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로 소설 기틀 구상
계엄 맞선 시민들서 모티브 얻어
동시대 가치· 인간성 공유 소명 느껴
“평범한 이들 이야기 계속 쓸 것”
“계엄을 겪으면서, 일종의 재난 같았어요. ‘우리 힘들어지겠네’, ‘시민들이 고통받겠네’. 충격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이 소설의 집필이 구체화됐어요.”
김호연 작가의 신작 ‘서울의 선인’은 의인상 수상자 출신인 철물점 주인에게 한 천사가 찾아오면서 발생하는 일을 다룬 소설이다. 그런데 갑자기 계엄이라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작가가 설명을 보탰다.
“소설 속 천사가 ‘선인(善人)을 못 찾으면 서울을 멸망시키겠다’고 하거든요. 저는 우리 시민들이 계엄을 막으려 국회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의인, 선인이 많은 서울을 떠올려 봤어요. 원래 ‘소돔과 고모라’ 아이디어를 쌓아 두고만 있었는데, 이제 써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진 거죠. 이 시대의 이야기이니까요.”
그는 2021년 출간된 다섯 번째 장편 ‘불편한 편의점’으로 국내외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소설가이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뒤흔든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다룬 이 책은 국내에서 180만부가 팔렸고 해외 5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소설 속 부스터샷 같은 단어는 어느새 낯설어졌지만 세계 독자들이 여전히 이 책을 찾는다. 김 작가가 올해에만 홍콩(3월), 아르헨티나(4월), 폴란드(5월), 프랑스·덴마크(6월) 등 각국 도서전을 누비며 현지 독자들과 만나는 이유다.
주일본 한국문화원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열고 있는 제1회 ‘K북 인 도쿄’ 행사 참석차 일본을 찾은 그를 지난 4일 문화원에서 만났다. 김 작가는 5년 전 서울 청파동의 한 작은 편의점의 이야기에 대한 세계 각국 독자들의 반응이 대동소이하다고 했다. “코로나 때 경험을 잊고 사느라 애쓰지만, 사실은 그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고통받았던 기억을 이 책을 통해 되새기는 거죠.”
‘불편한 편의점’은 해외에서 주로 힐링 소설로 분류돼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마치다 소노코) 등과 나란히 놓여 있다.
그에 비하면 지난달 출간된 ‘서울의 선인’은 스릴러적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그의 네 번째 장편 ‘파우스터’에 가깝다. 하지만 ‘파우스터’도 그랬듯, 장르가 다를 뿐 인간성의 추구라는 김호연 소설의 본질적 흐름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김 작가는 “저는 늘 동시대의 가치,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빠르게 이야기화해서 이 공동체와 나눠야 한다는 소명이 있는 작가”라고 했다.
그는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일본 작가를 묻자 이사카 고타로, 요시다 슈이치, 오쿠다 히데오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제가 소설가가 되는 데 용기를 준 것이 일본 소설의 약진이었어요. 서사가 있고 장르가 명쾌한 소설을 한국 독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확인했거든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기도 한 그는 “문학성이 있는 소설을 쓸 자신은 없지만 대중적 서사가 있는 작품에는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제는 일본 혁신적 서점의 대명사 쓰타야 같은 곳에 한국 문학 서가나 매대가 따로 설치되는 시대가 됐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불편한 편의점’ 1, 2가 이미 일본어로 번역 출간돼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돼 있고, 오는 9월에는 후속작 ‘나의 돈키호테’가 같은 쇼가쿠칸에서 출간된다.
그는 한국 소설이 세계적으로 조명받는 이유를 ‘한류’의 힘에서 찾았다. 한류를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소설의 문학성과 가치가 비로소 해외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앞으로도 독자들을 믿고 계속 쓰겠다”는 그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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