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후배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상 중이던 장편소설의 장면 묘사를 위해 런던 여행 중이었다. 후배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어떻게 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여행 중에 맞닥뜨린 건 환대나 친절이 아닌 이방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언사들이었다. “칭총챙, 칭총챙” 조롱하는 청년들, 주문에 늑장 대응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커피숍 직원, 세척하지 않은 욕실용 컵을 갖다 놓는 호텔 리셉션 직원의 서비스…. 짧은 여행이었지만, 인종차별이 담긴 크고 작은 경험들로 그 역시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차별이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도 보편화된 현상이구나.
이때 문득 소설가 조해진에게 책 등을 통해 알고 있던 일본 자이니치(재일조선인)들의 삶이 떠올랐다. 지속적이고 구조적이며 강고한 차별, 그 압도적 차별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했던 자이니치 서경식 작가와 양영희 감독, 김시종 시인….
그에게 자이니치의 세계를 처음 안내한 것은 인권운동가 서준식씨의 동생으로 도교대 교수 출신 서경식(1951~2023)의 2006년작 『디아스포라 기행』이었다. 그는 이후 대표작 『나의 서양미술 순례』(2002년)와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2006년) 등을 비롯해 국내에 번역된 서경식의 책을 거의 모두 찾아 읽었다. 자연스럽게 자이니치들의 삶이 하나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문맹을 감추고 싶었던 어머니, 유년 시절의 일화들, 유학생간첩 조작사건에 연루된 형들, 그 형들을 위해 미국 인권단체에서 구명운동을 하던 날들의 이야기들…. 어느 새 자이니치는 그에게 또하나의 영토가 되었다.
이들의 글과 작품을 읽어가면서 그는 막연히 자이니치의 삶을 담은 소설을 꼭 한 번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히 2023년 서경식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마음이 더 커졌고. 그러다가 2년여 전 이방인에 대한 여러 차별을 경험한 런던의 거리에서, 마침내 소설이 그에게 왔다.
“이때부터 소설 『우리 세희』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세희』에서도 화자인 연주가 취재차 런던에 가고 그곳에서 여러 인종차별을 겪는데, 그 설정은 자전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탈북자와 노인, 이주민, 여성 등 주류 세계에서 밀려난 우리 시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담담한 문장으로 위무해온 소설가 조해진이 이번에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일본 자이니치들의 이야기를 놀라운 감수성으로 그려낸 중편소설 『우리 세희』(현대문학)를 들고 돌아왔다. 지난해 『현대문학』에 발표한 작품을 다시 보완 퇴고해 발표한 신작이다.
소설은 전쟁과 내전의 흔적을 주제로 전시한 일본계 영국인 ‘제이비 류’를 취재하기 위해 런던으로 출장을 온 자이니치 출신 ‘연주’가 일본에 있는 ‘선생님’ 서정우의 아내 ‘센세’로부터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주는 서울 북촌에서 처음 ‘선생님’ 부부를 만났던 어린 시절 추억을 비롯해 자신의 엄마 ‘세희’와 대학시절부터 인연을 맺게 된 ‘선생님’과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교차시킨다. 엄마와 ‘선생님’ 부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해 왔는지, 자이니치들이 어떤 차별과 상실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상기하며 자신의 삶과 가족의 역사를 마주한다.
“그들에게 고향은 마음이 다치고 몸이 상한 채로 돌아가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곳이었다. 살면서 겪어온 모든 서러움을 헤아리고 상처를 봉합해주는 그곳에서 싱그럽도록 젊은 아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고 그들은 믿었다. 이미 버려진 적이 있으면서, 배신당한 채 다시 떠나오기도 했으면서, 그들은 투명한 수정구처럼 그 믿음을 보듬었다. 보듬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 탈피하지 못한 번데기도 꿈에서는 일어버린 날개를 찾듯이. 처음부터 없던 날개인 줄도 모르고.”(74쪽)
연주는 또한 런던에서 예술가 제이비 류와의 만남과,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그의 작품을 통해 자이니치의 역사와 폭력의 기억, 그리고 국가와 경계가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을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된다.
현재와 런던, 과거의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선생님’의 죽음을 예감하는 시간 속에서, 연주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차례로 소환해 국적과 언어, 경계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삶을 응시한다. 그리하여 역사와 개인, 상실과 애도, 떠남과 귀환이 포개진 자리에서 끝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욘주, 나는 준비가 된 것 같아. 상상의 통로를 지나온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울지 않기 위해 내 운동화만 내려다봐야 했다. 하지만 센세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잠시 뒤 나는 속으로만 웅얼거렸고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마침내 목구멍 안에 갇혀 있던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나왔을 때, 선생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부재하는 그의 자리, 부재를 예감하는 내 자리, 소리가 안내하는 긴 여정의 끝에서 나는 쓸쓸해졌다. 선생님의 환영은, 그날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86~87쪽)
그러니까 소설은 연주가 취재차 떠난 런던에서 이방인임을 체험하게 된 3일간의 일정에서 자신과, ‘선생님’, 그리고 제주 출신의 조부를 둔 제이비 류의 가족사를 반추하는 이야기를 통해 때론 폭풍처럼, 때론 노래처럼 역사를 살아낸 모든 자이니치에게 보내는 헌사쯤 되겠다.
소설가 조해진은 왜 자이니치의 삶과 세계를 끄집어 우리에게 들려줘야 했을까. 그가 그린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조 작가를 최근 이메일과 전화로 만났다.
―서경식, 서승, 서준식 형제와 양영희 감독, 김시종 시인 등 실제 인물을 모델로 세웠는데, 우문입니다만, 왜 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 했나요.
“그들의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 저에게 자이니치는 일본에 사는 교포 정도에 지나지 않았어요. 저처럼 역사적 맥락 안에서 자이니치를 생각해보지 않았고 가슴에 품어본 적 없는 분들에게 그들이 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일본에서는 어떤 차별을 받았고, 고국은 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그런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설에 썼듯, 자이니치는 대부분 강제징용이나 강제징집으로 일본행 배를 탔고 고국으로 어렵게 귀환해도 이용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체제 선전용으로, 아니면 독재를 위한 간첩으로. 애달픈 삶이었던 셈이죠. 대부분 잊힌 그 애달픈 삶 하나하나를 현재로 가져와 ‘우리’로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작품 준비와 창작 과정에서 특별히 어렵거나 기억나는 게 있는지요.
“실제 모델이 있는 소설은 저도 처음 썼어요.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누가 되지 않으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사를 완성해가는 것, 그런 점이 어려웠습니다. 출판사에 『우리 세희』의 완고를 드리기 전에(지난해 4월에 월간 『현대문학』에 이미 전재는 한 번 했습니다),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에 갔던 건 그 공간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여정 중에 오사카 국제평화 센터를 방문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오사카 공습을 포함한 미군 주도의 연합군 폭격에 일본이 피해자를 자처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을 소설에 담게 되었습니다. 서구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필요했다고 믿던 ‘류성철’의 장인 같은 인물을 통해서였죠. 답사를 했기에 가능했던 그런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 속 화자는 세희의 딸 연주인데요, 약한 것 같으면서도 약하지 않고, 사려도 깊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이 보이기도 하고요.
“제 소설 속 인물들, 특히 여성 인물들은 대부분 강합니다. 중학교 때는 민족학교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의 유일한 자이니치여서 온갖 차별을 받지만 대학에서는 시위에 앞장서고 후배들에게 한국어(조선어)를 가르쳤던 ‘박력’ 있는 엄마 세희처럼요. 약자지만 어느 순간 세계와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다는 점에서 저는 늘 강한 인물을 써왔다고 생각해요. 실제의 저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사람들이죠.”
―소설의 주요한 키워드로 자이니치, 국적과 경계, 디아스포라와 차별, 기억과 애도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저는 이 시대 독자들과 기억과 애도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함께 기억한다는 것, 기억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꺼이 소속된다는 것, 그것이 인간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한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시대 경찰이 여전히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던 4.3 같은 무자비한 역사를 잊지 않고 함께 기억하는 자리, 문학은 그런 곳에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작가의 말」에서 자이니치가 또 하나의 영토가 되셨다고 하셨는데, 그 영토는 어떤 모습일까요.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건너간 친척에게 생필품을 보내는 에피소드라든지 일본 안에서 무국적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일화들을 자이니치 출신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경식 선생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서경식 다시 읽기1』(2022년)에 참여하면서 선생님과 선생님의 아내를 여러 번 만날 기회도 있었고요. 그때 제가 선생님 부부에게서 받은 인상을 소설에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설이기에 제 상상을 더 얹었지만요. 자이니치라는 영토는 저에게 어디에도 온전히 귀속되지 못했고 어디에서도 따뜻하게 환대받지 못한 경계인의 표상입니다.”
―이번 소설은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짧은 분량이지만, 『우리 세희』는 소설 중에서 역사적 사건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이에요.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미군정 시대, 제주 4·3, 북송사업, 한일협정, 한국의 독재와 북한의 ‘고난의 행군’ 등이 담겼죠. 야만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기에 저에게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앞으로 쓰게 될 소설들에도 영향을 줄 듯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드문드문 “좋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대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덕담도 들었다. 국문학과를 부전공으로 택했던 대학생 조해진은, 3학년 때 처음으로 소설창작 수업을 듣게 됐고, 수업의 일환으로 처음 습작 소설을 발표하고 합평까지 받았다. 습작을 쓴 뒤 그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그의 꿈은 다시 바뀌지 않았다.
내향적인 소녀였지만, 조해진은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면 독서와 몽상을 하던 ‘몽상가’였다. 처음에 매료된 책은 『어린 왕자』였고, 혼자 공상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좋았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어떻게 살아왔을지 자주 궁금해 하곤 했다.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니까 갑자기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엔 참고서 아래에 소설을 숨겨놓고 읽었고, 중학교 때에는 가끔 소설을 끄적여 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 입시가 너무 무거워서 글을 쓰다 말았고.
졸업하기 전에 뭔가 이벤트가 하나 있다면⋯. 그는 소설을 새롭게 써서 교내 대학문학상에 응모했고, 당선됐다. 상금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당선작이 교지에 실린 게 좋았다. 교지를 들고 있는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볼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직장을 다니면서 5년 정도 습작을 한 뒤에 등단할 수 있었다.
197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해진은 2004년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로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빛과 멜로디』 등을,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을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2011년 『로기완을 만났다』 전후 작품 세계가 바뀌었다고 하셨는데요.
“이전에도 소외된 사람들을 쓴 건 비슷했지만, 자기 절망이 커서 시니컬하고 폐쇄적이며 차가운 인물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주요 인물들이 현실적인 고난이 오면 이별이나 죽음 등 숨어버리거나 자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세계가 확장되고 희망에 가까워지는 소설 세계로 점점 나아가더라고요. 하지만 『로기완을 만났다』부터 인물들이 진실을 응시하면서 타인과 연대하려고 하고, 희미하나마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증여나 연대, 공감 같은 것을 생각했어요. 상황 자체는 고통스러울지라도 결과적으로 서로를 살게 하는,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이야기와 문장을 찾아갔어요.(계기가 있었는지요) 아마 제 성격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 읽고 쓰면서 극단적으로 절망하는 인물이야말로 오히려 더 쉬운 타협이고 회피이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찾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용기이고 더 문학적일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한 인물에 대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나 사회적 사건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소설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라든가 방법은 있습니까.
“『로기완을 만났다』를 쓰는 마음이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가식적이거나 순간적인 위로만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도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어쨌든 희망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또 문학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몰랐던 세상을 더 알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욕심을 더 낸다면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요.
“일단 꾸준히 쓰고 쓸 수 있는 데까지 지치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 지금은 그게 전부입니다.(혹시 롤 모델이 있는지요) 사회적인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외국 작가로는 『숨그네』를 쓴 루마니아 태생의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을 좋아하지요.”
그는 지난 5월 초에 이사를 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전통시장 옆에 위치해 있어서 살기엔 편했지만, 창밖의 세상은 앞집 벽뿐이었다. 공동현관문을 나선 뒤에야 비가 오는 걸 알고는 우산을 챙기러 다시 집으로 들어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곳은 천변. 아침에 눈을 뜨면 창문을 통해 그날의 날씨를 알 수 있다.
소설가 조해진은 날씨를 가늠하며 대강 옷을 챙겨 입고 천변을 걷는다. 그의 삶에 오전 산책이 새로 추가된 셈. 그 뒤엔 읽고 쓰는 일을 주로 하고, 저녁에 다시 한 번 산책을 한다. 예전보다 두 배 이상 걸어서인지 잠을 잘 자고 있다고. 그는 걷고 걸으면서 자주 이야기의 씨앗을 틔우기 시작한다. 인물을 만들고, 장면을 구체화하고. 소설은 결국 허구이고 허구 안에서 설득력을 가져야 하니까. 그러다가 세상의 온갖 소리가 배경으로 가라앉은 어느 날은, 상상력이 부풀어 오른 곳에서 자이니치 모녀를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연주를 떠나야 하는 엄마 세희를, 다시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엄마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안아주려는 우리 연주를….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주사를 맞고 몽롱해하던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우리 오마니와 아바이, 그리고 오빠를….’ ‘….’ ‘잊지 말아줄래?’ 물으며, 엄마는 밀려오는 약기운에 투항하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잊지 않아…. 잠든 엄마 곁에 앉아 그렇게 되뇌던 그때처럼, 3년여가 흐른 지금,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가만히 속삭였다. 불러보고도 싶었다. 세희야, 라고. 우리 세희야.”(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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