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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지현, ‘도화지 배우’에서 ‘팔레트 배우’로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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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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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배우 중 최근 가장 눈에 띄게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를 꼽으라면 박지현이 빠지기 어렵다. 그는 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스펙트럼 자체로 변신을 증명하는 타입에 가깝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날카로운 형수에서 영화 ‘히든페이스’의 파격적인 미주, ‘와일드 씽’의 퍼포머, ‘내일도 출근!’의 현실 직장인까지, 행보만 나열해도 그 폭이 드러난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각인된 ‘국민 형수님’

 

박지현은 JTBC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가 맏며느리이자 현성일보 장녀 모현민을 맡아 대중적 인지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도회적이고 날카로운 외모, 철저히 계산적인 말투와 시선 처리, 재벌가 내부 권력 싸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어우러지며 ‘재벌집 형수님’, ‘국민 형수님’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스타일링·톤·눈빛을 시대 배경에 맞게 세밀하게 조정해 ‘이 집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점이 특히 높게 평가됐다.

 

이전에도 그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이정경, ‘유미의 세포들’의 얄미운 여사친 서새이 등으로 ‘서사와 갈등을 끌어올리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왔다. 짝사랑, 꿈, 자존심이 얽힌 청춘의 내면을 섬세하게, 갈등을 유발하는 빌런 포지션을 현실감 있게 연기하며 ‘과몰입 유발자’라는 평가를 얻은 것도 이 시기다.

◆‘히든페이스’와 ‘은중과 상연’이 보여준 깊이

 

영화 ‘히든페이스’는 박지현을 둘러싼 ‘파격’이라는 단어를 단번에 소환했다. 전라 노출 베드신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작품을 본 이들이 더 많이 입에 올린 건 ‘진짜 같은 감정 연기’였다. 욕망과 불안, 즉흥성과 치밀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인물 ‘미주’를 연기하며, 자극적인 장면에 기대기보다 그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촘촘히 설계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에서 그는 20대부터 40대까지 ‘천상연’의 전 생애를 연기하며 “나이까지 연기한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20대의 동경과 질투, 30대의 결별과 파국, 40대의 병색과 죽음 수용까지 각 시기를 목소리 톤·스타일링·눈빛의 깊이로 구분해 켜켜이 쌓아 올렸다. 그 결과 “김고은은 원래 잘 알았지만, 박지현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평가를 이끌었다.

 

두 작품을 통해 박지현은 단지 ‘예쁜 얼굴의 재벌 형수’가 아니라, 심리극·멜로드라마에 강한 배우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와일드 씽’과 ‘내일도 출근!’이 드러낸 팔레트의 폭

 

영화 ‘와일드 씽’에서는 노래·춤·무대 퍼포먼스를 전면에 세우며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기로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공포·멜로·재벌극에 이어 뮤지컬에 가까운 영역까지 확장한 사례로, ‘공포·로맨스·액션 다 있는 연기 팔레트’라는 평과 맞닿아 있다.

 

tvN ‘내일도 출근!’에서의 현실 직장인 연기와 로맨스는 그 팔레트의 색을 한층 생활 밀착형으로 옮겨 놓은 버전이다. 회사 안에서의 미묘한 위계, 연애와 커리어 사이의 줄타기, 잘 보이고 싶지만 자존심도 지키고 싶은 젊은 직장인의 모순 같은 정서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실제 사무실에 있을 법한 사람’의 톤으로 풀어낸다.

 

앞선 작품들의 강렬한 캐릭터(형수·빌런·암 환자 등)와 달리, 평범해 보이는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여기에 SBS ‘재벌X형사’에서 선보인 강력팀 형사 캐릭터는 민첩한 액션, 수사 과정의 냉정함, 동료와 피해자를 대하는 따뜻함을 오가며 장르 액션까지 소화 가능한 배우라는 인상을 덧붙였다.

◆‘도화지 배우’에서 ‘팔레트 배우’로

 

박지현의 강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표정·눈빛 중심의 섬세한 감정 연기력이다. 짝사랑·질투·결핍·병색 같은 미묘한 정서를 과장된 오열이나 과시적인 연기보다, 눈빛·호흡·사소한 표정 변화로 풀어낸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 이후에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연기’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둘째, 캐릭터에 맞춘 물리적·외적 변주다. 나이대별 톤·스타일링을 완전히 달리한 ‘은중과 상연’,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의 의상·말투, ‘히든페이스’에서의 과감한 노출 선택까지, 캐릭터에 맞게 ‘보이는 것’을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미지 관리보다 역할 우선을 택하는 선택으로 읽힌다.

 

셋째, 장르와 톤을 가리지 않는 유연한 스펙트럼이다. 공포(‘곤지암’), 멜로·음악(‘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로맨틱 코미디·빌런(‘유미의 세포들’), 가족·재벌극(‘재벌집 막내아들’), 심리 멜로(‘은중과 상연’), 장르 영화·퍼포먼스물(‘히든페이스’, ‘와일드 씽’), 형사물·직장극(‘재벌X형사’, ‘내일도 출근!’)을 빠르게 오가며 스스로를 특정 장르에 가두지 않는다. 이 점에서 박지현은 “도화지 배우”를 넘어, 팔레트 자체를 손에 쥔 배우라는 인상을 준다.

 

◆이제는 서사 중심으로

 

지금까지 박지현은 상대적으로 조연·투톱·빌런 포지션에서 ‘극의 온도를 바꾸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다. ‘히든페이스’, ‘은중과 상연’을 기점으로 완전한 원톱 혹은 타이틀 롤에서 얼마나 무게 중심을 견디며 서사를 끌어갈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또한 장르를 어디까지 확장할지도 관심사다. 박지현은 인터뷰에서 코미디에 대한 갈증을 여러 차례 언급해 왔고, 직장 로코인 ‘내일도 출근!’은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작품에 가깝다. 이 작품의 성과에 따라 향후 로맨틱 코미디·코미디 장르에서의 비중도 달라질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재벌집 막내아들’로 얻은 대중성을 ‘히든페이스’와 ‘은중과 상연’이 깊이로 채워 넣었다면, ‘와일드 씽’과 ‘내일도 출근!’은 그 폭을 넓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이 배역은 박지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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