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량 니아신은 간, B6는 신경…흡연자는 베타카로틴 ‘주의’
처방약 먹는다면 제품명·함량 정리해 의료진에게 미리 알려야
“간 수치 왜 높나 했더니…”
피로를 풀고 건강을 챙기겠다며 여러 영양제를 한꺼번에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 비타민 B군과 종합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을 함께 먹으면서도 각 제품에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알약 개수가 아니라 하루에 먹는 성분의 총량이다. 제품 이름과 기능이 달라도 같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겹쳐 들어 있을 수 있다. 처방약이나 한약, 즙까지 함께 먹는다면 성분 간 상호작용도 살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여러 건강기능식품을 함께 먹을 때 같은 기능성 원료가 중복됐는지, 하루 섭취량을 넘지 않는지 확인하라고 안내한다. ‘건강기능식품 종합정보 서비스’에서는 복용 중인 제품을 입력해 중복 성분을 확인할 수 있다.
상명대 화학에너지공학과 강상욱 교수와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최석재 교수는 최근 유튜브 채널 ‘지식한상’에서 무분별한 영양제 복용의 위험성을 짚었다.
최 교수는 “응급실에서도 간 수치가 높은 환자가 오면 약물과 영양제를 복용 중인지 꼭 확인한다”고 말했다. 영양제와 즙, 약초 달인 물까지 함께 먹고 있다면 복용 내역 전체를 확인해야 원인을 가려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몇 알 먹느냐보다 ‘성분 합계’ 따져야
영양제를 많이 먹는다고 해서 간이 반드시 상하는 것은 아니다. 두세 개만 먹어도 같은 성분이 겹치거나 함량이 지나치게 높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알약 개수만으로 안전 여부를 따지기 어려운 이유다.
영양제 성분이 모두 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성분은 간에서 대사되고, 어떤 성분은 콩팥을 통해 배출된다. 일부는 처방약의 흡수와 대사에 영향을 줘 약효를 떨어뜨리거나 부작용 위험을 높일 수 있다.
간이나 콩팥 기능이 떨어진 사람, 여러 처방약을 먹는 고령층은 복용 전 확인이 필요하다. 병원이나 약국을 찾을 때는 처방약뿐 아니라 비타민과 한약, 즙 등 평소 먹는 제품을 모두 알려야 한다.
◆니아신 30~50㎎에도 홍조…간독성과는 구분해야
비타민 B군은 수용성이어서 많이 먹어도 모두 소변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성분과 복용량에 따라서는 뚜렷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니아신으로 불리는 비타민 B3가 대표적이다. 니코틴산 형태의 니아신은 하루 30~50㎎ 정도에서도 얼굴과 가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는 홍조를 일으킬 수 있다. 두통이나 어지럼증, 혈압 저하가 동반되기도 한다.
홍조가 나타났다고 곧바로 간이 상한 것은 아니다. 간독성은 주로 이상지질혈증 치료 등에 쓰이는 하루 1000~3000㎎의 고용량 니코틴산을 수개월 이상 복용할 때 문제가 된다. 약효가 오래가도록 만든 서방형 제제에서 위험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 목적으로 고용량 니아신을 복용한다면 간 수치와 혈당, 요산을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일반 영양제와 치료용 고용량 제제를 같은 기준으로 봐서는 안 된다.
◆비타민 B6, 마그네슘·아연 제품에도 들어간다
비타민 B6의 대표적인 과다 복용 부작용은 간 손상이 아닌 감각신경병증이다. 손발이 저리거나 화끈거리고 감각이 둔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노출이 계속되면 걷기가 불편해질 정도로 악화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비타민 B6가 비타민 B군 제품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합비타민은 물론 마그네슘과 아연, 철분 제품에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소비자가 비타민 B6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러 제품을 겹쳐 먹을 수 있다.
신경병증이 발생하는 명확한 최저 용량이나 복용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호주 의약품 규제기관은 하루 50㎎ 미만에서도 사례가 보고됐다. 여러 제품을 함께 복용할 때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복용 후 손발 저림이나 화끈거림이 새로 생겼다면 제품 성분표에서 피리독신, 피리독살 등 비타민 B6 성분을 확인해야 한다. 해당 제품은 중단하고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비타민 A, 종류부터 확인해야
비타민 A는 지용성이어서 남은 양이 주로 간에 저장된다. 레티놀과 레티닐팔미테이트 등 이미 만들어진 형태의 비타민 A를 과다 섭취하면 두통과 메스꺼움, 피부 변화, 간 기능 이상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자료상 성인의 미리 형성된 비타민 A 상한섭취량은 하루 3000㎍ RAE다. 임신부와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 과다 섭취하면 태아의 선천성 기형 위험이 커질 수 있어 종합비타민과 눈 건강 제품을 함께 먹을 때 특히 주의해야 한다.
채소와 과일에 든 베타카로틴은 몸에서 비타민 A로 바뀌는 전구물질이다. 레티놀 과다 섭취와 같은 방식으로 간독성이나 기형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많이 먹으면 피부가 노란빛을 띠는 카로틴혈증이 나타날 수 있다.
고용량 보충제는 얘기가 다르다. 핀란드 남성 흡연자 2만9133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베타카로틴 20㎎을 5~8년간 복용한 집단은 폐암 발생 위험이 18%, 전체 사망률이 8% 높았다.
현재 담배를 피우거나 금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석면 노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고용량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피하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당근이나 시금치 같은 채소와 과일까지 끊을 필요는 없다.
◆오메가3 ‘하루 5g’은 권장량 아니다
오메가3는 다중불포화지방산이라 빛과 열, 산소에 노출되면 산화되기 쉽다. 산화가 진행되면 냄새와 맛이 변하고 제품 품질이 떨어진다.
직사광선과 고온을 피해 제품에 표시된 방법대로 보관해야 한다. 캡슐에서 평소와 다른 심한 냄새나 맛이 느껴지거나 포장이 손상됐다면 먹지 않는 게 낫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건강기능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EPA와 DHA 합계가 하루 5g 이하일 때 표시된 방법대로 복용하면 대체로 안전하다고 본다. 이는 매일 5g을 먹으라는 권장량이 아니라 안전성 판단에 사용되는 기준이다.
오메가3가 피를 묽게 해서 항응고제와 같이 먹으면 무조건 출혈이 난다는 말도 부풀려진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를 봐도 보통 용량의 오메가3가 출혈을 눈에 띄게 늘린다는 결과는 꾸준히 나오지 않았다.
와파린 등 항응고제를 먹는 사람은 의료진에게 복용 사실을 알려야 한다. 고용량 오메가3를 처방받았다면 혈액응고 수치를 정기적으로 살펴야 한다.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위험이 큰 사람이 하루 4g을 수년간 복용했을 때 심방세동 위험이 소폭 높아진 연구 결과도 있다.
◆황달·짙은 소변 나타나면 진료받아야
영양제나 약을 먹은 뒤 심한 피로와 식욕 저하, 구역질, 오른쪽 윗배 통증이 이어진다면 간 기능 이상을 의심할 수 있다.
피부와 눈 흰자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 콜라처럼 짙어진 소변, 평소보다 옅어진 대변도 간이나 담도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신호다.
이런 증상이 생기면 새로 복용한 영양제와 즙은 중단하고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제품 포장이나 성분표를 가져가 제품명과 하루 복용량, 복용 기간을 의료진에게 알리면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처방약은 의료진 지시 없이 임의로 끊어서는 안 된다.
영양제를 고를 때 먼저 따질 것은 알약 개수가 아니다. 하루에 어떤 성분을 얼마나 먹는지, 여러 제품에 같은 성분이 겹치지는 않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새 제품을 사기 전에는 지금 먹는 영양제의 성분표를 한 번씩 맞춰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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