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인 흔한 ALDH2 변이, 홍조는 독성물질 신호
술 안 마셔도 붉은 기 남으면 주사 피부염 등 확인해야
화면 속 얼굴에서 붉은 기가 빠졌다. 턱선도 한결 날렵해졌다. 지난 1일 영화 ‘호프’ 홍보 영상에 등장한 배우 황정민의 달라진 모습에 시선이 쏠렸다. ‘술톤’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붉은 얼굴로 익숙했던 그가 이전과 다른 인상을 보인 것이다.
연예계 대표 애주가로 꼽혔던 황정민은 2025년 2월 한 방송에서 금주한 지 1년째라고 밝혔다. 술을 많이 마신 뒤 기억력이 떨어지고 잔실수가 늘자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술을 끊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달라진 얼굴을 금주의 효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체중 변화뿐 아니라 조명과 화장, 촬영 각도에 따라서도 피부색과 얼굴선은 달라질 수 있다. 금주 전후의 피부 상태를 의학적으로 비교한 자료도 없다.
분명한 점은 술을 마신 뒤 얼굴이 빨개지는 현상이 ‘술이 잘 받는다’는 신호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인 10명 중 4명, 매달 한 번 이상 ‘폭음’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성인의 월간폭음률은 37.8%다.
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이상 한 번의 술자리에서 남성은 7잔, 여성은 5잔 이상 마신 사람의 비율이다. 성인 10명 중 4명 가까이가 매달 한 차례 이상 폭음한 셈이다.
같은 양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고위험음주율도 13.6%로 집계됐다. 성인 7∼8명 중 1명은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는 뜻이다.
술자리에서 얼굴이 붉어지면 “술이 금방 오른다”, “마시다 보면 적응된다”는 말이 흔히 나온다. 의학적으로는 반대에 가깝다. 몸이 알코올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빨개진 얼굴, 아세트알데하이드 축적 신호
몸에 들어온 알코올은 알코올탈수소효소인 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바뀐다. 독성이 있고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이다.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다시 알데하이드탈수소효소에 의해 독성이 낮은 물질로 분해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가 ALDH2다.
ALDH2 기능을 떨어뜨리는 유전적 변이가 있으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다. 몸속에 쌓인 아세트알데하이드는 히스타민 분비를 유발해 얼굴과 목을 붉게 만든다. 메스꺼움과 두통, 빠른 심장박동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유전적 변이는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 등 동아시아계에서 상대적으로 흔하다.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술에 강한 게 아닌 독성 대사산물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홍조를 줄이기 위해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붉은 기가 줄 수는 있지만 알코올 분해 능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세트알데하이드 축적과 이에 따른 건강 위험도 사라지지 않는다.
◆술 마실 때마다 얼굴 ‘화끈’…주사 피부염 방아쇠
술은 얼굴 혈관과 신경 반응을 자극해 홍조를 일으킨다. 주사 피부염이 있는 사람에게는 증상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주사 피부염은 뺨과 코, 이마, 턱을 중심으로 붉은 기와 열감이 반복되는 만성 피부질환이다. 가느다란 혈관이 피부 표면에 도드라지거나 여드름과 비슷한 구진과 농포가 나타나기도 한다.
햇빛과 더운 날씨, 급격한 온도 변화, 매운 음식, 격한 운동, 스트레스도 증상을 자극한다. 술은 여러 유발 요인 가운데 하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주사 피부염에 걸릴 수 있어 음주를 질환의 유일한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주사 피부염이 있는 사람에게 술은 뚜렷한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어떤 술을 얼마나 마셨을 때 증상이 심해지는지 살피고 원인이 분명하다면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술을 끊거나 줄이면 적어도 음주 직후 반복되던 홍조와 열감은 피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금주가 피부 혈관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치료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피부를 계속 자극하던 요인 하나를 제거한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술 끊었는데도 붉다면 진료 받아야
금주가 이미 생긴 피부 변화를 모두 없애주지는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도 얼굴이 계속 붉거나 실핏줄이 눈에 띈다면 단순한 음주 홍조가 아닐 수 있다.
붉은 기와 화끈거림이 반복되거나 뾰루지, 눈 자극 증상까지 나타난다면 주사 피부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증상에 따라 바르는 약이나 먹는 약이 사용된다. 지속적인 홍반이나 눈에 띄는 혈관에는 혈관 레이저와 광선 치료가 시행되기도 한다. 치료법은 피부 상태와 증상에 따라 달라진다.
황정민의 달라진 얼굴만으로 이를 금주의 효과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술자리에서 얼굴이 빨개지는 현상을 ‘술이 잘 받는 체질’이라며 웃어넘겨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술에 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몸이 독성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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