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조정식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찾아 현지 의회 주요 인사와 연쇄 면담을 가졌다. 송 의원은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에 도착한 직후 의회 일정을 시작했으며, 27일 귀국했다. 이번 방미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등이 함께한 여·야 합동 의원단 형식으로 이뤄졌다.
송 의원은 23일 미 공화당 소속 3선 연방하원의원이자 하원 인도·태평양 소위원장인 영김 의원과 면담했다. 김 의원은 인천 출신의 한국계로, 앞서 한국 숙련공에 대한 비자 면제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같은날 미 민주당 소속 7선의 아미 베라 하원의원과도 만났다. 인도계인 베라 의원은 얼마 전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을 면담한 바 있다. 이들 두명과의 면담에서는 한·미 경제협력과 한국 숙련공의 비자 문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을 둘러싼 현안이 논의됐다. 송 의원은 저녁에는 미국에 투자한 삼성·현대자동차·LG·SK·한화·포스코 관계자들과 만찬 간담회를 갖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송 의원은 이튿날인 24일에는 워싱턴DC 연방의회 도서관에서 미주한인이민사박물관 등의 후원으로 열린 ‘한국 문화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자리한 가운데 송 의원은 한 미 하원의원으로부터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민의 인식을 묻는 말에 “한미 동맹을 숙성이 잘 될수록 더 깊은 풍미를 내는 김치에 비유하고 싶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어 “어떤 상황이든, 우리가 어느 정당에 속해 있건 간에 한미 동맹이 표현의 자유와 우리의 삶을 지키는 기둥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이 행사에는 한국계 1호 미 연방 상원의원인 앤디 김(민주·뉴저지)이 참석해 양국 문화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의회외교는 정부외교의 대체물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국익외교의 또 다른 축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의회외교와 정부외교를 ‘상보’ 관계로 규정하고, 국익외교 실현을 위해 국회 차원의 외교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그간의 대미 의회외교가 전담 조직 없이 초청·방문·국제회의 참석 등 개별 현안 대응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을 들어 제도화와 정례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의회 외교가 특히 대미 관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권력 구조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법안 발의권과 예산 심의권, 조약 비준 동의권이 연방의회에 있어 행정부만 상대해서는 통상·외교 현안을 풀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미 의회 외교는 미 연방의회의 입법 동향을 사전에 파악하는 ‘조기경보 채널’로 평가된다. 국회의 공식 분류에 따르면 의회 외교의 주체는 의장단과 의원외교단체, 상임위원회 대표단 등이며, 형태는 외국 인사 초청외교, 외국 의회를 찾는 방문외교, 국제의회연맹(IPU) 등의 다자회의 참석으로 나뉜다. 직전 21대 국회에서는 의회외교포럼 12개와 의원친선협회 115개가 활동했었다.
송 의원은 2020년 21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냈고, 한-러 의회외교포럼 회장과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을 맡았었다. 16대 국회에서는 이라크 현지 조사단장으로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없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전달했고, 몽골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5개국 인권·의회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바 있다. 당대표 시절에는 한반도 태스크포스 방미 단장으로 미국을 찾아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선거 캠프의 외교 정책을 담당한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면담하기도 했다.
대미 의회 외교 경험도 누적돼 있다. 2018년에는 국회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을 맡았고, 2020년에는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 선출됐었다. 2021년에는 당시 밥 메넨데스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화상회담을 갖고 한미 동맹 현안과 전 세계적 이슈를 논의했으며, 양측은 한미 의회 간 긴밀한 공조를 약속한 바 있다. 이는 한미 상임위원장급 채널이 가동된 사례로, 이번 방미의 인적 네트워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송 의원은 인천시장(2010~2014) 재임 중에는 도시 외교와 국제기구 유치에서 성과를 냈다. 2012년 10월 인천 송도는 독일·스위스·멕시코·폴란드·나미비아를 제치고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 도시로 결정됐는데, 당시 기획재정부는 박재완 장관의 전방위 유치활동과 함께 인천 G타워 15개층 무상 제공 등 송 시장의 전폭적 지원이 빛을 발했다고 평가했다. GCF는 국제백신연구소, 글로벌녹색성장기구에 이어 한국에 본부를 둔 세 번째 국제기구가 됐다.
북방 외교는 송 의원이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낸 영역이다. 인천시장 시절 러일전쟁 때 제물포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선 ‘바랴그’의 깃발을 임대 형태로 반환했고, 기념시설을 건립했다. 2013년 11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인천 방문이 성사됐었다. 그해 송 시장은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격의 러시아 우호훈장(드루쥐비)을 한국인 최초로 수훈했고, 2009년에는 프랑스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에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위촉돼 신북방정책을 총괄했다. 송 의원은 러시아와의 9개 협력 분야를 묶은 ‘9개의 다리(9-Bridge)’ 전략,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동북아 슈퍼그리드 등을 추진했다. 당시 동북아 슈퍼그리드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는 서한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는 한편 중앙아시아도 방문했으며, 몽골과는 협력 채널 구축을 이끌었다. 한국어·영어·중국어·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송 의원은 자신의 노선을 균형과 자주를 강조하는 ‘지구본 외교’로 설명해 왔다.
이번 방미의 면면은 통상적인 의원외교의 범주를 넘어선다. 단순한 친선 방문이 아니라 국회의장 특사라는 공식 자격으로, 공화당(영 김)과 민주당(아미 베라) 양당의 핵심 의원을 같은 일정에서 접촉했다. 미국 정치에서 외교·통상 현안은 양당의 협조 없이는 진전되기 어렵다. 한국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숙련공 비자 면제 법안처럼 한국 기업과 직결된 입법 현안을,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과 직접 마주해 논의한 것은 행정부 채널이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송 의원이 이런 능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누적된 관련 직책과 네트워크를 꼽을 수 있다. 6선 의원이자 전직 당대표 및 외교통일위원장,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광역시장을 지내며 쌓은 경력은 의회외교에 필요한 입법·통상·국제기구·동포사회 네트워크를 두루 구축할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앞서 지난 4월 방미에서는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을 면담하는 등 행정부 인사로도 접촉면을 넓혀왔다. 지난 2월 이른바 돈봉투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6월3일 재보궐 선거에서 6선에 성공해 4년 만에 원내에 복귀한 직후 그가 곧바로 국회의장 특사로 워싱턴에 파견된 것도 이런 외교 역량이 평가받은 결과로 평가된다. 이번 방미 중 한국 문화의 날 무대에서 한미 동맹을 김치에 비유한 발언이 미 의회와 동포사회에서 반향을 얻은 것 역시 가치·문화 동맹을 매개로 한 송 의원 특유의 누적된 자산이 발휘되었다는 평이다.
송 의원의 이번 활동은 이재명정부의 외교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외교부는 출범 1주년 성과로 주변 4국과의 관계 증진, ‘G7+ 외교 강국’ 실현, 경제안보·통상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외교 역량 강화로 제시했으며, 국정과제에도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명시돼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재명정부의 외교를 두고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하되 중국·러시아와도 국익 중심으로 관계를 관리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향이라고 분석한다.
미 의회가 한국 외교가 맞닥뜨린 주요 변수라는 점은 의회외교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지난 4월21일 공화당 내 최대 보수정책 그룹인 공화당연구위원회(RSC) 소속 하원의원 54명은 강경화 주미 대사에게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 중단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고, 무역법 301조에 따른 보복 관세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공화당 의원 41명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문제 삼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서한을 보낸 바 있다. 동맹국을 상대로 한 이러한 집단 서한이 발신된 것은 이례적이며, 행정부 채널만으로는 미 의회발(發) 리스크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지점에서 ‘입법부 대 입법부’의 직접 채널은 정부외교의 빈틈을 메운다. 정상 외교가 한미 관계의 큰 방향을 열면, 국회 특사와 중진 의원은 그 메시지를 법안과 예산을 담당하는 미 의회, 기업 현장, 동포사회로 확산시킨다. 송 의원이 면담한 베라 의원이 앞서 방한해 이 대통령을 만났다는 점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외교가 연결되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 단독이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이 함께한 합동 의원단이라는 이번 형식은 ‘국익 앞에 여야가 없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더한다. 이재명정부가 대미 관세협상을 매듭짓고 한미 핵추진잠수함·원자력 협력을 진전시켜 온 흐름 위에서 의회외교는 이를 의회와 현장으로 확장하는 실무 채널로 기능할 수 있다.
결국 송 의원의 이번 방미는 의회외교가 정부외교의 보완재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 모범 사례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강조해 온 대미 의회외교의 제도화가 과제로 남은 가운데 축적된 경력과 미 양당 네트워크를 갖춘 중진 의원의 활동은 제도화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 의회 비준이 교착됐을 때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방미해 비준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일도 의회외교의 정수로 통한다. 의회외교의 정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송 의원처럼 축적된 신뢰와 자산을 가진 의원이 국익을 위해 움직일 때 완성될 수 있다.
김정훈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협력연구위원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 UN SDGs 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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