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매력적인 제목이 마음을 흔들었다. 게다가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라니. 작가의 전작들을 깊이 사랑했던 나로서는 아무리 바빠도 외면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1, 2회까지는 망설였다. 황동만(구교환)이라는 인물의 날것 그대로의 지질함과 민폐다움 앞에서 과연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의문은 3회부터 사라졌다. 타인의 시선으로만 평가될 때의 불편함은 그의 불안과 고통이 드러나는 순간 흩어졌고, 어느새 나는 그가 되어 있었다.
존재의 허기를 시끄러운 수다로 막아보려 발버둥 치는 동만,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은 뒤 또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코피를 쏟는 변은아(고윤정). 두 사람이 서로의 ‘자폭하고 싶은 마음’과 ‘도와 달라는 간절함’을 알아보고 한참을 말없이 걷다 끌어안는 6회의 엔딩만으로도 안심되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알아봐 주고 곁에 있어 주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맞서 싸워볼 수 있다. 그것은 실낱같은 무엇 하나 붙들고서라도 살아보겠다는 발버둥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버림받고, 실패하고, 나약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잘나지도 멋지지도 않은 이들이 공허 속에서 분투하는 이야기, 다시 말해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위로를 건넨다. 성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사람대접조차 받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 같은 이들의 별 볼일 없는 이야기로도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긍정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좋았던 것은 작가의 시선이 주인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만의 형 진만(박해준)의 아득하게 슬프고도 공허한 눈빛, 박경세(오정세)의 떨리는 전화 고백. 마음이 툭 떨어지는 그 표정들만으로도 조연이 주인공을 빛내는 도구가 아님을 증명한다. 현실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긍정으로 느껴졌다.
박해영 작가의 인물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결국 관객에게 건네는 환대이자 위로다. 우리를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이지만, 그 시스템에 맞서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은 서로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품은 이런 작품이 있어 한국 드라마가 살아남는 것이다. 이런 작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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