아름다움과 속내가 서로 잘 어울리는 ‘문질빈빈(文質彬彬)’한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나 이제 배고픈데, 언제 갈 거야?” 로비를 바라보며, 한 기업을 위해 지은 건물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 아름다움과 전당의 의미를 종횡하는 동안 말없이 옆에 있던 아내가 내 생각을 멈춰 세웠다. “비 오는데 밥도 여기서 먹자.” 결국, 그날 일정은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미의 광장’에서 시작돼 그곳에서 끝났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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