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중에 하나만 걸려도 사업은 멈춰
사업 속도만큼 중요한 건 갈등 관리”
제자리재건축·독립정산제 등 통해
래미안 원베일리 등 성공적 마무리
대기업 건설사 출신으로 수십년간 정비사업 현장을 누빈 한형기 HK미래주택연구원 대표의 말은 단호했다. 그는 “재건축이 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조합장”이라며 “(조합장이 개인적) 욕심을 부리거나, 뭘 모르거나, 결정을 못 하거나, 이 셋 중 하나만 걸려도 사업은 멈춘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성공하는 조합장의 조건으로는 사업 이해도와 투명성, 리더십을 꼽았다. 한 대표는 “재건축 사업은 수천억원이 오가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조합장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며 “욕심을 버리고 전문성을 갖춘 상태에서 필요한 결정을 미루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성공 모델로 손꼽히는 아크로리버파크(신반포1차) 조합장과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통합) 조합장 직무대행을 역임한 그는 국내 정비사업계에서 ‘재건축의 신’이라 불린다. 세계일보는 지난 9일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한 대표를 만나 정비사업의 해법을 물었다.
한 대표가 조합장으로서 거둔 성과는 수치로 증명된다. 아크로리버파크는 그가 2011년 9월 세 번째 조합장으로 취임한 뒤 4년 8개월 만에 이주부터 입주까지 마무리했다. 취임 당시 신반포 1차 재건축 사업은 18년째 표류 중이었다. 전임 조합장 두 명이 실패한 사업을 4년 남짓 만에 끝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은 도시계획 심의, 건축 심의, 교통영향평가, 사업시행인가 순으로 절차를 밟는다. 한 대표는 이 관행을 뒤집었다. 그는 “심의가 80% 진행됐을 때 그 다음 심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주·철거 공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사업시행인가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한 대표는 “전문성이 없는 조합장은 이런 게 불가능하다”며 “공사가 한창인데 인가가 늦어지면 공사가 중단된다”고 설명했다.
래미안 원베일리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계획·건축·교통 심의와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조합원 분양 신청과 관리처분계획 총회를 진행한 뒤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는 등 주요 인허가 절차를 약 2년 만에 마무리 단계까지 끌어올렸다.
한 대표는 서울 지역 재건축 속도전의 핵심은 서울시와의 협의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용적률과 층수, 단지 배치 등 사업의 기본 틀이 서울시와 협의 단계에서 사실상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오케이(OK) 사인’을 얼마나 빨리 내주느냐에 따라 전체 재건축 사업 속도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조합 내부 갈등 관리다. 래미안 원베일리는 신반포3차와 경남아파트, 소규모 단지 아파트를 묶은 2990가구 규모의 통합 재건축이었다. 이해관계가 다른 단지들을 하나로 묶어야 하는 만큼 분쟁 소지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했다. 한 대표가 고심해 조합원들을 설득한 해법은 ‘제자리재건축’과 ‘독립정산제’였다. 독립정산제는 하나의 사업 시행 구역 안에서 각 단지가 개발 이익과 비용을 별도로 정산하는 방식이다. 원베일리는 단지별 독립정산제를 도입했고, 재건축 이후에도 기존 위치와 가장 가까운 새 아파트를 배정받는 제자리재건축을 적용해 단지 간 이주·배정 갈등을 최소화했다. 조합 설립부터 입주까지 7년 10개월 만에 마무리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 대표는 6·3 지방선거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연임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을 긍정 평가했다. 사업 속도가 빨라졌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는 “아직도 행정 절차가 복잡하다”며 “사업 기간을 지금보다 더 줄일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전했다.
이제 그는 조합장이 아닌 컨설턴트로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정비사업장들이 요청하면 찾아가 노하우도 전수한다. 한 대표는 “일종의 재능기부 차원에서 도움 요청이 오면 해당 정비사업장 관련 자료를 꼼꼼히 분석한 후 설명회를 열어 최선의 방안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르면 올 연말쯤 재건축조합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발주자를 대신해 기획, 설계, 발주, 시공, 준공 등 건설 사업을 총괄 관리하는 CM업체로 닻을 올릴 예정이다.
한 대표는 “조합장으로서 이룰 것은 다 이뤘어요. 컨설팅을 받은 조합이 ‘확실히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이제는 CM회사로 성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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