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군 공군은 육군 항공대로 출발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에야 독립 군종(軍種)이 됐다. 그래서 육·해군과 비교해 창군이 1년 늦다. 6·25 전쟁 기간 중 대장 계급의 장성을 배출한 육군과 달리 공군은 1960년대 후반에야 처음으로 대장이 나왔다. 1968년 12월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김성룡(2002년 별세) 제10대 공군참모총장이 주인공이다. 참모총장 재임 도중 계급이 올라간 김성룡 장군과 달리 그 후임자인 김두만(99) 제11대 공군참모총장은 1970년 7월 대장 진급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임명됐다. 당시 김두만 장군은 43세에 불과했으니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너무 젊은 나이에 참모총장이 된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겠으나, 김두만 장군은 6·25 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 출신이다. 전쟁 발발 이전에 공군 장교가 돼 정찰기를 몰았던 그는 개전과 동시에 전투기 조종사로 거듭났다. 1952년 1월에는 ‘100회 출격’의 기록을 세웠는데, 우리 공군 역사상 최초에 해당한다. 동료들이 김두만 장군(당시 계급 소령)을 축하하는 의미로 무등을 태워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찍힌 사진은 6·25 전쟁 당시 한국 공군의 활약상을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통한다. 그는 2023년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양국이 공동으로 선정한 ‘6·25 전쟁 10대 영웅’에 포함됐다.
김두만 장군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역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일 것이다. 승호리 철교는 북한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 지류 중 하나인 남강에 놓인 철교였다. 북한군의 핵심 보급로인 만큼 앞서 미국 공군이 여러 차례 폭격했으나 끝내 파괴하지 못했다. 마침내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가 한국 공군에 이관됐다. 김두만 소령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조종사들이 투입돼 3차례에 걸쳐 폭탄을 투하한 끝에 겨우 철교를 완전히 부술 수 있었다. 당시 전투비행전대장으로서 김 소령 등 조종사들의 작전 수행을 총괄 지휘한 인물이 바로 김신(2016년 별세) 대령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이자 일제강점기 광복군 일원으로 활약한 유명한 장군이다.
지난 7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달(5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김신 장군의 현양(顯揚) 행사가 전쟁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 김신 장군은 조국 광복 후 공군에 투신해 중장까지 진급하고 제6대 참모총장(1960∼1962년 재임)을 역임했다. 한때 공군의 부하 조종사였고 약 10년 뒤 참모총장을 지낸 김두만 장군이 99세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기념식에 참석했다. 오는 2027년이면 100세가 되는 노병(老兵)은 74년 전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당시 상관이었던 김신 장군의 영정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두만 장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아울러 삼가 김신 장군의 명복을 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마운자로의 역설](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5/08/128/20260508500060.jpg
)
![[기자가만난세상] MZ세대 공무원 바라보는 여러 시각](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5/06/26/128/20250626518698.jpg
)
![[세계와우리] 중동 변국<變局>과 미·중 정상회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1/22/128/20260122518803.jpg
)
![[성백유의스포츠속이야기] 믿음이 사라진 매경오픈](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5/07/128/20260507514334.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