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이 서울 종묘 앞 재개발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받으라고 서울시에 이행 명령을 내렸다. 세운4구역 재정비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반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나온 첫 행정 조치다.
7일 문화계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전날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종로구청에 ‘세계유산 종묘와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한 조치 이행 명령’ 공문을 발송했다.
국가유산청은 사업시행자인 SH에 재개발 사업이 종묘에 미칠 영향을 평가받고, 그 결과를 반영해 사업 계획을 보완하라고 명령했다. 서울시와 종로구에는 영향평가와 검토 절차가 완료된 뒤에 사업시행 인가를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현행 국가유산기본법은 세계유산과 그 역사문화환경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유산청장이 필요한 보호 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이 종묘 관련 사업에 대해 이행 명령을 공식적으로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사업시행 인가를 앞둔 상황에서 행정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인가 이후에는 사업 변경이 쉽지 않은 점도 고려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열어 세운4구역 사업을 ‘조건부 의결’했으며, 현재 최종 계획 확정 절차를 밟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지난달 이행 명령 내용을 사전 통지했지만 서울시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며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관련 법·제도를 검토하며 추가 대응 방안도 마련 중이다.
문화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국제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종묘 앞 재개발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는 우려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이미 해당 사업에 대해 영향평가를 권고해왔으며, 필요 시 현장 실사 가능성도 시사한 상태다. 이에 대해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위원회가 자칫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 문제를 논의하는 장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왕실의 신주를 모신 국가 사당으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한국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 등은 오랜 논의 끝에 2018년 종묘 맞은편 세운 4구역에 들어설 건물 높이 기준을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로 협의했으나 서울시가 지난해 최고 높이를 145m로 상향 조정하면서 영향평가 여부를 둘러싼 충돌이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은 발굴 조사 완료 전 SH가 약 38m 깊이로 굴착을 진행했다며 지난 3월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시민단체와 학계도 유네스코에 반대 서한을 전달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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