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혼·하이츠셀라·허드슨빈야드·케이크브레드
메도우드 켈리 화이트 교육 디렉터 진행
‘와인의 미래에 대한 투자’ 토론회
상반된 두 개 빈티지로 만나는 나파의 얼굴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햇살이 시뇨렐로 에스테이트(Signorello Estate)의 포도밭을 데우던 오후, 잔 안에서는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미래를 묻는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산불, 가뭄, 폭우 등 기후변화라는 낯선 위협 앞에서 나파 밸리는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시뇨렐로에서는 나파밸리 메도우드(Meadowood) 와인 교육센터의 켈리 화이트(Kelli White) 교육 디렉터가 진행을 맡은 ‘와인의 미래에 대한 투자’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가뭄 또는 폭우 시달리는 나파밸리
토론에는 레이 시뇨렐로 주니어를 비롯해 덕혼 포트폴리오(Duckhorn Portfolio)에서 럭셔리 브랜드 부문을 이끄는 실라 살몬(Shilah Salmon) 브랜드 매니지먼트 디렉터, 허드슨 나파밸리(Hudson Napa Valley)의 피터 윌머트(Peter Willmert) CEO, 로렌스 와인 에스테이트(Lawrence Wine Estates)의 마스터 소믈리에 칼튼 맥코이 CEO, 케이크브레드 셀라스(Cakebread Cellars)에서 포도밭 운영을 총괄하는 제시카 루크 바움가트너(Jessica Luke Baumgartner) 디렉터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와이너리가 기후변화, 음주문화변화, 알코올 소비 감소, 소비자의 취향 변화 등 동시에 놓인 수많은 이슈를 헤쳐나가는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소개했습니다.
2021년과 2023년은 나파 밸리가 급격한 기후변화의 영향에 놓였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불과 2년 사이, 나파 밸리는 정반대의 하늘 아래 놓였습니다. 2021년은 저수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메마른 가뭄의 해였고, 2023년은 대기천이 몰고 온 폭우로 밸리 전체가 흠뻑 젖은 해였습니다. 같은 땅, 같은 포도나무인데도 하늘이 내린 조건이 극과 극으로 갈리면서 두 빈티지는 전혀 다른 얼굴의 와인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최근 시뇨렐로에서 열린 ‘와인의 미래에 대한 투자’ 토론회에서도 나파 밸리 생산자들은 이런 극단적인 기후 변동성을 어떻게 대비할지를 두고 열띤 논의를 벌였습니다. 미국 기상청(NOAA)의 실측 데이터와 나파 밸리 빈트너스(Napa Valley Vintners)가 확인한 공식 기후 기록을 바탕으로, 가뭄과 폭우라는 두 얼굴을 가진 나파 밸리의 최근 빈티지를 짚어봤습니다.
◆2021년, 가뭄이 빚어낸 응축의 해
2021년 나파 밸리는 2020년에 이어 2년 연속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겨울과 봄철 강수량은 약 263㎜로, 평년 기대치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포도나무는 극도의 수분 스트레스 속에 자라며 수확량이 자연스럽게 크게 줄었고, 포도 알 크기도 눈에 띄게 작아지면서 즙 대비 껍질의 비중이 높아져 풍미와 색이 한층 응축됐습니다. 여름철에는 이렇다 할 폭염 없이 조용하고 이변 없는 날씨가 이어졌고, 뒤따른 가을 역시 부드럽고 서늘하게 유지되면서 포도가 과숙되지 않고 천연 산도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021년은 가뭄이라는 시련이 오히려 짙은 색상과 잉크처럼 진하고 파워풀한 타닌 구조, 강력한 과실 응축감을 지닌 장기 숙성형 빈티지를 빚어낸 해로 기록됩니다.
◆2023년, 폭우가 되돌려놓은 균형
정반대로 2023년은 가뭄에 마침표를 찍은 해였습니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대기천 현상이 잇달아 상륙하며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총 강수량이 약 1300㎜에 달했습니다. 이는 평년 평균 약 790㎜의 약 1.6배로, 1998년 이후 네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해로 기록됐습니다. 저수지가 가득 차고 토양은 완벽하게 수분을 머금었습니다. 더 인상적인 대목은 이어진 여름입니다. 2023년은 나파 밸리 역사상 가장 온화하고 서늘한 생육 기간 중 하나로 기록됐는데, 7월 초 단 하루 섭씨 37.8도를 겨우 넘긴 것을 제외하면 여름 내내 폭염이라 할 만한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서늘한 안개가 길게 머물다 오전 10~11시께에야 걷히는 날씨가 반복됐습니다. 서늘한 기온 덕분에 포도는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익어갔고 수확 시기도 예년보다 2~3주가량 늦춰졌습니다. 화이트 품종은 9월 노동절(9월 2~4일) 연휴 무렵 수확이 시작됐고, 카베르네 소비뇽은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시작돼 11월 중순까지 이어졌습니다. 가뭄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자란 포도나무들은 평년보다 5~15%가량 많은 풍부한 수확량을 냈습니다. 천천히 부드럽게 익은 포도는 매우 정교하고 촘촘한 타닌과 뛰어난 산도 밸런스, 밝고 우아한 풍미를 지닌 와인으로 완성됐습니다. 나파 밸리 빈트너스 협회가 먼저 2023년을 ‘일생에 한 번 있을 빈티지(Vintage of a Lifetime)’라 명명했고, 디캔터 등 유수의 매체도 이를 인용해 소개했습니다.
◆두 빈티지, 잔 속에 담긴 기후의 초상
가뭄이 만든 응축감의 2021년과 폭우 뒤 서늘함이 빚어낸 정교함의 2023년. 이처럼 두 해의 대비되는 기후는 실제 잔 속에서도 뚜렷하게 갈립니다. 같은 밸리, 같은 품종이라도 하늘이 내린 조건이 다르면 잔의 표정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가뭄이 응축과 힘을 남기고, 폭우 뒤의 서늘함이 정교함과 우아함을 남긴 두 해의 기록은 앞으로 나파 밸리가 마주할 기후 변동성이 결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하이츠 셀러(Heitz Cellar)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21
1961년 조 하이츠(Joe Heitz) 부부가 설립한 하이츠 셀러는 나파 밸리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 ‘마르타스 빈야드(Martha’s Vineyard)’로 미국 컬트 와인의 시초를 다진 생산자입니다. 파리의 심판 10주년을 맞아 1986년 유명와인매체 와인 스펙테이트 주관한 재대결에서 마르타스 빈야드 1970 빈티지가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와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세계적 명성을 굳혔습니다. 2018년 억만장자이자 미국의 유서 깊은 농업 및 금융 기업가인 게일런 로렌스 주니어(Gaylon Lawrence Jr.) 가문이 하이츠 셀라를 인수, 현재 로렌스 와인 에스테이트(Lawrence Wine Estates)에 소속돼 있습니다.
2021 카베르네 소비뇽은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러더포드의 트레일사이드(Trailside) 밭을 중심으로 세인트 헬레나, 오크빌, 하웰 마운틴 등 유기농 에스테이트 밭 포도를 블렌딩했습니다. 젖산 발효를 최소화하는 전통 양조 방식과 프렌치 오크·대형 푸드르에서의 3년 숙성을 거쳐 병입 후에도 최소 1년 이상 추가 숙성한 뒤 출시합니다.
건조한 겨울과 선선한 여름이 이어진 2021년 가뭄의 흔적은 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알이 작고 생산량이 적었던 만큼 극도로 높은 농축미와 정교한 타닌 구조가 두드러집니다. 영롱한 루비 컬러에 레드 체리와 레드커런트를 바탕으로 자두, 블랙베리, 유칼립투스, 으깬 바이올렛 꽃잎이 전개되고 가죽·타바코·구운 삼나무·흑연·카카오의 향이 받쳐줍니다. 단단하지만 잘 정제된 미네랄 리치의 촘촘한 타닌과 짭조름한 풍미, 은은한 철분 힌트가 긴 여운을 남기는 전형적인 가뭄 빈티지의 풍모입니다. 디캔터 99점, 와인스펙테이터 94점, 제임스 서클링 94점 등 고른 호평을 받았습니다.
▶헤인즈 빈야드 포르주롱 샤도네이(Haynes Vineyard Forgeron Chardonnay)
로렌스 와인 에스테이트에서 소속된 와이너리입니다. 나파 밸리 쿰스빌 구역의 유서 깊은 포도밭 헤인즈 빈야드에서 생산한 최고급 부르고뉴 스타일 화이트 와인입니다. 나파 밸리에서 가장 오래된 샤도네이·피노 누아 나무가 자라는 이곳에서도 1968년에 심어진 올드 바인 웬티 클론 포도로만 빚었습니다. 잔에서는 레몬 오일과 구운 사과, 라임 껍질의 강렬한 시트러스 향이 중심을 이룹니다. 여기에 부싯돌을 긁은 듯한 스모키함과 으깬 돌, 헤이즐넛이나 짠 바닷바람 같은 미네랄 특성이 복합적으로 피어오릅니다. 일반적인 나파 샤도네이처럼 과하게 오크 터치를 가하지 않아, 매우 정교하고 날카로운 산미가 특징입니다. 입안에서는 묵직한 바디감과 함께 효모앙금 숙성에서 오는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공존하며 단단한 구조감을 보여줍니다. 은은한 생강과 펜넬의 힌트와 함께 짭조름한 미네랄리티의 여운이 입안에 아주 길게 지속됩니다. 샤도네이 100%로 빚었으며, 내추럴 이스트 발효를 거쳐 오크 풍미가 강하게 배지 않도록 중성적인 대형 오크 캐스크에서 약 21~22개월간 효모앙금과 숙성했습니다.
▶허드슨 빈야즈(Hudson Vineyards) 허드슨 시라 2023
나파 밸리 카네로스(Carneros)의 전설적인 와이너리 허드슨 빈야드는 리 허드슨(Lee Hudson)이 1981년 로스 카네로스(Los Carneros)에 설립했습니다. 처음 20여년간은 키슬러(Kistler), 콩스가드(Kongsgaard), 오베르(Aubert) 등 캘리포니아 최고 와이너리에 포도를 공급하는 명가로 이름을 알렸고, 2004년부터 ‘허드슨’ 자체 레이블로 에스테이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시라는 서늘하고 생장 기간이 길었던 2023년 기후 특성이 반영돼, 과실미와 산도의 밸런스가 돋보이는 북부 론 스타일의 클래식한 쉬라로 완성됐습니다. 블랙베리와 야생 산딸기의 진한 과실 향, 라일락과 장미 꽃잎의 화려한 아로마가 피어오르고, 젖은 흙·가죽·세이지 허브·흑후추의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뒤따릅니다. 잘 익은 자두와 슬레이트 같은 미네랄리티, 서늘한 빈티지 특유의 생동감 있는 산도가 무게감을 단단히 받쳐줍니다.
▶허드슨 빈야드 레이디버그(Ladybug) 샤르도네 2023
나파 밸리 남단 카네로스에서 유기농법으로 가꾼 포도밭을 지키는 이로운 곤충 무당벌레(Ladybug)의 이름을 붙인 와인입니다. 잔에 코를 갖다 대면 매혹적인 재스민 꽃향기와 화사한 아카시아, 달콤한 벌집 아로마가 먼저 피어오릅니다. 뒤이어 고소한 크림 브륄레와 녹인 버터, 은은한 카라멜, 바닐라빈의 오크 풍미가 겹겹이 이어지며 코끝을 사로잡습니다.
입에 머금으면 잘 익은 황도 복숭아와 골든 애플 같은 농익은 핵과류의 풍미가 부드러운 산도와 균형을 이룹니다. 버터스카치와 마지팬을 떠올리게 하는 리치하고 럭셔리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고, 풀 바디로 부드럽고 기름지게 감싸는 크리미하고 우아한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목 넘김 후에도 버터리한 고소함과 토스티한 견과류 풍미가 길고 깊게 이어지는 여운을 선사합니다.
나파 밸리 남단 카네로스의 서늘한 기후 덕분에 풍만하고 화려한 미국 샤르도네 특유의 버터리함과 오크 터치를 지니면서도, 질리지 않는 산뜻한 산미가 견고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웰밸런스 와인입니다.
▶덕혼 빈야즈(Duckhorn Vinyards) 쓰리 팜스 빈야드 멀롯 2023
1976년 댄 덕혼(Dan Duckhorn) 부부가 설립한 덕혼은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이던 나파 밸리에서 럭셔리 멀롯의 가능성을 처음 조명한 선구자입니다. 칼리스토가(Calistoga)의 쓰리 팜스 빈야드(Three Palms Vineyard)에서 1978년 미국 최초의 싱글 빈야드 메를로를 출시했고, 2015년 밭 전체를 인수해 완전한 에스테이트로 만들었습니다. 2023 빈티지는 덕혼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 레이블로 출시됐습니다. 메를로 89%에 카베르네 소비뇽·카베르네 프랑·말벡을 소량 블렌딩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서늘하고 생장 기간이 길었던 2023년 덕분에 포도가 천천히 익어 과실 본연의 순수함과 정교한 산도 밸런스를 갖췄습니다. 빙 체리와 흑크랜베리 코블러, 으깬 장미 꽃잎, 라즈베리 잼의 풍부한 과실 향에 월계수 잎, 감초, 은은한 통밀 크래커 향이 이어지며, 실크처럼 매끄러운 벨벳 같은 타닌으로 마무리됩니다.
▶덕혼 빈야즈 노스 코스트(North Coast) 소비뇽 블랑 2025
와이너리를 설립 50주년을 맞은 2026년을 기념해 한정 출시된 ‘50주년 기념 에디션’ 레이블 와인입니다. 잔에 담으면 자몽과 여름 멜론, 레몬그라스, 라임 제스트의 싱그럽고 화사한 시트러스 향이 가득 피어오릅니다. 여기에 아주 은은한 귤과 열대과일의 힌트가 더해져 우아함을 완성합니다.
입안에서는 활기차고 바삭한 산미가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소량 블렌딩된 세미용 품종 덕분에 미드 팔레트에서 가벼운 오일 질감과 크리미한 두께감이 느껴져 구조가 묵직하고 균형감이 좋습니다. 마지막에는 부싯돌 느낌의 깔끔하고 정교한 미네랄리티가 긴 여운을 남기며 산뜻하게 마무리됩니다.
▶케이크브레드 셀러스 뷰파인더 서스콜 마운틴 빈야드(Viewfinder Suscol Mountain Vineyard) 카베르네 소비뇽 2023
나파 밸리 동남부 고지대, 돌이 많은 척박한 토양의 서스콜 마운틴 에스테이트 빈야드에서 처음으로 단독 병입한 싱글 빈야드 와인입니다. 고도가 높고 서늘한 기후 탓에 포도가 늦게 익으면서 알갱이가 작고 풍미가 응축된 것이 특징입니다. 잔에서는 레드 플럼과 라즈베리 잼, 블랙 체리, 보이즌베리, 무화과의 풍부한 과실 향이 중심을 잡고, 말린 타임과 화이트 플로럴, 블랙 올리브, 베이킹 스파이스의 은은하고 세련된 풍미가 겹겹이 더해집니다.
입에 머금으면 묵직한 바디감과 집중도 높은 과실미가 돋보입니다. 촘촘하고 부드럽게 잘 짜인 탄닌이 산도와 균형을 이루며 와인의 구조를 단단하게 받쳐줍니다. 여운의 끝자락에는 미세한 미네랄리티가 감돌며 우아함과 파워풀함을 동시에 남깁니다. 까베르네 소비뇽 60%, 까베르네 프랑 20%, 메를로 20% 블렌딩으로, 지속가능 재배 방식의 에스테이트 포도만을 사용했습니다. 나파 밸리 빈트너스 협회가 주최하는 트레이드 전용 자선 경매 ‘프리미어 나파 밸리’ 2025년 경매에 출품된 단독 큐베로, 소더비를 통해 단 120병(10케이스)만 세상에 나온 희귀 와인입니다. <기후변화 맞서는 캘리포니아 와인 산지를 가다 ③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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