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에서 여고생을 살해한 장윤기를 수사한 경찰 수사팀장이 핵심 증거물인 ‘케이블타이’를 인멸한 정황이 확인돼 긴급체포 됐다. 현직 경찰인 장윤기의 부친이 해당 경찰서에 근무한 이력이 있어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고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광주경찰청은 6일 장윤기 사건의 수사팀장이었던 광주 광산경찰서 소속 박모 경감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광산서 수사팀은 장윤기가 범행 도구로 이용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안에서 케이블타이를 확인하고도 증거물로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SUV 내부를 촬영한 영상에는 이 같은 증거가 담겼지만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기록에는 해당 내용이 누락된 것으로 파악됐다. 케이블타이는 성범죄에 결박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핵심 증거였지만 경찰은 이를 증거물로 확보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경찰은 성폭력법상 강간 등 살인 대신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성폭력법상 강간 등 살인의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지만 살인죄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낮아진다.
경찰은 중요증거로 꼽히는 SUV 차량도 혈흔 및 지문 채취 등 기본 감식만 마친 뒤 장윤기 부친에 인계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과정에서 SUV 차량이 장기간 운행되는 등 증거물이 훼손됐다. 트렁크에 숨겨진 과거 블랙박스도 확보되지 않았다. 이후 검찰의 재압수수색을 통해 이 같은 증거물들이 발견됐다.
검찰 보완수사 과정에서 장윤기 부친이 사건 사흘 뒤 경찰 수사팀으로부터 아들 자취방 주소와 출입 비밀번호를 전달받은 정황도 나타났다. 그는 아들 자취방에서 주요 증거물인 리얼돌을 폐기했다. 본가에 있던 장윤기의 과거 휴대전화도 폐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리얼돌에 대한 영상을 촬영했으나 실물증거로 보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 다른 크기의 리얼돌 2개는 주요 부위가 흉기에 훼손돼 장윤기가 범행을 연습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기 부친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리얼돌을 폐기한 이유에 대해 “아들 범행이 성범죄와 연관되는 것이 우려됐다”고 이유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해당 수사팀이 장윤기 부친에 수사정보를 유출하고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현역 경찰인 장윤기 부친은 해당 수사를 진행한 광주 광산경찰서에 근무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나면서 부실수사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 같은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이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면서 현재 논의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 흐름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검찰개혁 과정에서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나 경찰 수사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홍 본부장은 이날 취임 후 처음 가진 간담회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고 사과했다. 그는 “(광주 사건에 대한) 수사감찰 중 수사 전환 필요성을 보고받아 엄정수사를 지시했다”며 “조직 명운을 걸고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장윤기 관련 증거인멸에 대한 수사를 광주청 반부패수사대에 맡겼다가 수사감찰 대상에 오른 광주청이 수사에 나서는 것에 대한 공정성 우려가 제기되자 재차 본청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을 다시 꾸리는 등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다. 광주청 지휘부는 수사라인에서 배제됐고 특별수사팀은 독립성을 갖고 최종 수사결과만 국수본부장에 보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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