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면 신화월드 신화가든 알록달록 수국 물들어
수국·형제섬 보며 생옥돔 파피요트 즐기는 바다마르마레
20년 노포 된장 베이스 자리돔물회 만나는 물꾸럭식당
1만8000년 전 화산 폭발이 새긴 수월봉 ‘지구의 나이테’ 장관
보라, 분홍, 하얀색으로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수국. 바람이 지날 때마다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고 햇살 한 방울 이슬 머금은 꽃잎에 떨어지자 수채화 물감 번지듯 부드러운 빛 토해낸다. 언제 이렇게 예쁘게 폈을까. 꽃밭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자 세상의 소란 순식간에 멀어지고, 메말랐던 마음의 캔버스에도 알록달록한 수국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지금 제주는 수국 물결
수국은 참 탐스럽다. 아이 머리만 한 크기에 꽃이 빼곡하게 달려 있으니 마치 값비싼 보석 같다. 더구나 한 송이 안에도 여러 색을 품어 수국이 만발한 정원을 걷다 보면 빛의 화가 모네의 수채화 속에 들어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런 수국이 6월이면 지천으로 피는 곳이 제주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수국 맛집’들이 몰려 있다. 서광리 제주신화월드의 신화가든으로 들어서자 산책로를 따라 만발한 수국이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약 7500㎡ 규모 정원이 온통 수국 빛깔로 물드는 풍경은 그대로 떼어내 방에 걸어 놓고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 색깔이 참 다양하다. 연한 하늘빛에서 핑크, 짙은 보라 그리고 흰색까지 저마다 다른 색조로 완만한 언덕 경사면을 수놓는다. 수국은 산성 토양에선 파란색, 알칼리성 토양에선 분홍색이나 붉은색을 띤다. 이 때문에 수국의 대표 꽃말은 ‘변심’과 ‘변덕’이다.
신화가든 꽃밭의 진짜 매력은 꽃밭 한가운데 외롭게 선 ‘나홀로 나무’에 있다. 이 나무는 계절마다 바뀌는 꽃빛 속에서도 변함없이 정원의 중심을 잡는다. 특히 나무 아래에는 의자가 놓여 탁 트인 정원 전경을 바라보며 앉아 자연을 즐기거나 멋진 인생샷을 만들기 좋다. 정원 한쪽에는 하얀 돔 형태의 서양식 정자 로툰다가 배경처럼 서 있어, 이국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신화가든은 계절마다 다양한 꽃으로 채색된다. 3∼4월 노란 유채꽃이 물결처럼 너울대며 장관을 이루고 6월 수국을 거쳐 7∼8월에는 해바라기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또 9∼10월에는 황화 코스모스가 정원을 가득 메워 낭만적인 가을 정취를 선사한다.
신화가든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또 다른 수국 명소 동광리 수국길이 기다린다. 좁고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수국의 벽이 좌우로 100m가량 펼쳐져 수국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된다.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국이 빽빽하게 뭉쳐 있어 배경에 온통 수국만 가득한 밀도 높은 스냅 사진을 연출하기 더없이 좋다. 이곳의 수국은 짙은 보라색과 붉은색 위주여서 다른 곳보다 좀 더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을 선사한다. 안덕면사무소 수국길도 유명하다. 버스정류장 양옆으로 조성된 수국길은 도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며 그중 돌담과 어우러진 곳에 서면 멀리 산방산까지 담기는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파피요트 먹을까 자리돔회 즐길까
안덕면에서 차로 20분 거리 대정읍의 지중해 음식 전문 레스토랑 ‘바다마르마레’는 주인장이 마당에 직접 심은 수국과 앞바다에 신비롭게 떠 있는 형제섬을 한 컷에 담을 수 있어 요즘 수국 맛집으로도 입소문이 났다. 바다마르마레는 임회선·이동진 셰프 부부가 MSG나 버터 등의 유제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조리, 제철 식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한 건강한 음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모슬포 참가자미 파피요트가 대표 메뉴. 파피요트는 생선과 야채를 유산지에 감싸 오븐에서 쪄내듯 구운 지중해식 요리로 식당 인근 모슬포항에서 잡은 신선한 가자미와 직접 키운 파슬리, 제주산 시금치, 양파 등의 야채로 조리한다. 보통 참가지미를 내놓지만 미리 예약하면 옥돔, 우럭, 돌돔 등 입맛에 따라 즐길 수 있다. 제주 특산품 생옥돔 파피요트를 주문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의 식감이 혀에서 춤을 추고 옥돔의 고소한 풍미에 이어 직접 키운 딜의 허브향이 입안을 이국적인 맛으로 가득 채운다.
감바스 알 아히요도 꼭 먹어봐야 한다. 올리브오일에 마늘과 새우를 끓여내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타파스 요리로, 신선한 제주산 새우 풍미와 제주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대정 마늘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매일 아침 직접 구워 만드는 빵을 감바스 올리브오일에 듬뿍 찍어 먹으면 맛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뽈뽀는 삶거나 구운 문어에 감자와 허브, 오일을 곁들여 먹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문어 요리. 임 셰프가 통발로 잡아 올린 모슬포 문어를 오랜 시간 저온으로 부드럽게 조리해 질기지 않고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담백하고 포슬포슬한 감자와 훈제 파프리카 가루가 문어의 풍미를 한층 살린다.
제주의 싱싱한 생선을 제대로 즐기려면 대정읍 모슬포항 인근 ‘물꾸럭식당’으로 가면 된다. 물꾸럭은 문어를 뜻하는 제주 방언. 2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노포로, 소박한 외관과 달리 현지인과 셰프들 사이에서 숨은 고수의 맛집으로 통한다. 자연산 활어, 물회, 생선 조림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요즘은 자리돔물회가 주인공이다. 자리돔조림을 포함한 한상 차림으로 나오며 물회가 된장 베이스라는 점이 색다르다. 초장 베이스 물회와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워 자리돔의 고소하고 단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자리돔은 작고 뼈가 연해야 맛있다. 특히 산란기인 5∼7월이 되면 알을 배면서 몸의 뼈가 유연해지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 뼈째 씹어도 거칠지 않고 가장 고소하게 즐길 수 있다.
바로 옆 ‘해성 이용원’ 간판이 달린 예스러운 건물은 물꾸럭식당 주인장 아들이 운영하는 ‘앙카페’로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와인바로 운영한다. 이발소 인테리어 일부를 그대로 남겨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간 오래된 공간을 추억하게 만든다.
핸드 드립 커피를 제대로 즐기고 싶으면 사계리의 ‘패스브루’를 추천한다. 카페로 들어서자 시원한 통창으로 웅장한 산방산과 박쥐를 닮은 단산이 펼쳐지고 날이 맑아 한라산 정상까지 또렷하다.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과테말라 등 다양한 원두를 직접 시향한 뒤 고를 수 있다. 특히 커피가 넉넉하게 담긴 도자기 서버와 커피잔을 따로 내주기 때문에 따뜻한 커피를 조금씩 따라서 오래 즐길 수 있다. 꽃향으로 시작해 흙향, 다크 초콜릿향까지 올라오는 걸 보니 고수의 솜씨가 분명하다. 귤나무와 핫립 세이지 등으로 꾸민 아기자기한 정원도 낭만을 더한다.
◆절벽에 새긴 지구 일기장 수월봉
패스브루에서 차로 20분을 달리면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수월봉(해발 77m)을 만난다. 낮고 완만하게 솟아 있는 수월봉은 외모에서 느껴지는 소박함과 달리 ‘세계 화산학의 교과서’라 불리는 곳으로 1만8000년 전 지구가 숨 가쁘게 토해낸 기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수월봉 산책로로 들어서자 절벽을 따라 ‘지구의 나이테’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탄성이 터진다. 수월봉의 탄생은 극적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던 뜨거운 마그마가 바닷물과 만나면서 격렬하게 폭발했고, 뿜어져 나온 화산재와 파편들이 낮고 넓게 쌓이며 고리 모양의 응회환 화산체를 형성했다. 그 결과물이 해안 절벽을 따라 70m 두께로 화산쇄설암층이 발달한 게 수월봉이다. 마치 시루떡이나 기왓장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 정교하게 층층이 쌓인 지층은, 화산재가 가스와 뒤엉켜 흘러가며 만든 구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면에는 화산탄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분출 당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무거운 암석 덩어리가 물렁물렁하던 화산재 지층 위로 떨어지며 만들어진 화산탄은 절벽 곳곳에서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다.
절경만큼 애틋한 전설도 깃들어 있다. 옛날 고산리에 우애 깊은 남매 수월과 녹고가 살았다. 홀어머니가 중병에 걸리자 남매는 100가지 약초를 구하러 다녔고, 99번째까지 구했으나 딱 하나, 오갈피를 찾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수월봉 해안 절벽 중간에서 오갈피를 발견한 누이 수월은 약초를 캐다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뒀다. 녹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절벽에서 17일 동안 울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절벽 바위틈에서 사시사철 솟아 흘러내리는 용천수를 ‘녹고의 눈물’로, 수월봉을 ‘녹고물오름’으로 불렀다.
수월봉의 진가를 온전히 느끼려면 제주올레 12코스이자 지질공원 트레일인 ‘엉알길(A코스)’을 걸어야 한다. 차귀도 선착장∼녹고의 눈물 약수터∼일본군 갱도진지∼탄낭구조 절벽∼수월정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약 3.3㎞로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수월봉 정상의 팔각정자 수월정은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 질 무렵 수월정에 오르면 바다에 누운 차귀도 위로 해가 떨어지는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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