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6·25 전쟁 참화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한 1954년 스위스에서 제4회 월드컵 대회가 열렸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을 격파한 한국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조별 리그에선 강력한 우승 후보 헝가리를 비롯해 서독(현 독일), 튀르키예와 같은 2조에 편성됐다. 한국은 헝가리에 0-9, 튀르키예에 0-7로 잇따라 대패했다. 2조 꼴찌로 탈락이 확정된 만큼 서독과의 3차전은 해볼 것도 없이 짐을 싸서 귀국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TV 생중계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우리 국민이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면 얼마나 좌절하고 또 슬퍼했을까.
축구는 득점(골)의 많고 적음이 경기를 보는 재미와 비례하지 않는 독특한 스포츠다. 이는 야구, 농구 등과 명백히 다른 축구만의 특징이다. 강팀과 약팀이 맞붙었다면 모를까, 강팀들 간 경기에서 골이 너무 자주 나오면 팬들은 바로 “수준 낮은 게임”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낼 것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독일 대 브라질 준결승전이 그랬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차 군단’ 독일이 개최국인 ‘삼바 군단’ 브라질을 무려 7-1로 꺾었다. 관중석의 브라질 응원단은 비통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시합이 열린 축구장 이름을 따 오늘날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불린다.
한국 축구에는 ‘펠레 스코어’란 용어가 있다. 브라질이 낳은 ‘축구 황제’ 펠레(1940∼2022)가 생전에 “최종 승부가 3-2로 결정되는 축구 경기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고 해서 생겨난 관용구다. 한 경기에서 다섯 골 정도 터지면 아주 유쾌하게 볼 만하다는 것인데, 정작 펠레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브라질 등 축구 강국을 비롯해 해외에는 펠레 스코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펠레 스코어가 대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저 누군가 지어낸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다만 3-2로 끝나는 시합이 흥미진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벨기에는 16강전에서 일본에 먼저 두 골을 내줬다. 0-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던 벨기에는 경기 종료 직전까지 세 골을 몰아치며 3-2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는 월드컵 종료 후 ‘최고의 시합’에 선정됐다. 그 뒤 8년이 지난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에서 또 명승부가 연출됐다. 2일 세네갈에 먼저 두 골을 내주고 0-2로 끌려가며 이변의 제물이 될 것 같았던 벨기에가 ‘뒷심’을 발휘해 내리 세 골을 성공시키고 3-2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이쯤 되면 정체 불명의 펠레 스코어 대신 ‘벨기에 스코어’란 용어를 쓰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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