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구조대 발견 뒤 100시간 넘게 작업
골든타임 훌쩍 초과한 생존…“희망의 증거”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규모 7.5의 강진이 발생한 지 8일째인 2일 새벽(현지시간). 해안 마을 라구아이라의 무너진 ‘갈레리아스 플라야 그란데’ 쇼핑센터 잔해 아래에서 숨막히는 구조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칠레, 미국, 코스타리카 등 전 세계에서 모여든 구조대원들이 뚫어놓은 비좁은 터널 끝에서, 마침내 누런 먼지를 뒤집어쓴 한 남성이 들것에 실려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현장은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뒤덮였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주황색 방수포에 덮여 나온 이는 43세의 보안요원 에르난 알베르토 힐 플로레스였다. 8일간의 어둠을 뚫고 나온 그를 보며 각국 구조대원들은 국기를 흔들었고, 일부 대원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AP, UPI통신 등 외신은 이날 베네수엘라 지진 현장에서 ‘희망의 상징’이 된 힐 플로레스의 기적적인 구조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구조팀이 힐 플로레스의 생존을 최초로 확인한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그러나 생존 확인 후 최종 구조까지는 100시간 이상의 추가 작업이 소요되었다. 불안정한 건물 구조와 계속되는 여진, 그리고 현장의 폭우로 인해 구조팀은 생존자가 있는 곳까지 별도의 터널을 굴착하여 접근해야 했다.
구조 과정에서 팀은 좁은 통로를 통해 신축형 카메라를 진입시켜 힐 플로레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했다. 칠레 소방청 소속의 마리아 파스 캄포스는 구조가 완료될 때까지 통신을 유지하며 생존자 상태를 관리했다. 현장 영상에 따르면 힐 플로레스는 대기 시간 동안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버텼으며, 구조팀은 낙하물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게 고글 착용을 지시하고 틈새를 통해 물과 액체 영양분을 공급했다. 그는 재난 발생 시 통상적인 인명 구조 한계 시간으로 간주되는 72시간을 약 120시간 초과한 190여 시간 만에 구출됐다.
지진 당시 힐 플로레스는 쇼핑센터 내 소형 보안실 내부에 머물고 있었다. 주변 콘크리트 구조물은 붕괴했으나 강화된 보안실 구조가 외부 압력을 버텨내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에어포켓)이 확보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견 초기 힐 플로레스는 구조팀에 자신의 생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구출에 실패할 경우 가족이 겪게 될 2차적 충격을 우려한 판단이었다. 그의 부탁에 코스타리카 적십자 소속 구조대원 미냐르 콜라도는 그를 반드시 구출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플로레스의 아내 구스비마르 곤살레스는 AP통신에 “남편이 실종된 후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며칠간의 시간은 ‘끝없는 절망’의 연속이었다”며 “생존 소식을 듣고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며 감격스런 마음을 전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대행은 자신의 SNS(X)를 통해 “한 사람을 구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인류가 하나 되었을 때 보여주는 위대함을 축하한다”며, 자국 구조대와 국제 사회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베네수엘라 북부 해안을 강타한 규모 7.2와 7.5의 연속 강진으로 북부 베네수엘라에서 수만 채의 건물이 파손되거나 완전히 붕괴됐다. 2일 기준 사망자는 2595명, 부상자는 1만2000명 이상으로 집계됐고, 실종자는 1만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자 수가 더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이번 재난으로 약 68만명의 아동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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