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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에서 온 ‘자유부인’의 뮤지컬 ‘렘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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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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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렘피카’는 올 상반기 공연계 화제작이자 문제작이다. 2024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엇갈린 평가 속에 첫선 보인 후 얼마 안 가 막을 내린 단명작이 2년 만에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연출은 흥행작 ‘하데스타운’으로 토니상을 받은 레이첼 채브킨. 그는 지난 5월 두 번째 무대 연출을 위해 직접 방한해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론가들이 작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브로드웨이 흥행에 실패했다며 한국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두 번째 무대를 거쳐야 작품이 비로소 일회성 실험이 아닌 레퍼토리로 자리잡는다”고도 강조했다.

 

뮤지컬 ‘렘피카’ 놀유니버스 제공
뮤지컬 ‘렘피카’ 놀유니버스 제공

◆타마라 드 렘피카는 누구?

 

타마라 드 렘피카는 20세기 초 아르데코 양식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다. 러시아 혁명으로 남편 타데우시와 함께 파리로 망명한 그는 생계를 위해 그림을 시작했고 1920~30년대 유럽 상류층 초상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작품은 큐비즘의 기하학적 구조에 아르데코 특유의 미학과 관능성을 결합한 독자적 양식으로, 특히 여성을 주체적이고 성적으로 해방된 존재로 그려낸 것으로 주목받는다. 초록색 부가티 안의 자화상은 당대 ‘신여성’의 상징이 됐다.

 

뮤지컬은 예술가로서의 타마라의 성공 서사와 모델이었던 라파엘라와의 사랑을 세계대전·파시즘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격변과 교차시키며 한 인간의 욕망과 생존으로서 그린다.

 

◆만족도 높은 음악

 

브로드웨이에서 건너온 작품답게 무대의 외형적 완성도는 고르다. 에펠탑을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을 중심으로 한 모던한 무대는 원색 의상과 조명 디자인과 어우러져 아르데코 미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다만 안무는 소재에 비해 그만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1920~30년대 파리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퇴폐적인 클럽 문화와 원초적 욕망이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데 무대 위 몸짓은 충분히 관능적이지 않다.

 

타마라 드 렘피카 역 김선영. 놀유니버스 제공
타마라 드 렘피카 역 김선영. 놀유니버스 제공

그래도 음악은 ‘렘피카’의 가장 큰 자산이다. 팝·록·R&B가 혼합된 작곡가 매트 굴드의 음악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풍성하다. 여러 노래 선율은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전반적으로 귀에 잘 들어와서 초연이 맞나 싶을 정도다. 송스루는 아니나 음악이 극의 호흡을 이끌어간다.

 

이는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으로 정평난 배우들이 모여있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내 초연 캐스팅은 김선영·박혜나·정선아(렘피카), 차지연·린아·손승연(라파엘라), 김호영·조형균(마리네티), 최정원·김혜미(수지) 등. 선호 조합을 고르기 어려울 만큼 정상급 배우들이다.

 

27일 공연에선 정선아와 손승연이 따로 또 같이 깊은 내공이 실린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렘피카의 작품세계와 대척점에 선 마리네티 역을 맡은 김호영 연기와 노래가 강렬했다. 특히 솔로곡 ‘퍼펙션’은 공연 전체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꼽힐 만 하다.

 

뮤지컬 ‘렘피카’ 중 렘피카와 예술적 논쟁을 펼치며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미래주의 예술가 마리네티 역을 맡은 김호영이 열연하고 있다. 놀유니버스 제공
뮤지컬 ‘렘피카’ 중 렘피카와 예술적 논쟁을 펼치며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미래주의 예술가 마리네티 역을 맡은 김호영이 열연하고 있다. 놀유니버스 제공

◆‘자유부인’ 서사의 보편성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렘피카가 점차 예술적 자아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대담한 여정.”

 

제작사가 내세운 ‘렘피카’ 서사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를 생존 인물 일대기를 이 작품은 미화하지 않는다. 적나라한 연애 행각과 욕망, 돈에 대한 집착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 솔직함 자체는 미덕이나 그러한 삶이 얼마나 많은 관객에게 공감과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극 중 내내 부각되는 주인공의 가치는 여성에게 참정권도 없던 시대, 여성의 눈으로 여성을 그린 화가라는 점이다. 채브킨은 기자회견에서 렘피카를 “생존의 의지와 저항심을 가진 인물”로 설명하며, 혼돈의 시대에 렘피카의 이야기가 갖는 현재성을 강조했다.

 

라파엘라 역 손승연. 놀유니버스 제공
라파엘라 역 손승연. 놀유니버스 제공

“렘피카는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어낸 생존자입니다. 그 전쟁들은 결국 오만한 남성들이 저지른 것이었죠. 그렇기에 생존하려는 의지, 기쁨을 찾으려는 의지, 쾌락을 좇고 자유롭게 사랑을 하려는 의지, 그리고 자기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그녀의 의지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저항’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신여성’이 세상의 주인임을 선언하는 이 외침이 수십년전 ‘자유부인’류 성인영화 홍수를 겪은 바 있는 한국 관객에게 새로울지 의문이다. 제작사 자율로 설정된 관람연령 제한 ‘14세 이상’도 부적절하게 여겨진다. 내용도 미성년에겐 부적합하거니와 공연 전반에 흡연, 음주는 물론 마약류가 등장한다. 공연 관람 연령 설정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게 됐다. 서울 코엑스 아티움에서 6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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