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 불안한 마음 담겨
모든 것이 즉각 연결되는 사회
진위 가르는 기준조차 흔들려
극장이 어두워지고 화면에 노란 벽이 차오르는 순간부터 ‘백룸’은 관객을 설명하기 어려운 기시감 속에 붙들어 둔다. 최대치로 웅웅대는 형광등 소리와 발밑에서 눅눅하게 꺼지는 카펫만으로 우리는 언젠가 지나쳤으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 장소에 떨어진다. 올여름 예상밖의 흥행을 만든 이 저예산 공포영화의 연출자가 고작 스무 살의 유튜버라는 사실은 그 낯섦을 더욱 묘하게 만든다.
‘백룸’은 극장에서 태어난 영화이기 전에 인터넷에서 자란 악몽이다. 2019년 해외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서 태어난 이 개념은 노랗게 바랜 벽, 그 뒤로 곰팡이가 그득할 듯한 텅 빈 방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무의식과 현실의 접점을 표방한 공간이었다. 잘못 들어선 사람을 끝없는 공간으로 끌고 간다는 괴담으로 승화한 이미지는 입구도 출구도 없이 똑같은 방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설정을 통해 알고리즘이 체화된 디지털 세대의 불안을 건드렸다. ‘백룸’은 이 괴담을 실사로 옮겨, 가구 매장 지하에서 이상한 문을 발견하고 그 너머로 사라진 남자와 그를 찾아 미궁으로 걸어 들어가는 심리상담사를 뒤쫓는다.
호평과 혹평을 넘나드는 ‘백룸’의 공통적인 후기는 손톱 거스러미처럼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1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미묘하게 어긋난 영상 속에서 복도의 비례는 어딘가 늘어나 있고, 스쳐 지나가는 얼굴은 사람과 추상적인 이미지 사이를 오간다. 익숙한 세계가 꿈속에서 잘못 조립된 채 돌아올 때의 불쾌한 친숙함, 초점이 묘하게 어긋나 기괴함에 가까운 린치안적 이미지는 마치 AI 생성 모델이 결과물을 다시 삼키며 학습을 거듭할수록 내뱉는 산출물과 닮았다. 연구자들이 모델 붕괴라 부르는 이 퇴행은 제 기억에 기대어 원본에서 점점 미끄러지다 그럴듯하지만 공허한 평균으로 수렴하는 현상으로, 앞선 방을 닮을수록 기존의 공간과 멀어지는 백룸의 복도처럼 무언가를 충실히 흉내 내려다 그 대상을 놓쳐 버린 자리에서 피어난다.
‘백룸’의 세상은 그리움을 연료로 삼아 타오른다. 백룸의 방들은 유년의 쇼핑몰이나 인적 끊긴 호텔 복도처럼 누구나 어렴풋이 기억하는 공간을 흉내 내지만, 그 익숙함은 한번 발을 들이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으로 돌변한다. 인공지능 또한 학습의 재료가 언제나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의 기록인 탓에 그 산출물은 겪은 적 없는 시절을 향한 향수처럼 다가오고, 겪지 않은 과거가 그리워질수록 실제로 살아 낸 시간은 그만큼 조용히 자리를 잃어간다. 가 본 적 없는 곳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감각은 더없이 달콤하며, 그 달콤함이야말로 가장 조용한 마취다. 우리는 자신의 기억과 기계가 재조합한 기억을 점점 더 구분하지 못한 채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세상을 그리워하는 법을 배워 간다.
같은 여름, 또 다른 유튜버 출신 감독의 저예산 공포영화가 백룸과 나란히 북미 박스오피스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옵세션’은 오랫동안 짝사랑을 품어 온 남자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물건으로 그토록 바라던 여자의 마음을 얻어내지만, 그렇게 쥔 사랑에는 정작 그녀 자신의 의지가 텅 비어 있다는 이야기다. 현대 젊은 세대에게 공포는 피눈물을 흘리며 저주를 뱉는 귀신도 아니고, 빙의된 인형을 잘못 들여 겪는 가택 침입의 악몽도 아니다. 이들의 상실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에서 배어 나오며, 자유의지가 지워진 채 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절망으로 굳어진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내 의지인지, 내가 있는 공간이 실제세계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을 ‘백룸’은 출구 없는 장소로 그리고, ‘옵세션’은 사랑이라는 허상 속 강요된 관계로 표현한다. AI는 이 두 공포를 기술적으로 증폭시킨 시대적 배경이다. 많은 관객이 이 우화에 유독 서늘해 하는 데에는 우리가 점점 더 많은 애정과 안정을 사람이 아닌 쪽에 주문해 받아내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닮지 않은 두 영화가 실은 똑같은 결핍을 앓고 있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연결되고 범람하는 사회에서 상실되는 자아와 의지는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조차 흔들리게 한다. 우리가 마주한 세계에선 원본이랄 것조차 없이 서로를 베끼며 번식하는 이미지를 통해 모조라는 개념마저 힘없이 무너진다. 그렇다면 진정성은 이제 어디에 머무는가. 어쩌면 무언가 어긋났다고 느끼는 관객의 불편함 속에 더 오래 살아남고, 꺼진 스크린 앞에서 빼앗긴 주체성을 자각하며 의문을 던지는 찰나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문화적, 경제적 부패의 증상이라 부르며 ‘백룸’의 거대한 세트를 컴퓨터 그래픽 대신 실제 벽과 바닥으로 세운 감독의 고집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다만 주인도 저자도 없이 부풀어 온 그 집단의 신화가 이제 한 사람의 이름과 스튜디오의 판권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쉽게 웃어 넘겨지지 않는다. 정작 그 방을 함께 지어 올린 세대는 이제 남의 재산이 된 제 악몽을 극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묻는 일조차 점점 멋쩍어지는 시대에 텅 빈 노란 방에서는 형광등이 여전히 웅웅거린다.
반휘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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