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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는 본능 내려놓아야 서커스가 시작됩니다” 컨템퍼러리 서커스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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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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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템퍼러리 서커스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 인터뷰
다음달 1∼3일 세종S씨어터 ‘룰 더 플레이’

군부대와 논밭 사이를 한참 달려 도착한 경기 양주시의 한 창고. 널따란 공간 한쪽에는 와이어로 고정한 차이니즈 폴이 서 있고 바닥에는 검은 고무매트가 깔려 있다. 매트 위에는 금속 고리가 지나간 흰 곡선 자국이 수없이 겹쳐 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시작으로 ‘컨템퍼러리 서커스’라는 생소한 무대 예술을 올 하반기 다양한 곳에서 선보일 예술단체 코드세시 연습실이다. 성인 키를 조금 넘는 금속 고리를 빠른 속도로 돌리며 그 안팎에서 몸을 움직이는 기예 ‘씨어휠’의 주인공이자 공연을 기획·연출하는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에게 물었다. 서커스란 무엇인가.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 세종문화회관 제공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 세종문화회관 제공

“씨어휠을 가르칠 때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는 겁니다. 휠에 매달려 돌기 시작하면 누구나 살려고 휠을 밀거나 당기게 되는데 그 본능이 휠과 함께 넘어지는 지름길이거든요. 살고자 하는 본능을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중력이라는 물리 법칙을 거스르고, 살고자 하는 본능을 거슬러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 서커스의 본질이다. 권 대표는 “본인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커스 예술가는 자기 기예 수준에 머물지 않고 계속 그 이상에 도전하며 사람들이 보지 못한 모습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 끝을 권 대표는 ‘정화(淨化)’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호흡이 차오르고 근육이 부풀어 도저히 매달릴 수 없는 상태 같은데 매달려 있는, 그 시간을 뛰어넘었을 때 스스로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아지경 같은 거죠.” 장거리 주자가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설 때 찾아온다는 ‘러너스 하이’를 닮은 서커스의 매력이다.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가 지난 16일 경기 양주시 연습실에서 씨어휠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가 지난 16일 경기 양주시 연습실에서 씨어휠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애초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연극을 하려던 그는 더 많은 무대에 서기 위해 거리예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길위의 관객 발길을 붙잡기 위해 하나둘씩 서커스 기예를 가져다 썼다. 외발자전거와 트램펄린으로 시작한 곡예가 본업이 되기까지는 몇 해가 더 걸렸다. 언어 중심의 연극에 싫증을 느끼던 상황에서 몸의 언어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주종목인 씨어휠은 2018년 처음 금속 고리를 잡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 다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해외에서 이를 주문해 받아 든 뒤 독학했다. 권 대표는 “선생님은 유튜브였다. 해외 아티스트 영상을 녹화해 느리게 돌려 보면서 기술을 하나씩 익히고, 결국 몸으로 부딪쳤다”고 그 과정을 돌아봤다.

 

2019년 코드세시를 창단한 그는 서울문화재단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을 거치며 서커스 창작자로 자리 잡았다. 2015년 무렵 서울시가 거리예술 활성화 정책으로 컨템퍼러리 서커스 양성에 나서면서 국내에 서커스 유행이 생겨났다. 지금 활동하는 서커스 창작자 대부분이 그때 배출됐다.

 

서커스 중에서도 여러 기예가 줄줄이 이어지는 무대가 모두에게 익숙한 근대 서커스다.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한층 더 나아가서 창작자 세계관과 이야기를 기예라는 재료로 풀어내는 동시대 공연예술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보기 드문 예술인데 코드세시는 다음 달 1∼3일 세종문화회관 기획 공연 ‘싱크 넥스트 26’에서 ‘룰 더 플레이’를 공연한다. 권 대표는 “아무리 예술성을 담은 작업을 해도 거리에서는 ‘무료네’ ‘서커스 하네’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며 미장센과 감각적 체험이 온전히 전달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23년부터 극장과 갤러리로 들어가는 작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문수빈 코드세시 프로듀서는 “세종에서 컨템퍼러리 서커스를 소개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공연예술로서 컨템퍼러리 서커스를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의 연습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의 연습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룰 더 플레이’는 놀이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권 대표는 “놀이와 서커스 기예가 가진 규칙성이 굉장히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놀이는 무분별해 보이지만 지켜보면 그들만의 규칙과 패턴이 있고,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다른 놀이로 넘어가는 ‘전복’이 일어난다. 서커스 무대도 같은 맥락이다. 프로듀서 모과가 신곡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이번 무대는 최재영(차이니즈 폴)·김준봉(에어리얼 로프)·박상현(줄·차이니즈 폴)·류정윤(에어리얼 폴) 퍼포머가 함께 만든다. 각자 자신의 영역이 뚜렷한 창작자들이며, 김준봉은 올해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초청작 ‘물질’에 퍼포머로 참여했다.

 

16일 경기 양주 연습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 중인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와 문수빈 프로듀서. 세종문화회관 제공
16일 경기 양주 연습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 중인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 코드세시 권해원 대표와 문수빈 프로듀서. 세종문화회관 제공

권 대표를 알린 전작 ‘해원(解願)’은 굿과 서커스를 접목한 작품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이 멈췄던 시기에 그는 ‘위로’라는 화두를 붙잡게 됐다. “라이브가 생명인 공연예술을 화면으로 송출하는 게 맞나 싶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난 다음을 생각하자며 위로를 파고들다 보니, 예부터 민중 깊숙이 들어가 그들을 위로해 온 굿에 닿았죠.”

 

작업하면서 그는 무속인과 서커스 예술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방울을 들고 오랜 뜀박질을 견디는 무당, 작두 위에 서는 무당을 사람들이 경외하는 것은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기예도 마찬가지”라며 한계치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고 말했다.

 

코드세시는 오는 10월에는 또다른 극장에서 신작을 올린다. 굿과 테크노를 결합했던 ‘열망’의 다음 버전이다. 권 대표는 “좋은 공연장에서 열리는 무대를 다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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