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후손인 새의 놀라운 생존법 소개
빙하기 등 지나 수억년 적응전략 눈길
지구 공존 위한 자연 질서 이해 촉구
새들의 세계/ 마이크 언윈/ 류토 미야케 그림·조은영 옮김/ 시공사/ 2만5000원
새는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야생동물이다. 도시의 전깃줄 위 참새와 까치에서부터 산과 바다, 습지와 사막을 누비는 철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일 새를 마주한다. 그러나 정작 새가 어떻게 진화했고,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며, 왜 지구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영국의 저명한 자연사 작가 마이크 언윈의 ‘새들의 세계’는 남극의 빙하와 아프리카 초원, 아마존 열대우림, 히말라야 상공을 누비는 새들을 따라가며 이들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저자는 새를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생존의 천재’로 바라본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비행조차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공룡의 후손인 새들은 몸속 뼈를 비우고 깃털을 발달시키는 한편 심장과 폐를 고효율 기관으로 진화시키며 하늘을 지배하는 생명체가 됐다. 현재 지구에는 1만 종이 넘는 새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눈길이 가는 사례 가운데 하나는 줄기러기다. 히말라야를 넘나드는 이 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하늘을 나는 철새라 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산소 부족으로 몇 분도 버티기 어려운 해발 7000m 이상의 상공을 날아 인도와 티베트를 오간다. 줄기러기의 혈액은 일반 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산소를 흡수하도록 진화했고, 날갯짓 역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발달했다. 인간이 산소통을 메고 올라가야 하는 높이를 이 작은 새는 자신의 힘만으로 넘는다. 히말라야를 거대한 장벽이 아니라 계절마다 건너야 할 길 정도로 여기는 셈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자연선택이 얼마나 정교한 생명체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집단베짜기새도 놀라움을 안긴다. 몸집은 참새만 하지만 이들이 만드는 둥지는 작은 마을 하나와 맞먹는다.
수백 마리가 함께 짚과 나뭇가지를 엮어 거대한 공동 둥지를 짓고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 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둥지는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을 견디게 하는 천연 아파트 역할을 한다. 인간은 집을 짓고 공동체를 이루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집단베짜기새는 오래전부터 협력과 분업의 원리를 실천해 왔다.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생존 전략임을 이 작은 새들은 몸소 증명한다.
반면 군함새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존한다. 날개 길이가 2m를 넘는 이 새는 며칠씩 쉬지 않고 바다 위를 활공하지만, 물에 뜨지 못해 직접 사냥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다른 바닷새가 힘들게 잡은 물고기를 공중에서 집요하게 추격해 떨어뜨리게 한 뒤 낚아챈다.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공격적인 비행 때문에 ‘공중의 해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의 도덕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선악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다. 어떤 종은 협력을, 어떤 종은 경쟁을, 또 어떤 종은 속임수를 선택했다. 모든 전략은 생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진화의 결과다.
땅 위를 누비는 큰화식조는 새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대부분 사람은 새라면 하늘을 날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화식조는 날개보다 다리를 선택했다. 몸무게는 사람과 맞먹고 머리에는 투구처럼 단단한 볏이 있으며 발톱은 단검처럼 날카롭다.
위험에 처하면 시속 50㎞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강력한 발차기로 천적을 물리친다. 고생물학자들이 화식조를 보며 공룡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식조는 수각류 공룡의 특징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살아 있는 공룡’으로 불린다. 새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진화론의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다. 독자는 화식조를 통해 수억 년 전 백악기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후투티도 독특하다. 울음소리에서 이름이 유래한 이 새는 계피색 몸과 흑백 줄무늬 날개, 부채처럼 펼쳐지는 볏으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번식기에는 둥지에서 썩은 고기 냄새를 풍겨 포식자를 쫓고, 새끼는 뱀 소리를 흉내 내거나 침입자를 향해 배설물을 분사하는 기발한 방어 전략을 사용한다.
책은 새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과 지구를 이야기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새를 동경했다. 하늘을 나는 자유를 꿈꾸었고, 계절의 변화를 새를 통해 읽었으며, 울음소리에서 자연의 시간을 느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우리는 새들의 존재를 점점 잊고 살아간다.
저자는 “새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지구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인간보다 훨씬 먼저 하늘을 정복한 새들은 기후 변화와 대륙 이동, 빙하기와 대멸종을 견디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의 날갯짓에는 수억 년 생명의 역사와 진화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조류 도감이 아니라, 새를 통해 생명의 진화와 자연의 질서,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감각을 되찾게 하는 인문학적 자연사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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