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9000·TAA 미활용 땐 매도 74조4000억
확정 물량 아니다…일일 집행 속도가 충격 좌우
“코스피 오를수록 매물 커진다고?”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리밸런싱이 7월부터 다시 시작된다. 올해 코스피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국내주식 비중이 목표 수준을 크게 웃돈 것으로 추산된다. 증권가에서는 지수 수준과 자산배분 범위에 따라 수십조원대 매도가 필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높였다. 리밸런싱에 따른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대신증권은 지난달 26일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을 약 30%로 추산했다. 당시 코스피 종가는 8411.21이었다. 조정된 목표비중보다 9.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목표비중을 넘었다고 초과분을 곧바로 모두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목표비중을 중심으로 일정한 허용범위를 두고 자산을 운용한다. 실제 매도 규모는 국내외 주가와 환율, 다른 자산의 평가액, 허용범위를 얼마나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목표비중 높였지만 주가가 더 빨리 올라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국내주식 시장의 변동성을 고려해 SAA 허용범위를 벗어나더라도 리밸런싱을 하지 않도록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지난 5월에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20.8%로 높였다. SAA 허용범위도 함께 확대했다. 주가 상승으로 급격히 늘어난 국내주식 비중을 한꺼번에 낮출 경우 시장에 미칠 충격을 줄이려는 조치다.
증권사들은 확대된 SAA 허용범위를 목표비중보다 6%포인트 높은 수준으로 추정해 매도 규모를 계산하고 있다. 이 가정을 적용하면 국내주식 비중 상단은 26.8%다. 전술적 자산배분(TAA) 범위 2%포인트까지 더하면 28.8%가 된다.
SAA 6%포인트와 국내주식 비중 상단 26.8%도 정부가 공개한 확정 수치가 아니다. 증권사들이 매도 규모를 계산하면서 적용한 전제다.
대신증권은 국내주식 비중을 26.8%까지 낮추려면 약 57조600억원을 매도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TAA까지 모두 활용해 상단을 28.8%로 높이면 매도 필요액은 21조원대로 줄어든다. 허용범위를 어디까지 활용하느냐에 따라 예상 물량이 30조원 넘게 차이 나는 셈이다.
◆코스피 9000선이면 37조∼74조원
매도 필요액은 코스피가 오를수록 커진다. 주가가 상승하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주식의 평가액이 늘고, 전체 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신영증권은 TAA를 활용하지 않고 국내주식 비중 상단을 26.8%로 적용할 경우 코스피 8500선에서 약 51조2000억원의 매도가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코스피가 9000선까지 오르면 추정 매도액은 74조4000억원으로 늘어난다. 9500선에서는 97조7000억원, 1만선에서는 120조9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TAA를 최대한 활용하면 규모는 크게 줄어든다. 국내주식 비중을 28.8%까지 허용할 경우 코스피 9000선에서의 매도 필요액은 37조3000억원으로 추산됐다. TAA를 쓰지 않았을 때의 절반 수준이다.
시장에 알려진 ‘74조원’ 역시 확정 물량과는 거리가 있다. 코스피 9000선, TAA 미활용, 국내주식 비중 상단 26.8%를 모두 가정했을 때 신영증권이 산출한 최대 시나리오다.
코스피는 아직 9000선에 도달하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종가는 8476.48이었다. 현재 지수 수준에서 74조원어치 매물이 당장 쏟아진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
◆대형주 수급 부담은 불가피
리밸런싱이 시작되면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수급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대형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국내 증시 비중은 6% 수준이지만 대형주 중심의 포트폴리오 때문에 매매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총 상위 종목도 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최근 많이 오른 반도체주가 먼저 매도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의 종목별 매도 계획과 실제 주문 내역은 공개되지 않는다.
시장이 더 민감하게 보는 것은 총액보다 집행 속도다. 같은 규모의 물량도 짧은 기간에 집중되면 주가 충격이 커진다. 수개월에 걸쳐 나눠 팔면 시장이 물량을 받아낼 시간이 생긴다.
◆일일 집행 규모 줄여 분산 매도
보건복지부는 리밸런싱 정상화에 맞춰 일일 최대 집행 규모를 줄이는 등 운용 규칙을 손질했다. 구체적인 집행 한도와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단시일 내 ‘매도 폭탄’을 쏟아낼 것이라는 해석은 무리한 추측”이라며 “주가지수 조정으로 당장의 매도 물량 부담은 축소됐고, 5∼6월 연기금의 선제적인 순매도 움직임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연간·월간·일간 리밸런싱 상한을 줄이는 방침이 전해졌다”며 “실제 집행 규모와 속도가 공개되지 않아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도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수익만 목표로 하는 민간이라면 대규모로 매도한 뒤 저가 매수에 나설 수 있겠지만 국민연금은 신중하게 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리밸런싱 재개로 수급 부담이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이 봐야 할 것은 최대 74조원 같은 가정상의 숫자가 아니다”며 “국민연금의 실제 하루 순매도 규모와 매도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시장이 체감하는 충격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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