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와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고, 신비로운 갯벌에서 조개를 줍고, 눈부신 모래사장과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을 가족과 함께 거니는 일들은 일상의 큰 행복이자 축복이다. 하지만 해변에는 경고 없이 너울성 파도가 밀려든다. 또한 순식간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미끄러운 갯바위는 행복을 불행으로 변하게도 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존 로크는 저서 ‘통치론’에서 “법의 목적은 자유를 억누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보존하고 넓히는 데 있다”라고 했다. 이 명언은 법이 우리를 막는 장벽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는 울타리임을 뜻한다. 잠재적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해변, 항포구 등 연안이라는 공간에서 불행 없이 행복만으로 우리의 바다를 채우려면 어떤 법적 울타리가 필요할까?
자동차에 타자마자 ‘딸깍’하며 안전벨트를 매는 모습은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됐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안전벨트 착용이 의무화됐을 당시의 사회적 저항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속적인 인식 개선과 제도화를 통해 2018년부터는 모든 도로, 전 좌석으로 안전벨트 의무 착용이 확대됐다.
처음에는 불편한 규제로 여겨졌지만 지속적인 홍보와 계도 속에 안전벨트는 국민 생활 속 기본 안전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인구 10만명당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00년 21.8명에서 2023년 4.9명으로 약 77% 감소했다.
이는 안전벨트뿐 아니라 도로환경 개선, 차량 안전기술 발전, 교통안전 정책 등이 함께 만든 결과다. 하지만 안전벨트가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도로 위에 안전벨트가 있다면 바다에는 어떤 안전벨트가 있을까? 바로 구명조끼다. 2021∼2025년 최근 5년간 연안사고 사상자의 87%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구명조끼가 단순한 물놀이 용품이 아니라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임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자동차라는 공간 안에서 안전을 법으로 규제했듯, 예측 불가능한 연안이라는 공간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 구명조끼 착용이 이제는 법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어떻게 구명조끼를 모두 착용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곳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바라는 것은 위험의 크기에 비례하는 차등적인 안전 울타리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주(NSW)에서는 갯바위 낚시 등으로 인명피해가 계속 발생하자 2016년부터 파도가 높고 미끄러져 추락의 위험이 높은 특정 갯바위 지역을 위험구역으로 지정했다. 이곳에서 낚시를 할 때는 반드시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100여명 이상이 연안해역에서 물놀이, 낚시, 해루질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안전 울타리를 연안의 위험 정도를 고려해 차등적으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사고 위험이 높은 특정 갯바위나, 방파제의 테트라포드, 갯골이 깊고 이동이 힘든 갯벌, 물놀이 사고 위험이 큰 해변 등은 위험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해외의 사례처럼 구명조끼 착용이나 휴대 등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법 울타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위험이 매우 커 활동자 뿐 아니라 사고 시 구조 임무를 담당하는 해양경찰관, 소방관 등도 접근 및 구조가 어려운 곳은 출입을 원천적으로 막아 안전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규제가 늘 달가울 수는 없다. 구명조끼를 준비하고 착용하는 것은 번거롭고 답답하며, 활동에 불편을 초래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를 뺏으려는 구속이 아니다. 더 오랜 시간, 더 안전하게 우리 바다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누리게끔 하는 안전벨트와 같다.
이달 15일 지정된 연안위험구역에서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수칙 준수를 의무화하는 연안사고예방법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해양경찰의 일원으로 필자는 연안에서의 안전을 지켜주는 울타리와 같은 이 제도의 발의를 적극 환영하며 조속히 추진되기를 희망한다.
해양경찰은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연안의 위험 평가 체계를 고도화할 것이다. 위험구역의 지정 대상 기준을 명확히 하고, 체계적 관리 방안들을 고민하며, 국민의 불편이 최소화되도록 정책들을 추진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정부의 제도적 개선 노력과 국민의 성숙한 안전의식이 맞물릴 때 대한민국의 바다는 치유와 휴식의 바다로 거듭날 것이다. 바다로 향하기 전 구명조끼가 바로 당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울타리이자, 안전벨트임을 꼭 기억해 주길 진심으로 당부드린다.
장인식 해양경찰청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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